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소란이 집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막내의 울음소리, 첫째의 장난기 섞인 외침, 거실을 굴러다니는 알록달록한 장난감들.
호주의 일상은 늘 그렇게 정신없이 흘러갔다.
아이들을 씻기고, 먹이고, 재우는 반복 속에서 나는 ‘숨나’라는 사람을 잠시 잊은 채 엄마라는 배역에 충실하고 있었다.
잠깐의 틈이 난 오후, 식탁 끝에 앉아 노트북을 켰다.
밀린 이메일을 정리할 생각이었다.
수많은 광고 메일과 고지서 사이에서 익숙한 이름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한국에 있는 남동생이었다.
[온명이 소천]
메일 제목은 그 자체로 본문이었다.
시작이자 끝.
그 짧은 문장이 모니터의 하얀 여백을 날카롭게 베고 있었다.
동생은 군더더기를 붙이지 않았다.
오빠의 삶이 그러했듯, 그의 죽음도 간결했다.
마침표 하나 찍히지 않은 그 소식 앞에서 나는 한동안 화면만 바라보고 있었다.
“엄마! 배고파!”
거실에서 아이가 나를 불렀다.
방금 내 세상의 한 축이 무너졌는데, 아이는 여전히 배고프고 햇살은 식탁 위를 평화롭게 비추고 있었다.
호주와 한국 사이의 물리적 거리만큼, 나의 현실과 오빠의 죽음 사이에는 도무지 메울 수 없는 괴리가 존재했다.
당장 답장을 쓸 수도, 비행기 표를 알아볼 수도 없었다.
나는 다시 아이들 저녁을 준비하고, 흩어진 장난감을 치웠다.
그토록 오랫동안 차라리 빨리 죽었으면 좋겠다고 빌었던 나의 잔인한 저주는, 가장 바쁘고 가장 평온해 보이는 순간에 가장 초라한 이메일 한 통으로 배달됐다.
동생에게는 끝내 답장을 하지 못한 채, 의절 중인 언니에게 나 또한 이메일로 부고를 전하며 깨달았다.
우리 가족은 오빠라는 아픈 매듭을 끝내 풀지 못한 채, 그 매듭이 강제로 끊어져 나가는 순간에야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있었다는 것을.
차라리 잘됐다…
장례식에 가서 의절한 언니와 마주치지 않아도 된다는 비겁한 안도감과, 그 끝을 지키지 못했다는 서늘한 죄책감 사이에서 나는 책상 밑이 아니라 심장 가장 깊은 곳에 오빠를 문신처럼 새겼다.
호주 햇살이 창문을 뚫고 들어오던 그 오후, 메일함 한구석에 고여 있던 오빠의 흔적이 마침내 나의 일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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