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장: 열밤의 약속

1부. 말하자면... 불행한 가족사

by 숨나

그 여름은 약속으로 시작되었다.

엄마는 버스 창밖에서 손가락을 하나씩 펴 보였다.


“열 밤만 자면 데리러 갈게.”


열.

나는 손가락을 내려다보며 그 숫자를 믿었다.

초가집은 처음이었다. 부엌에는 검게 그을린 아궁이가 있었고, 마당 한켠 낮은 돌담 안에는 돼지 한 마리가 있었다.

작은언니와 나는 돼지우리에 기대어 ‘뽀빠이’ 과자를 부숴 여물통에 던져주었다. 돼지는 아무 의심도 없이 그것을 받아먹었다. 그 단순함이 우스워 우리는 한참을 깔깔대며 웃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 돼지가 나를 기다리게 될 줄은 몰랐다.


“할머니, 응가 마려워요.”


할머니는 돼지우리 옆 계단을 올라 작은 문을 열어주었다. 그 안에는 바닥에 난 구멍 하나가 있었다. 나는 그 구멍을 내려다보았다. 어둠 속에서 돼지가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할머니, 무서워요."

"메께라. 아무충도 안 해. 영 싸믄 된다게."
(아이고, 아무렇지도 않아. 이렇게 싸면 돼.)

할머니는 굽은 허리를 더 굽히시며 엉거주춤 앉아 볼일 보는 시늉을 해 보이셨다. 나는 할머니를 따라 구멍 양옆에 발을 올리고 섰다. 몸을 최대한 뒤로 빼고, 떨어지지 않으려 애쓰며 힘을 주었다.

그 순간, 아래에서 입을 벌리고 있던 돼지가 내 몸에서 떨어진 것을 받아먹었다. 그리고는 그 길고 축축한 혀가 내 몸에 닿았다. 나는 비명을 질렀다.

그날 이후, 그곳에 서는 일은 단순한 일이 아니게 되었다.

나는 겨우 허락을 받아 수돗가에서 소변을 해결할 수 있었지만, 큰일은 피할 수 없었다.

나는 구멍 위에 서 있을 때마다 내 몸의 일부가 누군가에게 넘어가는 기분을 느꼈다. 언니와 나는 말을 하지 않아도 알았다.

젖 먹던 힘까지 다 해 최대한 빨리, 엉덩이를 들고 최대한 닿지 않게. 우리는 늘 도망치듯 그곳을 빠져나왔다.


열 밤이 지났다.

엄마는 오지 않았다.

열 밤은 끝났지만 기다림은 끝나지 않았다.


밤이 되면 나는 혼자 수돗가로 갔다.

달빛은 희미했고, 물소리는 지나치게 크게 들렸다. 나는 그곳에서 기다리는 법과 작아지는 법을 배웠다.


낮에는 동네 아이들과 어울렸다. 바닷가 옆, 차가운 물이 솟아나는 돌담으로 둘러싸인 빨래터. 그곳에서 우리는 벌거벗고 물장구를 치며 놀았다. 몸이 얼어붙을 만큼 차가운 물에 들어가면 더위도, 기다림도 잠시 잊을 수 있었다.


어느 날, 작은엄마가 우리를 구멍가게로 데려갔다.


“하나씩 골라라.”


나는 아이스께끼 냉장고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하지만 선택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나와 언니는 50원짜리 ‘돌쇠바’, 사촌은 100원짜리 ‘돼지바’.


“언니… 나도 저거 먹고 싶어….
“조용히 해.”


내 옆구리를 찌르며 소곤거리는 언니의 말에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돼지바 겉면에 붙은 초코 조각들이 그날따라 유난히 반짝여 보였다.
나는 돌쇠바를 베어 물었다.

달았다. 하지만 그 단맛은 내 것이 아닌 것 같았다.


그리고 제삿날. 사람들 사이에서 웃고 있던 엄마가 나를 발견하고 두 팔을 벌렸다.


이리 온, 우리 딸.”


나는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열 밤이면 온다던 약속, 그보다 길어져버린 시간, 그 사이에서 내가 배운 것들이 말이 되지 못한 채 남아 있었다.

나는 엄마에게 가지 않았다. 대신, 아기처럼 기어서 작은엄마의 무릎 위로 올라가 꼭 안겨버렸다. 품은 따뜻했다. 하지만 그 따뜻함이 누구의 것인지 나는 알고 있었다.

사람들이 웃었다. 엄마도 웃었다. 나는 그 웃음 속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하나를 돌려주었다.

열 밤이면 온다던 약속은 그 여름이 끝날 때까지 끝내 오지 않았다.


지금도 가끔 그때를 떠올린다.
돼지의 눈빛,
아이스께끼의 맛,
그리고 엄마를 기다리던 마음까지.
그 여름은 아직도 내 안에 그대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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