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 이제야 비로소, 숨을 쉰다

by 숨나

오랫동안 내 글의 동력은 ‘원망’과 ‘수치’였다.
신원미상의 시체가 된 엄마,
일본에서 돌아와 하얀 국화로 연극을 하던 아빠,
평생 우리 집의 거대한 함정 같았던 오빠.
그들의 이야기를 꺼내는 일은 내 살점에 남은 흉터를 하나씩 다시 들추는 작업이었다.


브런치라는 낯선 공간에 이 불행한 가족사를 털어놓으며 나는 매번 스스로에게 물었다.
이토록 구질구질한 이야기를 누가 읽어줄까?
이 비겁한 위선을 고백해도 정말 괜찮은 걸까?
하지만 글을 쓰는 동안 깨달았다.
내가 주머니 속에 쑤셔 넣었던 건 엄마의 삼베 핀만이 아니었다.
정직하게 울고 싶었던 마음,
가슴 저린 욕망,
그리고
가여운 스무 살의 나 자신을 통째로 구겨 넣은 채 나는 오래 살아왔다.

호주로 건너와 아이들의 밥을 차리고 장난감을 치우는 일상 속에서,

메일함에 도착한 오빠의 부고는 나에게 마지막 숙제를 던져주었다.
이제 더 이상 도망칠 곳도, 숨을 책상 밑도 없었다.
오빠의 죽음으로 우리 가족을 옥죄던 팽팽한 매듭은 마침내 끊어졌다.
그것은 분명 비극이었지만, 동시에 해방이었다.
장례식에 가지 못한 채 호주의 맑은 하늘 아래서 아이들의 밥을 차리던 그 정적 속에서,

나는 비로소 오빠가 남긴 삶의 일부와 함께 살아가는 나를 온전히 받아들였다.

글을 쓰는 내내 내 눈은 뻑뻑했다.
장례식장에서 억지로 끼워 넣던 렌즈처럼,

진실을 직시하는 일은 늘 통증을 동반했다.
하지만 그 통증 덕분에 나는 정직하게 울 수 있었다.


이제 더 이상 주머니 속에 삼베 핀을 숨기지 않아도 된다.
진짜 루이비통을 짝퉁이라 비웃으며 버리지 않아도 된다.
내 안의 위선과 고백을 있는 그대로 펼쳐놓았을 때,

막혔던 숨은 비로소 크게 흘러나왔다.

이것은 단순히 불행한 가족사가 아니다.
그 불행을 뚫고 기어이 살아남아 오늘의 밥상을 차리고 글을 쓰는 한 인간의 치열한 생존 기록이다.
숨이 막혔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처음으로 제대로 된 숨을 들이마셨다.
이것이 내가 선택한 가장 서툰 고백이자, 가장 정직한 위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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