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장: 머리카락을 삼키는 밤

1부. 말하자면... 불행한 가족사

by 숨나

남동생 ‘승’이 태어나기 전, 나의 가장 깊고 은밀한 안식처는 엄마의 품보다 더 깊은, 검은 머리카락 숲 속에 있었다.
밤이면 나는 집요하게 엄마의 베갯속으로 파고들었다. 검고 굵게 곱실거리는 머리카락 사이로 얼굴을 묻으면, 짭조름하고 축축한 냄새가 코끝을 간질였다. 하루의 고단함, 제주 바닷바람에 스며든 소금기, 그리고 엄마의 체온이 뒤섞여 살아 숨 쉬는 생의 냄새였다.
나는 그 머리카락 한 움큼을 입에 물고, 혀끝으로 천천히 매만지듯 씹었다.


오도득, 잘근잘근.


그 소리는 내게 세상에서 가장 부드럽고 완벽한 자장가였다. 소리가 멈추면 숨이 막히는 듯했고, 나는 깜짝 놀라 잠에서 깨어났다. 엄마의 머리카락은 나를 세상과 연결해 주는 유일한 생명줄이었다. 씹는 행위는 내가 여전히 존재함을 확인하는, 처절한 의식이었다.
하지만 동생 ‘승’이 태어나자 모든 것이 달라졌다.
엄마의 몸은 갓난아이를 돌보는 공장처럼 쉼 없이 움직였고, 방 안은 젖 냄새와 눅눅한 기저귀 냄새로 가득했다. 나는 엄마 머리맡에서 밀려나, 이불 끝자락 발치의 차가운 공간으로 추방됐다.


“싫어! 나도 엄마랑 잘 거야! 아가 저리 치워! 고모 할매한테 데려가라고 해!”


처음에는 악을 쓰며 울었다. 세상이 무너지듯 소리치고 발버둥 쳤지만, 새로 온 왕의 거대한 울음 앞에서 내 반란은 무력했다.


“야, 이 울보, 떼보야. 언니가 업어줄게. 이리 와.”


여섯 살 위 큰언니의 등에 업혀 서러운 울음을 토하다 잠들면, 나는 어김없이 엄마 발치로 옮겨졌다.
아빠가 하얀 실로 꿰매 주었던 핑크색 토끼 가방을 필사적으로 끌어안아도, 입안은 모래를 씹은 듯 서걱거리고 허전했다.
혀끝이 공허해지자 나는 손가락을 빨고, 이불의 낡은 깃을 씹었다. 무엇이든 입에 넣지 않으면, 방구석 어둠이 나를 통째로 삼켜버릴 것만 같았다. 밤이 깊을수록 엄마의 머리카락이 간절했다. 그 촉감만이 나를 지켜주는 유일한 밧줄임을, 다섯 살의 나는 매일 밤 소리 없는 비명으로 깨달아갔다.


시간은 무심히 흘러, 나는 어느새 내가 두려워하고 동경했던 ‘엄마’라는 이름을 입었다.
낯선 땅, 창으로 스며드는 밤빛은 제주보다 창백하고 서늘했다. 두 아이가 내 양옆에 누워 규칙적인 숨을 내쉬고 있었다.
잠결에 뒤척이던 첫째가 내 머리카락을 한 줌 잡아 입으로 가져갔다.


잘근잘근.


작지만 익숙한 소리가 퍼졌다. 아이는 몹시 허기진 사람처럼 머리카락을 입안 가득 밀어 넣었다. 나는 조용히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반대쪽 가슴에 젖을 찾는 둘째를 내려다보았다.
한쪽 가슴은 젖을, 한쪽 머리칼은 기꺼이 내어준 채로, 나는 밤의 한복판에서 외로운 섬처럼 떠 있었다.
그 순간, 오래전 옥상 위로 쏟아지던 차가운 달빛이 시공간의 벽을 뚫고 방 안으로 스며드는 것 같았다.
엄마가 견뎠을 그 길고 고단한 밤들, 머리카락을 찾으며 소외감을 씹어 삼킨 어린 나, 그리고 젖을 먹이며 밤을 지새우던 엄마의 몸이 하나로 이어져 내 눈앞에 펼쳐졌다.
그러나 방 안의 정적을 깨는 외부의 소리가 들려왔다.
헬리콥터가 위에서 굉음을 내며 낮게 선회하고 있었다. 바람과 진동이 커튼을 흔들고, 아이들은 잠결에 몸을 움찔했다.
나는 순간, 옛날 옥상에서 달을 향해 빌던 나를 떠올렸다. 그때의 달빛, 그때의 긴장, 그리고 그 순간 느꼈던 서늘한 공기와 외부 세계의 위협감이 고스란히 겹쳤다.


“아….”


작은 탄식이 입술 사이로 흘러나왔다.
아이 입에 물린 머리카락은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를 잇는 하얀 무명실 같았다. 나는 머리카락을 빼내지 않았다. 오히려 아이가 더 깊이, 더 편안하게 물 수 있도록 고개를 낮춰주었다.
두피가 당겨지고 머리카락이 뿌리째 뽑혀 나가는 통증이 느껴졌지만, 마음속 깊은 구멍은 조금씩 채워졌다.
헬리콥터 소리는 곧 사라졌고, 나는 내 안에서 엄마의 그림자를 되살렸다. 씹히고 뜯겨도 괜찮았다. 아이들의 숨결만 고르게 이어진다면, 그것으로 충분했다.
머리카락을 삼키던 밤은 더 이상 불안의 밤이 아니었다.
그것은 한 여자가 다른 여자의 생을 온몸으로 통과하며 이해하는 길목이었고, 밤의 가장 깊은 곳에서 비로소 마주한 사랑의 처절하고도 아름다운 민낯이었다.
나는 비로소 아빠가 꿰매준 토끼 인형의 흉터가 왜 하얀색이었는지 이해했다.
그것은 어둠 속에서도 자식을 찾아낼 수 있는, 엄마의 머리카락과 닮은 가장 따뜻한 이정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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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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