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막힘 : 엄마의 몸값과 소녀가장의 장바구니

by 숨나

“야이 뭐랭 고람시냐. 땅 파믄 돈이 나오냐.
경 헐거믄 어멍 몸 팔앙 사라.”
(얘가 뭐라는 거야. 땅을 파면 돈이 나오니? 그럴 거면 엄마 몸 팔아서 살아.)


돈이 급할 때면 엄마는 딸 앞에서 그런 모진 말을 서슴지 않으셨다.


“늙은 몸 누가 산다고… 할아방도 안 살 거우다.”
(할아버지도 안 살걸요.)


나의 비아냥에 엄마는 멋쩍은 듯 피식 웃으셨다.
보험 외판원으로 시작해 지점 소장까지 오르셨던 엄마는 실적이 저조할 때마다 자신의 명의로 보험을 들었다.
그리고 그 보험들은 엄마의 사후, 역설적으로 우리 가족의 돈 걱정을 씻어주었다.
그해 대한민국은 IMF의 파도에 휩쓸렸다.
은행 저축 이자가 20%까지 치솟았다.
남들은 세상이 무너진다 비명을 질렀지만,
우리는 엄마의 사망 보상금을 은행에 넣고 그 이자만으로도 살아갈 수 있었다.


겨우 만 스무 살.
나는 동네 은행의 VIP 고객이 됐고,
동시에 소녀가장이 되었다.
엄마가 떠나자 집안의 풍경도 변했다.
오십 대 중반의 아빠는 엄마의 “돈 벌어오라”는 닦달에서 해방됐고,
집안의 살림 밑천이었던 큰언니는 호텔 서빙 일을 그만두고 자유를 찾아 일본으로 떠났다.
오빠는 여전히 방바닥에 침을 바르며 자기 세계에 갇혀 있었고,
작은언니는 밤늦도록 밖을 돌아다녔다.
결국 중학교 3학년 남동생과 대학생인 나만이 집을 지켰다.


“숨나야, 우리 수업 끝나면 술 마시러 갈 건데 너도 같이 갈래?”
“어? 나 소녀가장이잖아. 시장 보고 밥하러 가야지. 아, 이제는 소녀가 아니니 처녀가장인가.”


나의 자학적 농담에 친구들의 눈빛은 갈 곳을 잃었다.
친구들이 낭만을 말할 때, 나는 대형마트에서 장을 봤다.
두 손 가득 짐을 들고도 택시 대신 버스를 탔다.
택시비가 아까워서가 아니었다.
엄마의 몸값과 바꾼 그 보상금을 차마 허투루 쓰고 싶지 않은 나의 초라하고도 억센 고집 때문이었다.

마트 계산대 위, 무거운 장바구니를 들며 깨달았다. 이 돈은 엄마가 자신의 목숨을 저당 잡히고 남겨준 마지막 선물이라는 것을. 스무 살 처녀가장의 어깨 위에는 엄마의 생명 하나가 고스란히 얹혀 있었다.

​장을 보러 은행에 가서 돈을 출금하는 일이 익숙해질 무렵이었다.

어느 날, 은행 마감을 앞둔 시간에 방문했더니 시스템 문제로 출금이 불가능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당장 장을 봐서 저녁 상을 차려야 하는 나에게 그 소리는 청천벽력과도 같았다.

조급함은 이내 분노로 변했다.

나는 은행 직원 앞에서 보란 듯이 집에 계신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빠, 나 은행 와신디 돈 못 뽑는댄. 여기 뭐 문제 있댄 햄신디, 그냥 이 은행에 있는 예금이영 적금 다 빼고 딴 데로 옮겨불카마씨?"
(아빠, 저 은행 왔는데 돈 못 뽑는대요. 여기 문제 있다는데 그냥 이 은행 예금이랑 적금 다 빼서 딴 데로 옮겨버릴까요?)


​일부러 직원이 들으라고 내뱉은 서슬 퍼런 소리였다.

수화기 너머 아빠는 늘 그렇듯 기운 없는 목소리로 단 한 마디를 던졌다.


"기여. 니 ᄆᆞᆷ냥허라."
(그래. 네 마음대로 해라.)


​어린 학생의 입에서 나온 예금 인출 협박에 은행 창구는 순식간에 술렁였다. 결국 나는 그날 기어이 원하는 돈을 손에 쥐고 은행 문을 나섰다.


​그 선택은 즉흥이 아니었다.

어릴 적부터 엄마를 쫓아다니며 어깨너머로 배운 시장판의 생존 기술이었다.

엄마는 시장 상인들의 보험료가 밀리면 일수라도 찍듯 두부나 콩나물이라도 매일 얻어오며 그 구멍을 메꿨다. 상인들이 맘 편히 일해야 보험료도 낼 수 있다며, 그 집 어린 아들을 우리 집으로 데려와 밥을 먹이고 우리 자매에게 보모 노릇을 시키기도 하셨다.


​내가 조금 머리가 굵어지자 엄마는 나를 직접 시장으로 등 떠밀었다.

일하는 아저씨, 아주머니들에게 돈 받으러 왔다는 소리를 하는 건 죽기보다 싫은 고역이었다.

하지만 빈손으로 돌아가면 그날 집안의 공기가 달라졌기에 나는 그들이 돈을 줄 때까지 시장 한구석에 망부석처럼 서서 장사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아이를 매몰차게 돌려보내지 못하는 어른들의 무른 마음을 이용하라는 엄마의 지독한 전략이었다.

​그 덕에 나는 은행 VIP로서 허락된 가장 거친 얼굴을 쓰고 원하는 것을 얻어냈다.
하지만 은행을 나서는 발걸음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쩔쩔매던 은행 직원의 얼굴 위로 한때 시장 바닥에서 하루를 버티던 아주머니들의 얼굴이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스무 살의 나는 그렇게, 타인의 고단함을 딛고서라도 내 몫의 생존을 유지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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