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애란 | 달려라 아비 [스카이 콩콩] 해석

(김애란 작가님) 홀로 스카이 콩콩을 타고 있는 당신에게

by 딩두


이 단편 소설을 처음 읽었을 때 감정이 생생하다. 어떻게 이런 소설을 쓸 수 있을까, 작가님은 도대체 어떤 환경에서 자라 오신 걸까 궁금했다. 책 읽는 걸 좋아한다기보단 사고력, 문해력을 기르기 위해 책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던 내가, 작가님의 책을 계속 읽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게 되고 어느 순간 이게 팬심이구나 싶었다.


곰곰이 생각했다. 나는 왜 김애란 작가님의 소설을 좋아할까? 이 좋아함을 넘어선 소중한 감정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나에게 누군가가 이상형을 질문하다면 조심스럽게 희망하며 해오던 말이 있다. “잔잔한데 웃긴 사람이 좋아요” 이 책이 그렇다. 잔잔하지만 웃기며 그 웃김이 결코 가볍지 않다. 품위 있는 무언가가 있다. 그 무언가는 절대 의도한다고 해서 나오는 것이 아니고, 철저한 계산으로 나온 것도 아니고, 그저 김애란 작가님이 되어야만 가능한 무언가라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나는 작가님과 더욱 가까워지고 싶었다.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 건지, 나의 이상향에 가까운 작가님의 머릿속에선 어떤 방식으로 인간과 세상을 이해하고 계신지 궁금했다. 따라서 나는 이런 무례한 호기심을 바탕으로 제목이 스카이 콩콩이니만큼 스카이 콩콩과 가로등을 중점으로 다시 책을 넘기기 시작했다.

결론적으로 나는 스카이 콩콩이 이 글에 한해서는, 이 글을 쓴 김애란 작가님에 한해서는 글쓰기를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스카이 콩콩과 관련된 문장들을 정리해 보면 이렇다.

[어느 날 아버지가 말했다.“스카이 콩콩을 타면 키가 큰댄다” 나는 키가 크는 것엔 관심이 없었지만 스카이 콩콩이 갖고 싶었다.]


[나는 한번 올라가면 다신 내려오지 않을 정도로 스카이 콩콩을 잘 탔다. 아버지에게 매를 맞아도, 좋아하는 가수가 십대 가수상을 타도, 형이 알 수 없는 얘기만 늘어놓아도 스카이 콩콩을 탔다.]

[세계의 소란스러움을 등지고 가로등 아래서 홀로 스카이 콩콩을 타는 나의 모습은 고독하고 우아했다. 스카이 콩콩을 타는 나의 운동 안에는 뭐랄까, 어떤 ‘정신’이 들어있었다.]

책의 주인공인 ‘나’는 스카이 콩콩을 타서 무언가를 얻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저 스카이 콩콩을 타는 것, 그 행위 자체를 좋아했다. 그는 가로등 아래에서 홀로 스카이 콩콩을 타는 것에 몰입했으며 그런 자신에 모습에 심취해 있었다.


나는 이런 모습이 작가님에게 있어 글쓰기를 대하는 자신의 모습이 투영된 것이 아닐까 싶었다. 작가님은 글을 쓰면서 무언가를 얻는 것보다는 글을 쓴다는 것, 글 쓰는 행위 자체의 즐거움을 느끼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어떤 ‘정신’을 가지고 한번 집중하면 다른 것은 보이지 않는 글쓰기에 몰입하는 자신이 고독하고 우아했다고 믿고 싶었던 것 같다.

여기서 왜 고독하고 우아했다가 아닌 그렇게 믿고 싶었던 것이었는지는 이 뒤에 글을 통해서 느낄 수 있다.


[그러니 이쯤에서, 한 가지 거짓말에 대해 고백해도 좋을 것 같다. 어릴 때 나는 아버지에게 고추를 보여주고 스카이 콩콩을 받았다. 그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나는 스카이 콩콩에 올라 콩콩대는 것을 좋아했다. 그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내가 스카이 콩콩을 타며 본 것, 혹은 느낀 것들에 대한 이야기는 잘못되었다. 왜냐하면 스카이 콩콩의 점프 시간은 그렇게 길지도 느리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스카이 콩콩은 코오오오ㅡ옹 하고 뛰어올라 코오오오ㅡ옹 하고 착지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말 그대로 ‘콩콩’타는 것이었다. 스카이 콩콩에 장착된 스프링의 탄력은 형편없었다. 스카이 콩콩에 오른 뒤 그 자세를 그대로 유지하려면 정신없이 콩콩콩콩ㅡ 거려야 했다. 그리고 그 모습은 우아하지도 아릅답지도 않았다. 자세를 유지하려고 버둥대는 몸짓은 경박하고 우스워 보일 정도였다. 게다가 스카이 콩콩은 스프링이 움직일 때마다 삐걱삐걱 괴상한 소리를 냈다. 그러나 그것은 살면서 누구나 내는 소음에 불과했다. 그러니 내가 붕ㅡ하고 떠올랐을 때, 가로등이 내게 슬쩍 보내온 윙크는, 거짓말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작가님은 글쓰기를 어렵게 시작했고 글쓰기를 좋아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문장 하나를 쓰기 위해 버둥거리고 고민하며 앓는 소리를 내었던 그 글쓰기가 고독하고 우아한 모습이라고 표현하기에는 힘들었던 것이 아닐까? 그러나 그것은 살면서 누구나 내는 소음에 불과했다는 걸 잘 알기에 그 사실에 위안을 얻으며 살았던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그럼 작가님은 자신이 좋아하는 무언가에 올라 자세를 유지하려고 버둥대고 있는 누군가에게, 그것은 살면서 누구나 내는 소음에 불과하니 그저 참고 버티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 만약 이렇게 소설이 끝났다면 내가 작가님을 이렇게까지 좋아하진 않았을 것 같다. 이 작품엔 주인공만큼이나 무언가에 열중하고 있는 인물이 한 명 더 존재한다.

[형은 과학자가 되고 싶어 했다. 스스로 재능이 있다고 ‘믿고’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볼 때 형은 과학적 소질이 전혀 없어 보였다. 어쩌면 형이 가진 유일한 재능은 ‘믿음’이었는지도 모른다.]


[형은 초등학생 때, 과학경시대회에서 만든 고무동력기가 일등을 먹은 이후, 자신에게 과학적 재능이 있다고 믿었다. 형의 수상은 단지 시간에 의한 것 즉 추락 시간이 남들 비행시간보다 길었던 덕분에 이뤄진 것이었는데도 말이다. 형의 비행기는 한번 제대로 날아보지도 못하고 운동장에 떨어졌다. 물론 보통 비행기였다면, 하늘로 띄워진 즉시 고꾸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형 비행기는 날아오르는 과정에서 꼬리 부분이 잘못된 탓에, 곧바로 추락하지 않고 한참 동안 빙글빙글 돌며 낙하했다.]


주인공의 형은 동생이 보기에도 재능이 없어 보이고 의욕만 앞서 보인다. 그럼에도 실수로 인한 우연한 계기로 인해 자신에게 재능이 있다고 믿으며 과학자를 꿈꾸며 살아간다. 때론 천문학을 공부하는 진짜 과학도인 사촌 형을 질투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나는 이런 형의 모습 또한 작가님의 다른 한 면이 아닐까 생각했다. 자신보다 우월한 누군가를 보며 질투하는 모습, 재능이 없어 보여도 근거 없는 어떤 ‘믿음’을 가지고 열심히 하는 그런 내면의 모습 말이다.

따라서 이 단편 소설은 글쓰기를 좋아하지만 문장 하나를 쓰기 위해 버둥거리고 고민하며 앓는 소리를 내던 작가님(동생)이 재능이 없어 보여도 근거 없는 어떤 ‘믿음’을 가지고 열심히 하고 있는 또 다른 작가님(형)을 의심하는 글, 자신의 글쓰기에 대한 의심을 가지던 시절의 자신을 표현한 글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의심의 배경에는 다 녹아가던 투게더(글쓰기 말고 좋아했던 이제는 이룰 수 없는 다른 꿈)의 발견과 과학도인 사촌 형(자신보다 우월한 존재)의 질투가 자극이 된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럼 그 깊고 깊은 자기 의심을 어떻게 해결해 나아가야 할까 여러가지 각자마다의 답이 있겠지만 작가님은 이런 고민을 하는 사람들, 청춘들에게 마지막 장을 통해 자신의 의견을 전달한다.

[형의 비행기는 피융ㅡ 하고 비상하자마자 곧바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우아ㅡ 하는 탄성이 끝나기도 전에, 추락의 과정을 지켜보며 우리가 마음의 준비도 하기 전에 비행기는 하늘에서 뚝 떨어졌다. 형은 충격을 받은 듯 자리에서 꼼짝하지 않았다. 창공 위로 여전히 수십 개의 비행기가 고운 선을 그리며 날고 있었다. 그런데 비행에 성공한 각각의 비행기들이 약속한 듯 모두 추락하기 시작했다.]

[다른 형들은, 작년에 형이 일등 한 비결을 알고 형을 따라 모두 비행기 꼬리 부분을 손봤던 것이다. 하지만 형들도 서로 그것을 약속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놀라는 눈치였다. 운동장에 모인 모든 사람들이 일제히 고개를 들어 낙하하는 비행기들의 춤을 바라봤다. 빙글빙글 돌며 수직으로 내려오는 비행기 때는 마치 하늘에서 쏟아지는 꽃비 같았다. 그리고 그것은 뜻밖에도 꽤 아름다웠다.]

[아버지와 나는 어떤 말도 하지 못한 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형에게 어떤 재능이란 게 정말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정신없이 가슴이 콩닥거렸지만, 그것을 무어라 불러야 할지도, 어떻게 말해야 될지도 모르겠어서, 그날 밤 집으로 돌아온 뒤 홀로...... 스카이 콩콩을 탔다.]

형을 의심하던 주인공이 아이러니하게도 형의 실수를 보고 처음으로 형을 인정하게 된다.

작가님은 ‘나’에게 있어 스카이 콩콩 같이, 자신에게 있어 글쓰기와 같이,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자기 의심을 품고 사는 당신(동생)에게 빙글빙글 돌며 수직으로 내려오는 형의 비행기를 보여주며 재능이나 무언가를 믿고 도전하는 당신(형)은 실수나 실패가 있을 수 있지만 그 결과는 하늘에서 쏟아지는 꽃비처럼 아름다울 수 있기에 너무 두려워하지 말라는 메세지를 전달하고자 하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작가님의 버둥거리고 앓는 소리를 내던 스카이 콩콩(글쓰기)이나 추락하는 비행기들(실수나 실패들)이 다시 돌아보기에는 쏟아지는 꽃비처럼 아름다웠기에 그 마음을 전달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그리고 그 꽃비를 보기 위해선 우린 형과 같이 ’믿음‘을 가져야만 한다.

…본 해석은 그저 한 사람의 망상일 수 있다. 그래도 나는 이런 식으로 책에 접근하는 것이 즐겁다. 작가님의 경험에서 나온 따뜻한 마음을 전달받은 것 같아 기분이 좋다. 여기까지 읽어주신 분들은 스카이 콩콩을 재미있게 본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어찌 보면 스카이 콩콩보다 중요해 보이는 가로등이 무엇인지 궁금해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는 가로등은 글을 쓰고 있는 작가님을 비추어주던 책상 위의 작은 스탠드가 아닐까 생각한다. 책상 위에서 그 자리를 거쳐간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수많은 책을 같이 본 작은 스탠드는 많은 것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묵묵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스탠드는 겸손하다고 표현하기에 좋다.

가로등이 깜빡일 때 기적이 일어난다고, 그 짧은 순간에 지구에는 아무도 모르는 일들이 아무도 모르게 일어난다고 하는 문장들 또한 지구상에 있는 많은 유의미한 것들이 책상에서 묵묵히 노력하는 누군가에 의해 스탠드를 깜빡거리며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창조되기에, 나는 작은 스탠드 밑에서 글을 쓰고 계시는 작가님의 모습이 가로등 밑에서 홀로 스카이 콩콩을 타고 있는 ‘나’의 모습과 겹쳐 보인다. 이 책 또한 가로등 밑에서 일어난 기적과 같다.

어쩌면 아버지가 가로등을 치며 말한 “너는, 나무가 되려는 것이냐”는 허구한 날 매일 스탠드 밑에서 글을 쓰고 있는 작가님에게 스탠드를 치며 “밖에서 뛰어놀기도 하고 그래라 너는, 나무가 되려는 것이냐”라고, 매일 한자리에서 묵묵하게 글만 쓰는 작가님에게 한자리에서 묵묵하게 자리를 지키며 숨만 쉬는 나무가 되려는 것이냐고 말하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하나의 재밌는 시각에서 본 해석이라고 봐주면 좋겠다. 어떤 사람이든 내가 가고 싶은 이 길이 옮은 길인가, 작은 재능 하나 믿고 고른 이 길이 맞는 길인가 고민하는 시기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럼 나는 이 단편 소설을 추천하며 이렇게 말할 것 같다.

어떤 길을 선택하든 실수나 실패는 있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너가 하고 싶은 걸 도전하며 생긴 실수나 실패들은 내가 보기엔 아름다울 것 같다고,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