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연민 덩어리
내가 좋아하는 '이웃집 토토로'에는 투병 중인 어머니를 둔 자매가 나온다. 위독한 엄마를 찾아 나선 동생이 행방불명되면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동생이 행방불명되자 언니, 아빠, 동네 주민 모두가 백방으로 동생을 찾아 나서지만 위독한 엄마는 자신의 막내딸을 찾아 나설 수 없다.
어릴 적 처음 접했던 안데르센의 인어공주 이야기에서는 주인공이 목소리를 잃자 왕자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하지도, 왕자에게 사랑받지도 못한 채 물거품이 되어버린다.
종종 티비에 나오는 불우이웃 돕기 방송을 보면 그들은 대부분 몸이 아프다. 병이 그들을 경제적으로 어렵게 했는지, 경제적으로 어렵게 되자 병에 걸린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도움이 필요한 그들은 대부분 아픈 사람들로 보인다.
나에게 '아픈 사람' 즉, 환자란 그런 의미였던 것 같다.
늘 도움이 필요하고, 스스로 해낼 수 있는 것은 제한적이고, 그래서 연민의 대상이어야만 하고, 자신이 뜻하는 바를 아주 어렵게 이루거나 아니면 끝내 이루지 못해 좌절하는.
이는 편협한 나의 지식이 만들어낸 오류였으나 그것이 내 삶을 영위하는데 큰 지장은 없었기에 나는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지냈었다. 첫 수술 전까지는 말이다.
그리고 그릇된 심상은 내가 '갑상선 암 환자'가 되었을 때 비로소 문제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환자'인 나는 무언가 하기 위해 남들보다 열심히 하지 않으면 안 됐다.
그렇게 처절하게 할 각오가 없으면 애초에 하지 않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청소년기의 착각, '나는 비련의 주인공' 프레임이 더해지니 이보다 답 없는 상황은 없었다.
대부분의 경우에서 나는 처절하게 도전할 생각보다 지례 포기하는 쪽을 택했던 것 같다.
"뭐하러 해? 나는 어차피 안돼"
이것이 그 시절 나의 핵심 문장이었다.
나는 춤을 배우고 싶어 하면서도 '내가 앞으로 유명한 댄서가 될 가능성은 없다'며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공부를 하려다가도 '나 수술해서 몸이 아직 힘들어. 피곤하니까 오늘은 여기까지'라고 정당화하며 펜을 놓았다.
안 좋은 쪽으로는 피해의식도 생겼던 것 같다. 세상은 공평하다던데 남들보다 핸디캡 있는 내 인생에 왜 행운은 더 따라주지 않는지, 쓸데없이 분노도 했었다. 요행을 바랐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정말 터무니없다. 내가 아프니 로또라도 당첨되어야 한다는 소리인데, 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소리인가.
그런데 그때에는 내 마음이 터무니없는 생각에 사로잡혀있음을 몰라서 그저 억울해했다.
세기말 중2병 재질의 감성에 피해 의식까지 겹쳐버렸으니, 지금 와서 생각해 봐도 예나 지금이나 내 인생에 그처럼 답답한 시절이 또 있을까 싶다.
시간이 한참 흘러서야 나는 비로소 잔뜩 갈라져버린 자아상을 고칠 수 있었다.
대학교 강의를 듣다가 '건강'의 의미를 정의해 보는 시간을 가졌었는데, 이때 나의 자아가 대단한 오류 덩어리에서 기인했음을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이다.
WHO에서 정의한 '건강'은 단지 신체에 질병이 없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으로 안녕 상태에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즉, 고혈압이나 당뇨를 가진 사람도 스스로의 신체 질환을 잘 관리하면서 그 사람의 신체, 정신, 사회적 기능이 편안한 상태에 있다면 건강한 것이다.
이 기준으로 건강한 사람을 정의한다면? 나는 이미 없어진 갑상선, 매일 먹어야 하는 호르몬제, 내 목에 크게 자리 잡은 수술 흉터와 영원히 함께하는 삶이더라도, 주체적으로 컨디션 관리를 하고 일상생활을 유지한다면 그것 자체로 건강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걸 몰랐던 나는 잘못된 '환자' 프레임에 나를 욱여넣어놓고 참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
누군가 질병에서 벗어나 건강한 일상으로 돌아오기 위해서는 충실한 치료 이행만큼이나, 건강한 자신의 내면을 잃지 않는 노력 역시 중요하다. (자존감은 여러 방면에서 참 중요하다)
생각이 행동을 만들어내니까... 그 생각을 '환자'역할에 오롯이 쏟는 것만큼 비효율적인 것도 없다.
백세시대에서 이제 막 30대로 접어든 나는 우리 사회의 작은 피래미에 불과하다.
다만, 이 자잘한 피래미는 앞으로도 외부 풍파에 연연하지 않는 '나'로서 잘 살아보려 한다.
병든 피래미가 아니라 주체적인 피래미로.
앞으로의 나는 거센 물살도 만날 것이고, 부상을 당할 수도 있겠으나 '나'를 잃지 않고 살다 보면 언젠가 거대한 대왕 물고기가 될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