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치마를 두른 채로 잠이 들었다.

by 이담우

어제오늘에 걸쳐 내 주변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신랑 말로는 내가 근 3년을 누워 있었다 하는데,

나는 믿을 수가 없다.

요 몇 개월은 인정하겠는데

어떻게 그게 3년이라는 말이 되나 싶었다.

내 3년을 통째로 잃어버린 느낌이었다.


한동안 약에 취해, 내 정신력에 취해 있었따.

나는 그저 버텼다.

겨우 밥상이라는 걸 차리고

앞치마를 두른 채로 잠이 들기가 수일, 수개월.


그렇게 한두 시간 자고 일어나 아이들을 다그쳤다.

“아직 목욕 안 했니? 숙제는?"

(그때, 내 아이들은 초등 1학년, 초등 2학년이었다)


곁에서 밀착 케어해도 모자란 판국에

말로만 육아를 하고 있었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실상은 ‘방치’였고 ‘방임’이었다.


주방을 우선으로 두고,

틈틈이 주변을 치우기 시작하니

생각보다는 힘들지 않았다.


냉장고 안의 오래된 음식들을 비워내고,

씻고, 말리고, 정리하고

읽을 수 없는 책을 솎아내고,

옷장을 비우고,

쌓여있던 짐들을 규칙 있게 배열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세 대의 컴퓨터 바탕화면을 정리했다.

마구잡이로 흩어져 있던 폴더들을 분류하고,

불필요한 것은 휴지통으로 버렸다.


시간은 꽤 걸렸지만

주변이 차츰 정리될수록

내 안도 정돈되는 기분이었다.


나는 더 이상

앞치마를 두른 채로 잠에 들지 않는다.


아니, 이제는 그러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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