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엄마, 간호사, 30대 여자의 소소한 이야기
(2017-1)
아빠는 항암치료만 가능했다.
뼈전이로 인한 통증으로 힘들어했는데,
방사선치료도 진행하지 못하고 그저 항암치료만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왜 통증이 있는 환자에게 다른 치료 방법을 제안하지 않았는지 의문이다.
항암치료는 사람을 녹슬게 했다.
폭싹 속았수다의 양관식이 다발성 골수종으로 항암치료를 받고
'무쇠를 녹슬게' 했다는 그 항암치료.
우리 아빠도 점점 야위어지고 녹슬어졌다.
혼자 외래에서 류코스팀 주사를 맞거나 수혈을 받고 오고
혹여나 몸상태가 좋아졌을까 하는 기대감에 외래 있는 날에는 피검사도 1등으로 하러 갔다.
아빠의 병원 일정은 엄마가 항상 같이 했다.
나와 동생은 각자의 직장에 집중하기로 했고, 나는 대학원을 휴학하기로 결정했다.
우리는 서로 긴밀하게 연락하며 아빠의 상황을 공유했다.
아빠가 집에 있을 때는 아빠와 시간을 많이 보내려고 노력했다.
우리의 삶은 아빠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아빠는 점차 야위어갔고, 입원을 하는 주기가 짧아졌다.
입원을 하게 되면 재원기간이 길어졌다.
알게 모르게 기침도 잦아지고, 부종도 눈에 띄게 많아졌다.
이 때는 코로나 전이라 병실 면회가 가능했었는데, 아빠의 하지 부종이 심해진 게 눈에 띄었다.
아빠 발을 엄마가 씻어주는 데 뭔가 이상했다.
발이 코끼리 발처럼 되어 가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아빠한테 말했다.
"아빠, 발 불편하지 않아? 말씀드려 볼까?"
"괜찮아."
아빠 대답을 무시하고 의료진에게 말을 했었어야 함을 난 몇 시간 뒤에 깨닫고 후회했다.
그날 저녁 엄마랑 동생이랑 같이 집에 왔고,
오랜만에 저녁 시간을 세 명이서 보낼 수 있었다.
자려고 각자 준비하려는 그때였다.
엄마 핸드폰이 울렸고, 발신자는 아빠였다.
지금 병원으로 와달라는 것이다.
기침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렸다.
엄마는 간단한 짐을 챙겨서 아빠에게 갔다.
나는 문단속을 하고 동생이랑 한 침대에 누웠다.
내일 새벽 일찍 출근해야 하기에 눈을 감았지만, 왠지 모르는 불안함과 이상한 느낌에 잠이 오지 않았다.
결국 뜬 눈으로 밤을 새웠다.
새벽 첫차를 기다리며, 역에서 엄마에게 연락을 했다.
"아빠가 기침 때문에 잠을 못 잤어. 피도 조금씩 토하네."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연락 줘."
이상함을 느꼈다.
내가 이 분야에 근무하지 않더라도, 지금 이 상황은 이상한 상황이었다.
불안함이 더 커져갔다.
일단 나는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내 예상으로는 이제 곧 회진하러 올 거고 필요한 피검사는 이미 나갔을 것이다.
결과를 보고 필요하면 시술이 진행될 것이다.
의료진들이 있을 테니 나는 현실에 집중하고, 연락을 기다리자고 스스로 마음을 다잡았다.
하지만 출근하고 일이 손에 잡히지가 않았다.
근무를 시작한 지 2시간도 되지 않아 엄마에게 연락이 왔다.
아빠가 시술 후 중환자실에 들어갈 수 있는데, 그전에 얼굴을 보는 게 좋을 거 같다는 연락이었다.
나는 바로 선임에게 보고 하고 병원으로 가는 지하철을 탔다.
눈물이 앞을 가렸다.
불안감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검고 짙은 막이 나를 누르기 시작했다.
지하철 안에서 눈물을 펑펑 흘리며 아빠에게로 갔다.
아빠가 나를 기다리기를 간절히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