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행동파 남편, 소극적 아내

by Lydia young

말 꺼내기 무섭습니다.

바로 행동개시이기 때문입니다.


남편은 행동파.

전진, 불도저 남편입니다.


하늘나라 가신 시어머님은 생전 노인복지관에서 탁구 치시는 걸 좋아하셨습니다.

탁구동호회 어르신들은 무슨 일이든 적극적이고 행동도 빠르고 에너자이저이신 시어머니께 번개라는 별명을 지어 주셨었답니다.


그러니 남편은 번개 아들인 데다가 불도저.

추진력, 행동 모두 빠른 불도저입니다.


반면 저는 소극적인 데다 결정장애까지, 이럴까 저럴까 오랫동안 고민에 잠깁니다.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너라! 는 말이 있잖아요'라고 가 얘기하면, 남편은 '너무 오랫동안 돌다리만 두드려 보고 있잖아요!' 라며 남편이 답답해하며 얘기합니다.


어느 날엔 방의 가구 위치를 좀 바꾸고 싶은 생각이 들어 저녁식사하며 방의 가구를 이쪽으로 옮기고 저쪽으로 이동해 보면 어떨까 생각 중이라고 얘기를 하고 식사 후 설거지를 하고 뒤돌아보면 방의 가구들이 거실로 나와 있습니다.

남편은 자기와 똑 닮은 작은 딸이랑 가구 재배치를 밤 12시까지 마칩니다.


또 어떤 날 저녁엔 남편이 쓰던 컴퓨터 모니터가 작아서 좀 큰 거로 바꿔야겠어라고 얘기해서 곧 모니터를 사겠군 생각했는데 다음날 아침 현관문 앞에 모니터가 배송되어 와 있는 겁니다.

'바꿔야겠어'는 '주문했다'는 얘기였나 봅니다.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 쉽게 결정을 못 내리는 제게 말 나오기가 무섭게 빠른 결정과 추진력으로 고민을 빨리 끝내주는 행동파 남편.


번개어머님의 중매로 불도저남편과 만나 한 달 뒤 약혼.

만난 지 두 달 만에 결혼식.

역시 번개와 불도저의 합작품이었습니다.

그 당시 친구들은 만난 지 두 달 만에 결혼식을 한다는 내게 도대체 무슨 일이냐며 다시 생각해 보라는 얘기도 했지만 다행히 운 좋게도(?) 36년 동안 잘 지내고 있는 거 보면 서로 다른 부분 잘 맞춰가며 잘 지낸 거 같습니다.


똑같은 성격이 만나 결정 내리는데 하세월이라면 그 또한 너무 답답하고 발전적이지 못했을 거 같습니다.

나의 결정장애를 빠른 결정과 추진력으로 정리해 주는 남편.

너무 빠른 결정과 추진력으로 혹시 모를 실수를 한 템포 쉬며 생각해 볼 수 있게 제동을 걸어 주는 소극적 아내.


우스갯소리로 '우리 부부는 로또예요.

너무 안 맞거든요.'라는 말도 있지만 안 맞는 부분 맞춰주고 채워가며 사는 게 부부 아닌가 싶습니다.


36년 넘게 살다 보니 척하면 척 다음엔 어떤 말과 행동일지 잘 알아 눈이 마주치며 웃음이 터지고 마는 불도저 같은 행동파 남편과 돌다리 두드리며 앞으로도 잘 맞춰가며 살아봐야겠습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코스모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