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윽, 너무 짜네. 물 더 부어서 간 맞춰야겠다.”
나의 첫 된장찌개는 작은 뚝배기에서 시작해, 간을 맞추다 불어난 국물 때문에 결국 커다란 국솥으로 옮겨졌다.
처음 생닭을 마주했을 땐, 뽀얀 몸통이 갓난아기 같아 구역질이 올라왔다. 도저히 배를 가를 엄두가 나지 않는 생선 손질은 결국 집에 머물던 아빠의 몫이었다.
어린 시절, 텃밭 시금치만 주구장창 싸주던 엄마가 원망스러워, 남동생 도시락만큼은 기를 쓰고 소시지와 고기반찬으로 채웠다. 시금치 반찬이 부끄러워 뚜껑으로 가렸던 그 가난을, 내 동생에게는 물려주고 싶지 않았다.
지금도 남동생은 “누나 카레가 세상 제일 맛있다”고 한다.
몇 날 며칠 삼시세끼 카레만 먹인 적도 있어서 질릴 법도 한데, 동생 기억 속의 그 카레는 꽤나 애틋한 모양이다.
“누나, 돈 천 원만.”
“조그마니 피라이(조금만 피워).”
중학생 동생이 그 천 원으로 담배를 산다는 걸 진작 알았다. 꾸짖는 대신, 좋아하는 초코칩 쿠키도 사 먹으라며 이천 원을 쥐여주었다.
‘너무 멀리 엇나가지만 말아줘.’
그 비겁하고도 간절한 바람을 알았는지, 동생은 공부는 못해도 학교만큼은 꼬박꼬박 다녀주었다.
하지만 나라고 살림이 좋았을 리 없었다. 뻔히 언니들이 있는데 왜 가장 어린 내가 이 모든 걸 떠안아야 하나, 억울함이 치밀어 오르던 어느 날 나는 아빠에게 말했다.
“아빠, 이제 조근 언니헌티 살림이영 통장, 가계부 맡기쿠다.”
(아빠, 이제 작은언니한테 살림이랑 통장, 가계부 맡길게요.)
아빠는 늘 그렇듯 고개를 끄덕이며 짧게 답했다.
“경 허라.”
(그래라.)
속으로는 ‘이제 나도 숨 좀 쉬겠다’ 싶었다. 하지만 그 자유는 한 달을 채 가지 못했다.
언니에게 맡겼던 가계부는 차마 눈 뜨고 보기 어려웠다.
나는 택시비 천 원이 아까워 대형마트 셔틀버스를 타고, 박스 두 개를 한꺼번에 들지 못해 길바닥에 하나를 내려놓고 열 발자국씩 번갈아 옮겨가며 집까지 오곤 했다.
그런데 가계부에는 ‘책값’이라는 항목이 유난히 자주 등장했다. 내 촉은 그 돈이 어디로 흘러갔는지 굳이 묻지 않아도 알고 있었다.
“아빠, 안되쿠다. 내가 통장 관리 해사주. 언니는 돈 하영 써부러마씨.”
(아빠, 안 되겠어요. 제가 통장 관리해야지. 언니는 돈을 너무 써버려요.)
아빠는 이번에도 같은 말만 반복했다.
“경 허라. 너가 알앙 잘헐 테주.”
(그렇게 해. 네가 알아서 잘할 테니.)
아빠의 무기력함만큼 내 어깨는 다시 무거워졌다.
그 무거운 의무를 혼자 짊어지고 있기에는 나는 아직 어렸던 것 같다. 그 당시 나에게도 도피처는 필요했다.
밥상을 차려놓고 친구들과 술을 마시러 나가며,
“아빠, 나 도서관에서 밤새 공부할 거우다. 경 알고 밥 초려놔시난 드시고 먼저 주무십서예.“
(아빠, 저 도서관에서 밤새 공부할 거예요. 그렇게 아시고 밥 차려놨으니 드시고 먼저 주무세요)
아빠에게 뻔뻔한 거짓말을 했다.
밤늦게 쏘다니던 작은언니는 아빠 손에 붙들려 한웅큼 머리카락을 잘렸지만, 아빠는 나만큼은 단단히 믿었다.
집에서는 요망진(야무진) 살림꾼 딸로, 학교에서는 공강 시간마다 빈 강의실 구석에 앉아 전공 서적을 파고드는 학생으로 남았다. 지나가다 그 모습을 보고 기억해 둔 교수님은 시험 점수를 후하게 쳐주셨다.
‘나’라는 사람은 사라지고 필요한 역할만 남은 연극 같은 생활이었다.
엄마의 사십구재가 채 끝나기도 전이었다.
머리에 하얀 삼베 핀을 꽂은 채 나이트클럽 조명 아래 서 있던 밤.
반짝이는 스포트라이트가 얼굴을 훑고 지나갔다.
나는 아무도 모르게 삼베 핀을 뽑아 주머니 속 깊숙이 넣었다.
삼베 핀 대신 요란한 리듬이 나를 삼켰다.
그 순간만큼은 소녀가장도, 집안의 살림도 사라지고 그저 스무 살 대학생으로 서 있었다.
주머니 속에서 삼베 핀이 살을 찌르는 것 같았지만 나는 더 세게 몸을 흔들었다. 그래야만 잠시라도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 믿음을 배신하는 것이 내게는 그리 아프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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