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숨결을 품으며,
나도 다시 숨을 쉬다 (1)

아기엄마, 간호사, 30대 여자의 소소한 이야기

by 카리타스

(2012-2017)


간호대학 졸업 후 어엿한 사회인이 되었다.

직장에 출근해서 월급도 받아 아빠에게 홈시어터도 선물해 주고,

3교대 근무도 하며 동기들과 우정을 쌓기도 했다.


힘든 신규 간호사 시절이었지만,

내가 좋아하던 과에서 근무하는 것을 감사히 여기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하지만 20대 초 수술한 갑상선에 무리가 왔는지

게다가 겸사겸사 공부를 더 하고 싶다는 생각이 일하는 것보다 커졌는지

1년 가까이 근무하고 첫 병원을 퇴사했다.


후회는 하지 않았다.

나름의 계획이 있었고, 계획을 실천하기도 했다.

편입에 성공하였지만 등록비와 3년 더 재학을 해야 한다는 상황으로 인해 가지 못했다.

그날 4호선에서 어찌나 울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나만 생각할 수 없었다. 그래서 포기하고 잠시 쉬기로 했다.


쉬면서 다른 학교에 붙었고, 즐겁게 학교 생활을 했다.

열심히 해서 그런지 감사하게도 장학금을 받았다.

나는 내 건강을 생각해서 작은 병원에 입사했다.

그곳에서 내 전공을 살려 열심히 일했다. 대학원도 합격해서 일과 학업을 병행했다.

감사하게도 병원에서 많은 배려를 해주셨다.

힘든 일정임에도 나는 병원 사람들, 대학원 동기들의 응원을 받으며 지냈다.


그러던 도중

대학원 1학기 봄이었다.

아빠가 살이 많이 빠지고 기운이 없어 늘 혈압약을 타던 병원에 갔다.

2016년 5월 8일 어버이날 좀 지나서였다.

상급병원 의뢰서를 써주셨다고 한다.

쇄골 근처 큰 덩어리가 보인다고 했다. 차가운 마룻바닥에 앉아 그 소리를 듣고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아는 지식을 총동원해서 생각했다. 하지만 암을 끄집어내진 않았다.


왜 그랬을까 싶다.

근데 무의식의 나도 불안했는지 혼자서 계속 생각하고, 다른 친구들에게 물어보기도 했다.

별 소득이 없었다.

의뢰된 병원에서는 여러 가지 검사를 시행했고, 얼마 되지 않아 결과를 엄마를 통해 들을 수 있었다.

학교 수업을 마무리 지은 날이었다. 그날 찾아간 병원 화장실에서 나는 대성통곡을 했다.


아빠는 말없이 나를 보고, 특히 빨개진 눈을 보고 더 말을 하지 않았다.

나는 그제야 현실에 눈이 띄어졌고,

푸른색이 아닌 짙은 회색의 세상을 마주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것저것 다 찾아보고 정리하기 시작했으며,

아빠에게 책 선물을, 나에게는 수첩을 선물해서 기록을 하도록 했다.


아빠가 책을 보더니 "이 책 다 읽으면 싹 나으려나" 하고 씩 웃었다.

입술을 꽈악 깨물며 아빠 옆 침상 자리에 앉아 시선을 땅으로 내렸다.

나는 간호사면서 이런 것도 못 챙겼을까.

이러면서 누가 누구를 간호한다고 이럴까.


지지리도 못난 생각을 나 스스로 해대고

그걸 얼굴에 다 표현하는 못나고 옹졸한 나였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아빠 중심으로 돌아가게 되었고, 각자 맡은 역할을 하나씩 해 나가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나는 산부인과에서 암환자를 바라보는 간호사로 조금씩 성장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