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우리집 냉장고가 텅 하니 비어 있는 상태를 좋아한다.
채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단지 비어있는 그 상태 자체가 좋다.
얼마 전에는 작정하고,
저 깊숙이 쌓여 있던 오래된 음식들을 모조리 꺼내 비워냈다.
그것들을 담았던 용기들 까지 싹 씻어내니 시원했다.
냉장고가 말끔해지자, 나 역시 정리된 기분이었다.
냉장고도 그걸 감사히 여기는 듯 했다.
그렇게 비워낸 채로 한참이 지났다.
어느날 문득, 냉장고 문을 열었는데
늘 열던 문인데 그날 따라 묘하게 무거웠다.
내게 칭얼거리는거 같았다.
탈취 효과를 기대하고 넣었던 참숯은
이미 제 역할을 다 했는지,
특유의 냉장고 냄새를 은근히 내뿜었다.
‘그치만, 미안해. 오늘은 아니야,’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문을 닫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