제4장: 보름달처럼 따뜻했던 뻥튀기의 온도

1부. 말하자면... 불행한 가족사

by 숨나

그해 여름 공기에는 눅진한 습기와 서늘한 소독약 냄새가 섞여 있었다.
시내 치과의 유리문을 여는 순간, 코끝이 얼얼해질 정도로 날카로운 약품 냄새가 해일처럼 밀려왔다.
진료 의자 위에 뻣뻣하게 눕혀진 아이들의 벌어진 입 사이로 공포 섞인 비명이 피어올랐고, 귓속을 파고드는 기계음은 굶주린 벌레 울음처럼 집요하게 고막을 긁었다.
내 어금니는 이미 검게 썩어 잇몸까지 노란 고름이 차올랐다.
오른쪽 볼은 사탕을 대여섯 개 문 듯 퉁퉁 부어올랐고, 손바닥으로 살짝 누를 때마다 뜨거운 열기가 튀었다.
나는 아빠의 손을 마디가 하얘질 정도로 꽉 잡고 치과 문턱 앞에 얼어붙어 있었다.


“호끔 이시믄 끝날 거여. 홑쏠 참으라이."

(금방 끝날 거야. 조금만 참으렴.)


아빠의 손바닥은 미지근했고, 뙤약볕에 달구어진 바깥바람 냄새가 섞여 있었다.
그러나 그 익숙한 체취조차 병원 내부의 독한 약품 냄새 속에서는 힘없이 사라졌다.
아빠는 꼭 잡았던 내 손을 슬그머니 내려놓고 접수처에 서서 종이에 뭔가를 열심히 쓰기 시작했다.
나는 열린 문틈 사이로 새어 들어오는 눈부신 햇빛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돌연 본능적으로 몸을 돌려 달리기 시작했다.


탁, 탁, 탁, 탁—


슬리퍼 밑창이 아스팔트 바닥을 치는 소리가 경쾌하면서도 절박했다.
골목 하나를 꺾고, 언덕을 넘고, 버스 정류장 세 개의 거리를 단숨에 지나쳤다.
얼굴을 때리는 후끈한 바람과 귀를 먹먹하게 하는 매미 소리가 오히려 지독한 해방감으로 다가왔다.
숨을 몰아쉬며 집 문턱을 밟는 순간, 목구멍까지 차오른 자유가 뜨거운 납 덩어리처럼 무거웠다.
그러나 그 자유는 잠시뿐이었다.
대문이 거칠게 열리고, 숨을 몰아쉬는 아빠가 나타났다.
셔츠는 이미 등판까지 땀으로 흠뻑 젖어 지도처럼 얼룩져 있었고, 나를 발견한 아빠의 눈빛에는 화 대신 안도의 한숨이 먼저 내려앉았다.


“여기 이서시냐."

(여기 있었구나.)


그 말 한마디에 막아두었던 댐이 무너지듯 눈물이 터져 나왔다.
아빠는 조용히 내 옆에 앉아 거친 숨을 고르더니, 마디 굵은 손을 천천히 내밀었다.


“이제 글라. 가야 낫으지."

(이제 가자. 가야 낫지.)


다시 치과로 향하는 길, 시장 골목 끝에서 철판이 터지는 굉음이 들렸다.
“팡!”

하고 피어오르는 하얀 연기와 고소한 냄새가 내 코끝을 간질였다.
내 발걸음은 자석에 이끌리듯 멈췄다.


“아빠, 저거 사주믄 가쿠다. 까까 먹으믄 안 무서울 거 같아마씨."

(아빠, 저거 사주면 갈게요. 까까 먹으면 안 무서울 것 같아요.)


“기여, 알았져. 사주켜."

(그래, 알았다. 사주마.)


봉지 속 뻥튀기는 갓 튀겨져 나와 뜨거웠다.
손끝이 데일 만큼 치열하고 정직한 온기였다.
나는 봉지를 품에 꼭 껴안고, 다시 치과 대기실 의자에 앉았다.
봉지 안에서 보름달처럼 크고 둥근 뻥튀기 하나를 조심스레 꺼내 혀끝에 올렸다.
과자가 침에 녹으며 사르르 부서지는 소리가 입안 가득 퍼지자, 지독했던 소독약 냄새가 조금씩 밀려났다.
진료실 안 기계음이 고막을 찌를 때마다, 나는 보름달을 조금씩 갉아 먹었다.
달이 작아질수록 내 마음속 공포도 함께 줄어드는 것 같았다.


아빠는 옆에서 스테인리스 컵을 든 채 나를 지켜보았다.
말은 많지 않았지만, 곁에서 느껴지는 그의 묵직한 숨결과 땀 냄새만으로 그 공간은 더 이상 감옥이 아니었다.
아빠는 내가 뻥튀기를 씹는 규칙적인 리듬에 맞춰 호흡을 조절하는 것 같았다.
내가 과자를 삼키면 아빠도 침을 삼켰고, 내가 몸을 떨면 아빠는 어깨를 더 단단히 감싸 쥐었다.
그 무언의 동조는 어린 나에게 ‘혼자가 아니다’라는 강력한 마취제가 되어주었다.


마침내 내 이름이 불리고 차가운 진료 의자에 눕혀졌을 때도, 나는 뻥튀기 봉지를 놓지 않았다.
날카로운 마취 바늘이 잇몸을 찌를 때 몸이 움찔했지만, 아빠가 내 이마에 커다란 손을 얹어주었다.


“아무충도 안 해. 다 끝나믄 아빠가 또 사줄게이."

(괜찮아. 다 끝나면 아빠가 또 사줄게.)


눈물이 귀부터 발끝까지 흐르도록 흘렸지만, 나는 눈을 꼭 감고 입안에 남은 고소한 잔향을 되새겼다.
아빠의 손바닥에서 느껴지는 투박한 주름과 온기는 세상의 어떤 의학적 처치보다 믿음직스러웠다.
아빠는 진료가 진행되는 내내 내 시선이 닿는 곳에 서서, 마치 거대한 성벽처럼 나를 감싸고 있었다.
진료가 끝나고 해가 낮게 기울어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을 때, 병원을 나서는 내 발걸음은 구름 위를 걷는 듯 가벼웠다.
치과 앞 돌계단에 앉아 아빠와 부서진 뻥튀기 조각을 한 줌 꺼내 먹었다.
아빠의 두툼한 손이 내 어깨에 닿았다.
그 미열은 저녁 햇살보다 오래, 깊게 내 피부 속에 남았다.


우리 똘, 장허다. 약속해시난 호나 더 사주카?

(우리 딸, 장하다. 약속한 대로 하나 더 사줄까?”


아빠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저으며, 넓은 등에 얼굴을 묻었다.
뻥튀기의 온기는 식었을지 몰라도, 아빠의 등에서 전해지는 열기는 여전했다.


지금도 문득 소독약 냄새를 맡으면 묘한 허기가 진다.
날카로운 두려움 옆에는 언제나 고소한 뻥튀기 향기와 아빠의 따뜻한 손바닥 온도가 붙어 있었다.
무서움과 사랑이 한 봉지 안에 무질서하게 뒤섞인, 그 뜨거웠던 뻥튀기처럼 나의 유년은 고소하고도 아릿하게 영글어갔다.
어른이 되어 내가 누군가의 보호자가 되었을 때, 깨달았다.
그때 아빠가 흘렸던 땀은 단순히 나를 뒤쫓아왔기 때문만이 아니었다.
자식의 고통을 대신할 수 없어 안절부절못하며, 비릿한 병원의 공기를 온몸으로 밀어내려 했던 한 남자의 처절한 사투였다.
나의 뻥튀기가 보름달이었다면, 아빠는 그 달이 뜨는 밤을 묵묵히 지켜주던 어두우면서도 든든한 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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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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