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말하자면... 불행한 가족사
밤하늘은 유난히 높고 깊었다.
검은 잉크를 풀어놓은 듯한 어둠 속에서 별들은 날카롭게 빛났다.
안방에서는 엄마의 낮은 신음과 고모할머니의 칵칵거리는 기침 소리가 섞여 흘러나왔지만, 우리 자매들은 거실 창가에 딱 붙어 앉아 있었다. 세상과 조금 떨어진 숨죽인 세계에서, 달빛만이 우리를 알아주리라 믿었다.
“시로짱, 너도 이리 와. 얼른!”
큰언니가 내 팔을 잡아끌며 창틀 쪽으로 밀었다. 언니들의 눈빛은 긴장과 흥분으로 번쩍였다.
“이번엔 진짜 아들여야 해. 안 그러면 우리 집 큰일 난대.”
“왜 큰일 나? 아빠가 화내?”
내 물음에 둘째 언니가 검지손가락을 내 입술 위에 올리며 속삭였다.
“쉿! 아빠가 화내는 정도가 아냐. 달님한테 빌어야 아들이 온단 말이야. 아들이 와야 아빠가 우리한테 맛있는 것도 더 많이 사주고, 너 좋아하는 사탕도 맨날 사주지. 알았어?”
어린 마음에 나는 단순히 장난감이나 사탕을 바라는 게 아니었다.
가족이라는 세계의 중심, 존재의 권리를 차지하고 싶은 욕망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 꿈틀거렸다.
아빠가 웃고, 내 손에 사탕이 쥐어지는 미래라면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나는 언니들을 따라 두 손을 모으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달은 이미 지붕 위로 솟아올라 자취를 감추었고, 희끄무레한 달빛의 꼬리만 간신히 보였다.
“어, 달님 도망갔다! 안 보여!”
“기다려봐. 달님이 위로 올라갔나 봐. 옥상 가자!”
큰언니의 단호한 결정에, 우리 세 자매는 좁고 가파른 계단을 올랐다.
“조용히 해, 엄마 깨면 안 돼!”
“언니, 무서워. 너무 깜깜해.”
“야, 아들 동생 갖고 싶다며! 얼른 와!”
맨발로 시멘트 계단을 밟으며, 발끝에서 등줄기까지 서늘한 긴장감이 올라왔다.
공포와 기대가 뒤섞여 가슴을 조였지만, 언니들의 손아귀가 나를 앞으로 밀어주었다.
그 압박 속에서 묘한 안도감을 느꼈다.
계단 밑에서는 바람이 골목을 스치며 불쑥 얼굴을 할퀴었고, 귀뚜라미 노래가 커졌다 작아졌다를 반복했다.
옥상 문을 밀고 나가자, 칼날 같은 밤공기가 우리를 반겼다.
그 순간, 집어삼킬 듯 거대하고 노란 보름달이 옥상 한복판에 덩그러니 걸려 있었다.
“와, 진짜 크다! 시로짱, 얼른 빌어!”
언니들의 재촉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옥상 가장자리에 서자, 아래층에서 들려오던 모든 소음은 사라졌다. 오직 매끄러운 달빛만이 우리 위로 쏟아졌다.
“달님! 아들로 태어나게 해 주세요!”
세 개의 가느다란 목소리가 허공으로 튀어 올랐다.
달빛은 눈부시게 차가웠고, 내 그림자가 옥상 바닥에 길게 늘어졌다.
기도와 동시에 나는 내 안에 자리한 공포와 외로움을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달님이 우리 소원을 들어주실까?’
마음 한구석에서 어린 나의 의심이 피어났다.
하지만 그 불확실함조차 묘하게 희열과 섞여 있었다.
며칠 뒤, 집안의 공기가 달라졌다.
엄마의 배가 요동치기 시작했고, 집 안에는 고모할머니의 분주한 발소리와 커다란 솥에서 끓어오르는 눅눅한 수증기 냄새가 떠돌았다.
나는 아빠가 기워 준 핑크색 토끼 가방을 가슴에 꼭 안고 다시 옥상으로 올라갔다.
손때 묻은 털 위로 닿는 손끝의 감촉에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안이 밀려왔다.
그날 밤, 달은 유난히 비대했다.
내 작은 얼굴만큼이나 큰 원을 그리며 세상을 비추었다.
전설의 고향에 나오는 하얀 소복을 입은 여자가 달님을 향해 기도하던 순간을 떠올리며 나는 두 손을 다시 모았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달님…
… 제발 아들이게 해 주세요. 꼭이요.”
두 손을 비비며 절을 하는 동안, 나는 기도와 동시에 내 안에 자리한 낯선 외로움을 들여다보았다.
달빛은 순수한 축복이면서, 동시에 나를 시험하고 있는 듯 냉철하게 나를 비추었다.
그 순간, 아래층에서 고막을 찢을 듯한 날카로운 아기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아빠의 격앙된 외침이 옥상까지 울렸다.
“아들이다! 아들이다! 드디어 아들이야!”
세상의 모든 축복이 밤하늘에 가득한 별처럼 우리 집 옥상 위로 쏟아지는 것 같았다.
마치 일본에서 본 마츠리의 하나비처럼, 폭발하듯 번쩍이며 빛났다.
하지만 내 등줄기를 타고 정체 모를 서늘한 냉기가 흘렀다.
환호가 커질수록 내 속에서는 설명할 수 없는 허기가 검은 구멍처럼 피어올랐다.
나는 토끼 가방을 으스러지도록 껴안았다.
초승달처럼 굽은 토끼 귀 위로, 아빠가 남긴 하얀 실밥이 차가운 달빛을 받아 서릿발처럼 빛났다.
달빛은 내 감정을 그대로 반사하는 거울 같았다.
밤이 깊어지자, 집 안의 지도는 소리 없이 재편되었다.
늘 엄마의 따뜻한 팔베개를 독차지하며 잠들던 나의 자리는 사라졌다.
남동생이 차지한 머리맡에서 나는 발치로 밀려났다.
낡은 솜이불 끝자락, 엄마의 거칠고 차가운 발목 옆이 내가 부여받은 새로운 영토였다.
처음 며칠은 목이 터져라 울며 저항했다.
다시 엄마의 품으로 기어 들어가려 발버둥 쳤지만, 나의 작은 울음은 새로 온 ‘권력자’의 울음에 번번이 묻혔다.
결국 나는 어둠 속에서 소리 없이 눈을 감는 법을 배웠다.
불이 꺼진 방 안, 어둠은 납덩이처럼 눌러앉았다.
천장을 올려다보며 두려움에 사로잡히면, 깊숙이 이불속으로 숨었다.
특히 밤의 정적을 깨고 들려오는 정체 모를 소음들이 나를 괴롭혔다.
저 멀리서 들려오는 기계음은 내 귀에 헬리콥터의 거대한 굉음으로 치환되어 들렸다.
‘두두두두’ 하는 그 소리가 가까워질 때마다, 나는 외계인들이 헬리콥터를 타고 우리 집 옥상 위에 내려앉아 나를 낚아채 갈 것이라는 공포에 휩싸였다.
창문 틈으로 스며드는 가느다란 달빛 줄기는 나를 찾아내려는 그들의 탐사 조명처럼 느껴졌다.
나는 어둠 속에서 필사적으로 두 손을 뻗어 엄마의 차가운 복사뼈를 꼭 붙잡았다.
굳은살 박인 거친 피부와 단단한 뼈마디의 형태가 손바닥에 선명히 박혔다.
‘혹시 외계인이 나를 데려가려 하면, 엄마 발목을 꽉 잡아서 같이 데려가게 해야지. 엄마도 같이 가야 해.’
그것은 사랑이라기보다 처절한 생존 본능이었다.
엄마의 몸 어딘가라도 붙들고 있어야만, 내가 이 세계에서 완전히 증발해버리지 않을 것 같았다.
옥상을 비추던 흰 빛은 더 이상 축복의 후광이 아니었다.
그것은 나를 무대 뒤편으로 밀어내는 서늘한 감시 조명이었다.
핑크색 털 위로 솟아오른 하얀 실밥만이 흉터처럼 또렷하게 자기 존재를 과시했다.
달빛 아래서 잃어버린 그 자리—
그것은 내가 세상에서 처음으로 목격한, 나의 ‘소멸’에 관한 기록이었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세상에서 가장 큰 축복이란, 때때로 나를 밀어낸 자리에 내려앉는 외로움과 책임의 무게 위에만 존재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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