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아이들 - 달빛 창가에서
https://youtu.be/Z3l1uMurUF0?si=NFPdUgkfhZPa_NLV
이 노래가 발표된 것이 1987년의 일. 그때 내 나이 겨우 다섯 살이다. 아주 어렴풋한 기억이긴 하지만 텔레비전에 나오는 이들의 노래와 춤사위를 따라했는데 그걸 보고 엄마 아빠 누나들 모두 귀여워해주었다. 그래서 이 노래를 제법 따라 불렀다. 벌스에서 훅으로 넘어갈 때 두 멤버처럼 발을 동동 구르면 특히나 좋아해주었다.
‘사랑의 달빛으로 노크를 해야지’
아직 ‘두통’이 무슨 말인 줄 몰랐던 나였다. 그럼에도 열리지 않는 그녀의 방 창문을 사랑의 달빛으로 두드려보겠다는 노랫말이 너무 근사하게 보였다. 그리고 ‘달빛 미소 출렁이며’ 할 때 김창남 아저씨인지 박일서 아저씨인지는 모르겠지만 카메라가 한 사람을 클로즈업했을 때 ‘출’을 발음하는 그 입술 모양이 퍽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그걸 무어라 부르는지 알 길은 없었으나 두 사람이 어깨에 메고 나오는 악기가 참 멋지다고 생각했다. 두 사람 모두 숄더 키보드를 메고 나오기도 했고 한 사람은 기타를 메기도 했다. 그런데 그때는 그들의 모션이 참 멋지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아주 조금은 터무니없다 싶은 핸드 싱크이긴 하다만…
하지만, 핸드 싱크를 그렇게 하긴 했지만, 도시 아이들이 ‘야매’는 아니었다. 음악성의 대부분은 김창남에 지분이 있는데, 이후 발표된 <텔레파시>나 <선녀와 나무꾼> 같은 히트곡들을 보면 시대의 흐름을 읽고 대중이 원하는 바를 뾰족하게 꿰뚫는 능력이 있었던 음악가라는 생각이 든다.
그를 기억하는 이들의 회고에 의하면 악기와 장비에 대한 욕심이 대단했고 밤을 새워가며 사운드를 매만지던 완벽주의자였다고. 2005년 간암으로 너무 일찍 돌아가신 게 아쉽다.
다행이라면 또 다른 멤버 박일서만큼은 건강한 모습으로 음악활동을 이어갔다는 점. 이마저 몇 해 지나긴 했지만 몇몇 방송을 통해 알려진 그의 모습을 살펴보면 꾸준하게 자기관리 하며 트로트 가수로써 의지를 불태웠다. 한때 김흥국과의 구설수가 있긴 했지만...
다시 노래로 돌아가서 이제는 나 역시 중년이 된 까닭인지, 창가 너머로 사랑하는 그녀의 모습 한 번 보면 좋겠다며 행복한 마음으로 주문을 외우는 노랫말이 너무 기특하다. 사랑에 기다림은 필수지. 그리고 그 기다림을 두고 투덜거리지 않는 태도도 필요하지. 누군가의 마음 한 번 얻어보고자 애쓰던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이 노랫말처럼 무엇이든 좀 더 멋스럽게 해보겠다.
<Verse 1>
한송이 장미를 종이에 곱게 싸서
어제도, 오늘도 하루 같이 기다리네
그대의 창문은 열릴 줄 모르니
사랑의 달빛으로 노크를 해야지
<Hook>
오, 오, 오, 내 사랑
바람결에 창을 열고
달빛 미소 출렁이며
행복의 단꿈을 꾸어라
오, 오, 오, 내 사랑
그대 드릴 꽃 한송이
별빛 미소 출렁이면
마음의 창문을 열어라
<Verse 2>
한송이 장미를 종이에 곱게 싸서
어제도, 오늘도 하루 같이 기다리네
그대의 창문은 열릴 줄 모르니
사랑의 달빛으로 노크를 해야지
<Hook>
오, 오, 오, 내 사랑
바람결에 창을 열고
달빛 미소 출렁이며
행복의 단꿈을 꾸어라
오, 오, 오, 내 사랑
그대 드릴 꽃 한송이
별빛 미소 출렁이면
마음의 창문을 열어라
오, 오, 오, 내 사랑
그대 드릴 꽃 한송이
별빛 미소 출렁이면
마음의 창문을 열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