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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LS Jun 10. 2022

틀린 그림 찾기

  푸른빛 린넨 셔츠와 하얀 팬츠를 한 번씩 쓸어내린 후 주안은 커다란 나무 문을 열고 식당에 들어서 노란 노을 빛이 드는 식당 내부를 천천히 둘러보았다. 자신도 약속 시간보다 5분 정도 일찍 도착했지만 왠지 먼저 와 있을 것 같은 사람이었다. 주안을 발견한 종업원이 다가왔지만 그가 채 안내를 해주기도 전에 수현이 있는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저기, 일행이 있네요.”

  수현이 있는 곳으로 다가서며 설렘과 긴장이 공존하는 감정이 입꼬리로 배어나왔다. 깔끔한 하얀 셔츠에 검정 정장 바지를 입은 차림새의 수현에게 말을 걸기 전, 주안은 목을 한 번 가다듬었다.

  “주수현 씨 맞으시죠? 이주안입니다.”

  “앗, 네 안녕하세요. 주수현입니다. 여기…….”

  자리에서 일어서며 다소 어색하게 자신의 앞자리를 두 손으로 가리키며 앉으라는 수현의 엉거주춤한 포즈에 주안은 웃기다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입 주변 근육이 움직였지만 팍 웃음을 터뜨리면 상대가 당황할 것 같아 얼른 시선을 거두고 웃음기를 증발시켰다. 주안은 자리에 앉아 앞에 있는 물티슈로 손을 닦으며 수현을 바라보았다. 만나기 전, 연락을 주고받을 때도 수다스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실제로 보니 살짝 아래로 내려간 눈썹부터 엷은 눈웃음까지 이 사람이 얼마나 차분한 사람인지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수현 씨, 일찍 오셨네요.”

  “네, 저희 회사 근처로 장소를 잡아주셔서 편하게 왔어요. 오는 길이 불편하지는 않으셨어요?”

  “네. 전철로 20분 정도 걸리더라고요. 평일 저녁인데 시간 내주셔서 감사해요.”

  “아녜요.”

  수현은 아니라고 말한 이후 ‘제가 오히려 고맙죠’, ‘별말씀을요’, ‘바쁘신 중에 와주셔서 감사해요’ 등의 뒷말을 생각보다가 틈이 너무 길어져 타이밍을 놓쳐버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눈을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는 주안의 눈빛에 뭐라도 말을 해야겠단 생각이 빠르게 들었다.

  “배고프실 텐데 음식 시키고 이야기 더 나눌까요?”

  메뉴판을 주안 앞으로 급하게 내밀고는 얼른 무릎 위에 다시 손을 올렸다. 주안은 사람 좋은 눈웃음을 보이며 다시 수현과 자신의 사이로 메뉴판을 돌려놓았다.

  “좋죠.”




  “수현 씨는 개발 업무 하신다고 들었어요. 어떤 업무 하시는 거예요?”

  주문한 파스타와 피자가 나오고 주안이 피자 한 조각을 들어 수현의 접시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수현은 자신이 받는 피자 위에서 위태롭게 팔랑이는 바질이 테이블로 떨어질까 조심스럽게 내려놓으며 말했다.

  “아, 저는 앱에서 생기는 작은 버그들 처리하고 있어요. 앱 화면에 보이는 부분을 제가 만들거나 하는 건 아니고요.”

  “아 그렇구나. 앱 업데이트할 때마다 버그 개선이 됐다고 하는 메시지를 보긴 했는데 그걸 하시는군요. 어떤 앱 맡고 계신 거예요?”

  “저는 지금 AB은행 앱 주로 맡고 있어요”

  “와, 저 그 은행이 주거래 은행인데. 제 돈을 안전하게 지켜주는 분이 수현 씨였군요.”

  “보안팀은 또 따로 계시긴 하지만 제가 처리하는 업무도 도움은 좀 되겠죠?”

  “그럼요. 감사합니다. 혹시 제 통장 잔액도 버그가 좀 생긴 것 같은데 늘려주실 수 있나요?”

  주안의 순간적인 유머에 수현은 크게 웃음을 터뜨려버렸다. 포크를 든 오른손으로 입을 가리며 편안한 웃음을 지으니 주안도 자신의 유머에 뿌듯해하며 같이 따라 웃었다.

  “그거 버그 때문에 그런 것 정말 맞아요?”

  주안은 얌전할 것만 같았던 수현이 자신의 유머를 받아치는 것에 놀라 수현을 바라보는 눈이 살짝 커졌다. 이내 파스타를 스푼과 포크로 동그랗게 말며 기분 좋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버그 지배자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니 이제 잔액 보면서 버그 탓도 못 하게 됐네요.”

  “하하, 주안 씨 재밌으시네요. 마음 아프셨다면 죄송해요.”

  ‘재미있다’는 말과 어울리나 싶은 ‘죄송하다’는 말을 자연스럽게 엮으며 수현은 피클을 콕 찍어 먹었다.

  “주안 씨는 시청에서 일하신다고 들었어요. 어떤 일을 주로 하세요?”

  “저는 도로관리과에서 일해요. 지금 맡고 있는 건 도로 관리, 보수 쪽이라 현장 나갈 때도 있고, 시청에서 민원 처리할 때도 있어요.”

  “그렇구나. 현장도, 민원도 다 힘들 것 같아요.”

  “그래도 현장에 가서는 제가 직접 공사를 하는 건 아니니까 육체적으로 크게 힘들지는 않아요. 저는 관리, 감독하는 역할이라서요. 어떨 땐 민원 처리가 훨씬 힘들 때도 있어요.”

  “민원 정말 힘들다고 말은 많이 들었어요. 진상… 그런 사람들이 전화 자주 와요?”

  “자주는 아니라도 한 달에 한 명 정도는 큰 진상 걸리는 것 같아요.”

  “어떤 민원이길래요?”

  “왜 자기 출근길에 공사를 하냐, 거긴 길이 왜 갑자기 좁아지냐, 언덕길을 깎아라, 도로 넓혀라, 신호등이 왜 이렇게 짧냐 뭐 이런 것들이에요.”

  “아, 진짜 별의별 민원이 다 들어오는군요. 그래도 TV에서 보는 아주 심각한 진상은 없는 것 같아 다행이네요.”

  “저 내용을 고성을 지르고, 생전 처음 들어보는 다채로운 욕을 섞어서 한 달 내내 전화하니까 문제죠.”

  이어 주안은 자신이 겪은 황당한 민원, 자신의 업무 실수로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었다. 수현은 주안의 이야기에 웃음 지으며 편안하게 식사를 할 수 있었다. 남은 음식이 거의 사라져 갈 때쯤, 주안은 수현이 가지런히 내려 놓은 스푼과 포크를 확인한 후 웃으며 말했다.

  “더 자세한 민원 얘기는 우리 기분 좋게 달달한 거 마시면서 얘기하러 갈까요?”




  옮겨온 곳은 식당에서 멀지 않은 테라스가 있는 카페였다. 너무 덥지도, 춥지도 않은 기온이라 수현과 주안은 테라스석에 자리를 잡았다. 주안은 차가운 초콜릿 라떼, 수현은 차가운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주변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음료의 맛을 이야기하고, 잠시 적막이 흘러 둘은 빨대로 각자의 얼음을 달그락 거렸다.

  “요즘 정말 날씨 좋은 것 같아요. 수현 씨는 산책 좋아하세요?”

  “네, 산책 좋아해요. 집 근처에 수변 공원이 있어서 시간 될 때마다 걸으려고 해요.”

  “그러시구나. 저도 산책 좋아해요. 저도 집 근처 공원 돌거나 주말에는 자전거 타면서 강가를 돌기도 하고요.”

  “운동을 좋아하시나 봐요.”

  “전문 운동인 수준까지는 아닌데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움직이는 걸 좋아하는 것 같아요. 수현 씨는요?”

  “저는 집에 있는 것을 좋아하기는 하는데 집 안에서 가만히 있지는 않아요. 청소하거나 만들기나 그림 그리는 거 좋아해요.”

  “와, 진짜 부지런하시네요. 청소가 진짜 에너지 많이 드는데, 그쵸.”

  “네 그런데 가만히 있으면 너무 심심하더라고요.”

  “저는 그래서 자꾸 집 밖으로 나가요. 걷거나 카페라도 가서 책 읽거나 하려고요. 그림은 어떤 그림 그리세요?”

  “아, 엄청난 건 아니고. 태블릿으로 인물이나 동물, 식물 이런 거 그리는 거 좋아해요.”

  “그렇구나. 그림 잘 그리시나 봐요.”

  “아뇨. 어릴 때 그냥 조금 좋아한 정도에요.”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몇 개만 보여주실 수 있어요?”

  “네? 아… 잘 그리진 못하지만…….”

  수현은 조금 수줍은 듯 주저하다가 가방에서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깔끔한 남색 휴대폰의 잠금을 해제하고 수현은 자신의 웹 드라이브에서 잠시 고민을 하다 최근에 그린 그림 몇 가지를 보여주었다.

  “이거예요.”

  주안이 받아든 화면에는 포근해 보이는 갈색 털의 강아지 두 마리가 있었다. 아니, 한 마리라고 해야 할까. 화면의 왼쪽과 오른쪽이 꼭 같은 강아지 두 마리가 같은 자세, 같은 표정으로 정면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엇, 쌍둥이 강아지예요?”

  “아, 아뇨. 쌍둥이는 아니고……. 조금 달라요.”

  “다르다고요? 똑같아 보이는데……. 아!”

  갈색 강아지 두 마리는 같아 보이지만 달랐다. 귀가 말려 있는 모양, 목걸이의 색, 주변 장난감의 모양, 배경들이 조금씩 다른 것이 그제야 주안의 눈에 보였다.

  “이거, 그거 같아요. 틀린 그림 찾기!”

  “아, 맞아요. 많이 해보셨나 봐요.”

  “어릴 때 많이 했었죠. 와 이거 진짜 좋아했는데. 틀린 그림 찾기를 그리신다고요? 특이한데요.”

  “하하, 네 취미에요. 그냥 그림 그리는 것보다 이게 더 재밌더라고요.”

  “그런데 같은 그림 두 번 그리려면 힘들지 않으세요?”

  “태블릿으로 그리니까 하나 그려놓고 복사해서 붙여넣기 하면 돼서 요즘은 그렇게 힘들진 않아요.”

  “아, 그렇겠네요. 그런데 어떻게 틀린 그림 찾기를 취미로 그리게 되셨어요?”

  “아 그게요. 글쎄요……. 시작은 조카 때문이었어요.”

  “조카요?”

  “네. 저한테 조카가 한 명 있거든요. 몇 년 전에 걔가 다섯 살 때쯤인가? 틀린 그림 찾기를 같이 하자고 종이를 몇 장 들고 오더라고요. 색칠은 안 되어 있고, 선으로만 그려진 그림이었는데 틀린 그림 찾기가 너무 오랜만이라 반갑더라고요. 조카는 저랑 같이 한다고 더 신났고.”

  “조카가 수현 씨를 엄청 좋아하나 보네요.”

  “네. 저도 조카 정말 좋아해요. 삶의 활력소거든요. 조카랑 같이 하면서 저는 이미 눈으로는 찾았는데 입으로는 계속 ‘와 너무 어렵다’, ‘대체 어디가 다른 거지?’하면서 괜히 답 있는 쪽 가리키면서 ‘모르겠네 정말. 여기 이 쪽에 있나?’라고 말하면 조카가 ‘여기 있다!’ 하면서 찾고. 재밌었어요. 조카가 좋아하는 모습이 너무 귀엽기도 하고. 조카가 좋아하다 보니 제가 그린 그림으로 만들어주고 싶더라고요.”

  “와, 조카가 엄청 좋아했겠어요.”

  “너무 좋아하죠. 요즘은 더 어렵게 만들어 달라고 하고, 틀린 그림 5개 말고 10개로 만들어오라고 하고 아주 까다로운 고객님이 됐지만요.”

  “그래도 일하느라 바쁘실 텐데 조카 틀린 그림 찾기도 그려주고 진짜 대단하신데요.”

  “제가 좋아서 하는 거예요. 일기 쓰는 것처럼요.”

  “일기요?”

  “네. 틀린 그림 찾기를 하려면 뭔가를 보고 그려야 하잖아요. 그럼 주로 제 사진첩에 있는 것들을 보고 그리게 되는데 돌이켜보면 나의 최근 일을 내 손으로 그려내는 거니 일기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렇겠네요. 그림일기.”

  “네. 그림에 글을 써넣지 않아도 제 감정이 녹아드는 것 같아요. 그리고 틀린 그림 찾기 그리다가 가끔은 정말 아예 다른 그림을 그리기도 해요.”

  “아예 다른 그림요?”

  “네. 다른 그림.”

  수현은 순간 자신이 너무 많은 얘기를 하나 싶어 말을 잠시 멈추었다. 주안의 눈을 쳐다보니 자신의 얘기를 궁금해하는 표정이라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야기를 이어나가도 괜찮을 것 같았다.

  “예를 들어서, 저희 엄마 사진을 틀린 그림 찾기로 그린다고 하면 처음에는 같은 사진을 보고 엄마의 안경이나 옷깃에 있는 디테일이나 배경, 테이블의 나뭇결 이런 것만 다르게 그렸었거든요. 그럼 정말 틀린 포인트들을 일부러 만들어내서 그리는 거죠. 그런데 그리다 보니 엄마는 1년 전과 지금이 다르잖아요. 10년 전은 더 그럴 거고. 그래서 일부러 요즘엔 한 번씩 최근에 찍은 엄마 사진을 보면서 먼저 하나 그리고, 다음에는 같은 배경인데 인물은 10년 전 엄마의 모습인 것처럼 그려봐요. 살도 좀 덜 찌고, 주름도 더 적은 모습으로.”

  “그럼 그건 오히려 ‘같은 그림 찾기’가 되는 거 아니에요?”

  “하하, 그럴 수도 있죠. 그런데 이런 식으로 그리면 틀린 그림을 찾으라고 할 때 우리 엄마를 전체로 동그라미 치게 될 거잖아요. 그런데 그 동그라미 하나 안에 얼마나 많은 의미가 들어있을까 생각해보게 되는 거예요. 엄마의 외모도 변했을 거고, 성격도, 겪은 일은 더 많아졌을 거고, 새로 사귄 친구, 더이상 연락하지 않는 친구, 하는 일, 감정 많은 것이 변했잖아요. 그러면 그 그림을 한참 쳐다보게 돼요. 엄마한테 물어봐도 되겠지만 굳이 물어보지는 않아요.”

  “엇, 왜 안 물어보시는 거예요?”

  “글쎄요. 때로는 저 스스로의 상상 속에 엄마를 그대로 두고 싶을 때가 있어요. 작가로서 상상의 자유를 누리는 것일 수도, 엄마에게 말하지 않을 자유를 주는 것일 수도.”

  “심오하네요…….”

  “그런가요?”

  주안은 이해하기 위해 힘을 쓰고 있다는 듯 눈을 가로로 길게 뜨고 입을 앙 다물었다. 수현은 자신의 생각을 주안에게 말한 것이 쑥스럽다는 듯 빨대로 커피를 저으며 입꼬리만 올릴 뿐이었다. 주안은 고개를 돌려 먼 하늘을 바라보다가 눈을 돌려 수현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럼 상상과 현실이 다르면 어떻게 해요?”

  “네?”

  “아니, 내가 상상한 엄마가 겪은 일들, 감정, 생각, 성격은 이런 건데 사실 엄마는 그런 일을 겪지도 않았거나 아니면 겪었어도 그런 감정이나 생각을 느끼지 않았다면요?”

  “어…….”

  수현은 갑작스러운 질문에 사뭇 놀라며 주안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눈동자를 왼쪽으로 한 번, 오른쪽으로 한 번 오간 후 웃으며 말했다.

  “그냥 둬요.”

  “그냥 둬요?”

  “네.”

  짧은 대답 후 수현은 혼자 커피를 바라보며 조용한 웃음을 지었다. 주안은 수현이 왜 웃는지 궁금해졌지만 바로 묻지는 않고 수현의 얼굴을 궁금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음, 좀 신기하네요.”

  “네? 뭐가 신기해요?”

  “제가 그림 그릴 때, 실제로 상상한 것과 실제의 차이를 생각하면서 그리거든요. 그래서 이렇게 질문하실지 몰랐어요.”

  주안은 자신이 좋은 질문을 했다는 생각에 으쓱해졌고 목을 길게 하며 허리를 세워 자세를 고쳤다. 차분하게 손깍지를 끼며 낮게 웃으며 수현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아, 음. 상상한 것과 실제의 차이를 그린다는 것은 제가 생각이 많고, 걱정도 많은 편이라서 한 번씩 다른 사람을 그리거나 예전에 기르던 강아지를 기를 때도 그 사람의 가장 예쁜 모습이나 웃는 모습을 그리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불안했어요. 언젠가는 이 웃음도, 행복도 뒤덮는 불행이 닥치는 날이 올 수도 있겠지. 아플 수도 있고, 안 좋은 일이 생길 수도 있겠지. 지금 이런 이 사람은 어디가 아프니까, 우리 강아지는 고질병이 쿠싱 증후군이니까 하면서요. 그러면 내가 그리는 그 사람의 현재와 내가 생각하는 그 사람의 미래에서 괴리가 생기더라고요.”

  “실제로 아는 인물이나 동물들을 그리다 보면 그런 생각이 들 수도 있겠네요.”

  “네. 그래서 마음의 위안을 얻으려고 그림을 그리는데도 내가 보고 그리는 사진은 밝게 웃고만 있는데 제가 그린 그림은 왠지 얼굴이 그늘져 보이기도 하고, 강아지 눈빛이 슬퍼 보이기도 하고. 그러다 보면 사진과 제 그림의 분위기에서 틀린 그림 찾기를 하고 있기도 하더라고요.”

  “그런데 그렇게 걱정을 하면서 그림을 그리는 이유가 있어요?”

  “글쎄요. 어렸을 때는 이러지 않았는데 자라면서 크고 작은, 예상치도 못한 나쁜 일들이 닥치잖아요. 어떻게 막을 수도 없는. 그런 일들을 겪다 보니 조금만 아프거나 나쁜 징조가 보이면 바로 부정적인 쪽으로 생각의 고속도로가 뚫리듯이 가게 되더라고요. 생각해보면 할아버지나 할머니의 죽음, 반려견의 죽음 이런   제가 어쩔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도요.

  “그러셨구나. 그럼 그렇게 상상과 현실의 괴리를 느끼다가 마무리는 어떻게 돼요?”

  “ 찾으면 그걸로 끝이에요. 내가   있는 불행의 상상은 거기까지. 예전에  심할 때는  상상의 가지가 어디까지 어갈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상상했어요.  해야 한다는  알면서도 멈춰지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틀린 그림 찾기의 기본 룰을 다시 생각해봤어요.”

  “기본 룰이요?”

  “네. 틀린 그림 찾기는 몇 개가 다른지 정해져 있잖아요. 3개면 3개, 5개면 5개. 그래서 딱 5개까지만 생각해보기로 했어요. 이전에는 10개, 20개씩 생각했었는데 5개 생각하면 이제 끝. 더 찾을 것도 없다.”

  “오, 괜찮은 방법이네요.”

  “네. 그래서 개수를 제한하니까 그나마 덜하게 돼요. 아예 안 하는 것보다 덜 하는 게 쉽더라고요.”

  “방법이 잘 통했네요. 다행이에요.”

  “다행……. 그렇죠. 다행이에요, 정말.”

  주안은 수현이 자신의 부정적인 생각을 해결하기 위해 스스로 방법을 찾고, 해결하는 점이 신기하기도 하고, 일면 대견하기도 했다. 주안은 크게 긍정적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부정적인 쪽으로도 생각을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걱정을 많이 하는 수현이 이해가 가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문제를 파악하고 스스로 해결책을 찾는다는 것이 신기했다.

  “저는 뭐가 있을까요.”

  “네? 뭐가 있다니요?”

  “저 스스로 가진 약점이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점이요. 수현 씨는 틀린 그림 찾기 하면서 스스로 낫게 하고, 그러니까 치유를 하기도 하고, 또 더 낫게, 나아지기 위해 노력하는데 저도 스스로 그렇게 하는 점이 있나 싶어서요.”

  “하하, 그렇게 말씀하시니 제가 되게 거창해 보이네요. 그림 그리면서 생각해본 게 다인데요. 음, 애초에 부정적인 생각을 잘 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좋은 거 아닌가요? 문제가 없는 상태라면 그것도 좋은 것이고요.”

  “그렇죠.”

  “더 나아질 레벨이 없는 것, 현재가 아주 편하고 잘살고 있다는 것이니 꼭 찾아내려고 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은데요.”

  “그럴까요? 근데 그게 제가 모르거나 덮어두고 있는 것일 수도 있는데요?”

  “제가 굳이 부정적으로 문제 찾아보기 달인이라서 아는데 남들이 나에게 이야기하지 않는 문제를 내가 찾아내서 걱정필요가 없어요. 그냥 그대로 사셔도 좋아요. 마음 편한 것이 가장 좋죠.”

  “그런가요.”

  주안은 수현의 말에 위안을 얻으며 기분이 좋아졌다. 자신이 잘살고 있다는 것. 굳이 어떤 문장으로 떠올려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누군가의 말로 직접 들으니 행복해지는 문장이었다.

  “하나 찾은 것 같네요.”

  “뭘 찾아요?”

  “틀린 그림이요. 수현 씨와 저의 서로 다른 점. ‘틀린’이 아니라 ‘다른’이라고 해야 하나.”

  주안은 굳이 검지와 중지를 따옴표처럼 만들어 굽혔다 펴면서 ‘틀린’과 ‘다른’의 차이를 강조하였다.

  “하하 그러게요. 1점 얻으셨네요.”

  수현은 주안의 농담에 기분이 좋아졌다. 그러다 자신이 한 말이 마음에 탁 걸려들었다.

  “1점…….”

  잔에 맺힌 물방울을 검지로 흩뜨리며 수현은 생각에 잠겼다. 주안은 수현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일까. 수현은 미소를 짓더니 주안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서로 다른 그림을 찾고 얻을 건 괴리감이 아니라 점수였네요.”

  주안은 무슨 말일까 싶어 눈썹을 살짝 들어 올렸다가 수현이 그림을 그리며 들었다는 부정적인 생각들이 떠올라 곧장 수현을 이해하는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예측과 현실, 타인과 . 다를 수밖에 없는데 다르면  되는 것처럼 생각했던  같아요. 점수를 얻을 것도 아니면서 서로 다른 점만 계속 찾으려고 했어요.”

  “그러셨군요.”

  “네. 이젠 그냥 다른 점 확인하면 ‘다르네? 1점. 끝.’ 이렇게 생각하고 넘겨야겠어요. 그래봤자 1점이고, 레벨 업할 것도 아니니 굳이 찾으려 들지는 말고.”

  “잘 생각하셨어요.”

  주안은 수현의 뿌듯한 미소를 바라보았다. 주안은 따라 웃으며 수현과 자신이 서로 다른 그림 찾기를 해나가면 즐거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렸을 때 보았던 그림들에서 서로 같은 점을 주로 보며, 어쩌다 발견한 다른 점이 반가웠던 느낌을 상기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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