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말하자면... 불행한 가족사
남동생이 태어난 다음 날, 언니들과 나는 약속이라도 한 듯 골목으로 뛰어나갔다. 가을 햇살은 유난히 투명하고 맑아 눈이 부셨지만, 발밑 시멘트 바닥은 이미 겨울의 전령처럼 서늘했다. 양말도 신지 못한 발가락을 한껏 움츠려야 했지만, 가슴속에서는 이름 모를 열기가 뜨겁게 치밀었다.
“진짜 아들이야! 이제 우리 집도 끝내준다!”
“이름도 승이야, 승! 이기다, 승리의 빅토리!”
큰언니가 두 팔을 높이 들어 승리의 V자를 그렸다.
나도 질세라 까치발을 들고 언니를 따라 허공을 향해 목청껏 소리쳤다.
“이름도 승리야, 승리! 비또리!”
동생의 실제 이름은 ‘승(勝)’이었지만, 다섯 살의 나에게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내 귀에는 ‘승리’라는 단어가 온전히 내 세계를 흔드는 주문처럼 들렸다. 장애를 가진 오빠를 둔 우리 집에, 건강한 남아의 탄생은 오랫동안 이어진 불운의 기록을 단숨에 끊어낼 신호탄이었다.
승이는 이름값을 증명하듯 발육부터 남달랐다.
백일이 조금 지난 아기의 몸에는 이미 연약한 선이 사라지고, 배는 보름달처럼 둥글게 솟았다.
이유식이 무엇인지도 모르던 시절, 엄마는 백일을 갓 넘긴 아기에게 된장국에 밥을 말아 먹였고, 다른 집 아기들이 제 주먹을 빨며 칭얼댈 때, 승이는 어른들이 쥐어준 돼지 비곗덩이를 장군처럼 굵고 오동통한 손에 꽉 쥐고 쪽쪽 빨았다. 엄마는 안도의 미소를 지으며 그 장면을 지켜보았다.
그렇게 먹어대는 동생은 영락없는 우리 집의 새로운 왕이었다.
그때 우리 집에서 ‘새우깡’ 한 봉지를 온전히 소유할 수 있는 절대 권력자는 오직 아기 승이뿐이었다.
바삭한 소리와 짭조름한 향이 방 안을 채우면, 언니들과 나의 시선은 자석처럼 동생의 작은 손가락 끝으로 모였다.
엄마가 봉지를 쥐어주는 순간, 방 안은 순식간에 난장판, 아니 거대한 도떼기시장으로 변했다.
“멍멍! 승이야, 누나 봐봐! 멍멍!”
“꿀꿀꿀! 여기다, 여기! 여기 좀 던져줘 봐!”
큰언니가 바닥에 엎드려 강아지처럼 혀를 내밀고 짖기 시작했다.
둘째 언니는 코를 실룩이며 돼지 울음소리를 냈고, 나 역시 엉덩이를 흔들며 합류했다. 감질나게 떨어지는 조각들은 우리 자매들의 배를 채우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참다못한 큰언니가 작전을 바꿨다.
아기 승이의 발치를 파고들며 봉지 밑바닥을 손가락으로 툭툭 건드리자, 봉지 입구에서 바삭한 과자들이 비명을 지르듯 떨어졌다.
“어! 떨어진다! 내 거야!”
“비켜! 내가 먼저 멍멍했단 말이야!”
바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우리는 손을 쓰지 않고 오직 입술과 혀끝만으로 과자 조각을 채가는 놀이에 몰입했다. 머리를 맞대고 서로를 밀치며, 짭조름한 가루와 바삭한 파편을 주워 먹는 광경은 흡사 먹이 쟁탈전을 벌이는 짐승들의 사투 같았다.
아기 왕은 누나들의 소동에 깔깔대며 봉지를 더 세게 흔들었고, 우리는 그 소용돌이 속에서 부끄러움도 잊은 채 전리품을 챙겼다.
그것은 단순한 과자가 아니라, 우리 가족이 공유하는 ‘승리의 증거물’이었다.
엄마가 아기를 안아 올리자 폭풍 같던 소동은 멎었다. 봉지는 너덜너덜해졌고, 우리는 천천히 무릎을 세워 일어났다.
언니가 무릎에 묻은 먼지를 툭툭 털며 속삭였다.
“야, 그래도 맛있었잖아. 그렇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입가 끝에는 새우깡 가루의 냄새가 훈장처럼 남아 있었다.
부엌 구석으로 들어온 햇살이 마치 새로 등극한 왕의 금관처럼 반짝였다.
발끝에 닿는 바닥은 여전히 차가웠지만, 언니들과 나는 기꺼이 꼬리를 흔들었고, 어린 왕은 완벽하게 군림했다.
그날 저녁, 나는 또 다른 비밀스러운 승리를 모의했다.
높은 찬장 위, 왕의 전유물인 분유통을 발견한 나는 숨을 죽이고 의자를 딛고 기어올랐다.
뚜껑을 열자 달콤하고 고소한 향이 코끝을 간질였다.
숟가락 가득 분유를 떠 입안에 넣자, 침과 섞여 끈적하게 달라붙는 진한 단맛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문틈 사이로 엄마의 시선이 머물렀다.
엄마는 화를 내는 대신 눈을 가늘게 접으며 웃었다.
나는 입술을 꾹 다물고 아무 일 없는 척 시치미를 떼었지만, 웃음을 참을수록 입안의 하얀 가루가 연기처럼 밖으로 튀어나왔다.
엄마는 한참을 웃다가 다가와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또 먹었구나, 우리 꼬맹이. 그렇게 맛있어?”
부끄러움보다 큰 따스함이 온몸을 감쌌다.
동생에게만 쏟아지던 관심의 결에서 잠시 비껴 나, 나만의 작은 장난에 웃어주는 엄마의 눈빛.
그 순간만큼은 차가운 바닥을 기는 강아지가 아니라, 엄마라는 거대한 우주 속에서 유일하게 빛나는 존재가 된 듯했다.
입가에 하얀 분유 가루를 묻힌 채, 나는 비로소 안도의 승리를 만끽했다.
낙원에서 밀려난 별이었지만, 엄마의 웃음 한 조각에 다시금 빛을 얻는 작은 소행성이 된 기분이었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승리란, 누가 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확보하는 순간의 달콤함과 같다.
세상의 권력과 관심이 모두 동생에게 쏟아져도, 내 마음속에 지켜낸 비밀의 영역이 존재한다면, 나는 여전히 살아 있고, 나만의 작은 승리를 누릴 수 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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