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영업을 배우다.
세상에 말을 걸기 시작하다.
2015년 가을. 38세 나이로 나는 처음 영업을 배우기로 결심했다.
과거 인사담당자로써 영업을 배울 기회는 거의 없었다. 항상 나는 내부의 인력들을 위해서만 일을 하였고 외부 사람들과의 교류는 거의 없었다.
나의 상사는 영업맨 그 자체였다. 그의 모든 몸과 마음은 고객을 향해 있었다.
그는 나를 데리고 다양한 고객사를 방문하였다. 드레스 코드는 항상 Full 정장이었다. 외국계 회사에 다니면서 넥타이를 해본 적이 거의 없었던 나는 매우 어색했지만 익숙해질 수밖에 없었다.
나는 다시 신입사원이 된 듯했다. 사무실에만 앉아 있던 나는 처음으로 세상을 배우기 시작한 것이다.
하루에 많게는 3개의 회사를 돌아다니면서 나는 그의 행동이나 말투 모든 것을 흡수하려고 노력했다.
다행히도 대부분의 회사들은 우리가 방문할 때 매우 친절하게 반겨주었다. 반면, 몇몇 회사들은 우리를 상당히 귀찮아했다.
"대표님의 상품은 우리 회사와는 맞지 않습니다. 우리 회사는 절대 구조조정을 하지 않아요!"
"다시는 방문을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나는 이러한 그들의 싸늘한 반응이 한편으로는 이해가 됐다. 상품 자체가 구조조정 이슈를 다루기 때문에 우리가 마치 저승사자처럼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항상 웃으면서 명함을 건네주고 돌아왔다.
"세상에 실패한 영업은 없어. 그들이 우리 회사의 존재만 알게 하면 돼"
나는 영업 실력에 있어서 만큼은 그가 매우 존경스러웠다. 나름 대표직을 오래 맡으면서 거만해 질만도 한데 그는 항상 겸손했다. 나는 그와 함께 일하기 전까지 한 회사의 대표라는 자리란 영업책임자보다는 조직의 관리자의 역할이 더 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대표란 돈을 어떻게든 유통시키는 사람이라고 했다.
"영업은 나를 낮추고 상대를 높여주는 행위야. 그게 다야. 그렇게 나를 써줄 명분을 주는 거지"
"대표가 조직에서 밖으로 돌지 않고 안에서 사람들 관리만 한다면 그 조직은 금방 망하게 되어있어. 영업은 영업사원들만의 책임이 절대 아니야. 대표이사라는 타이틀은 고객사에 가서 최대한 높은 사람을 만나게 하기 위해 주어지는 것이지 절대 사람을 부리기 위한 타이틀이 아니야."
그가 옳았다. 대표는 외부에 나가서 물건을 팔던 차입을 하던 자금을 유통시키는 사람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대표들은 초반에만 절실하게 영업을 하고 어느 정도 자리를 잡으면 영업사원들을 채용해 그 일을 대신하게 한다. 그리고 영업실적이 낮으면 그들에게 책임을 묻는다. 그리고 점점 그는 권위와 관료주의에 젖어든다. 이러한 회사는 절대 성장할 수 없다.
직원이 많으면 많아질수록 프리라이더들은 발생하기 마련이다. 나는 이러한 패턴의 회사를 자주 목격하였다. 월급을 받는 직원들은 결고 회사의 주인만큼 절실해지지 않는다. 이 진리는 대기업이나 중소기업이나 마찬가지이다.
영업은 그만큼 힘이 들고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다. 나를 낮추고 상대를 높이는 일은 한국사회처럼 비교하기 좋아하는 사회에서는 받아들이기 매우 힘든 직무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영업일과는 맞지 않는다고 말하지. 하지만 영업일이 맞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어. 그저 절실함이 부족할 뿐이야"
"영업 직무는 여러 직무 중에 하나의 직무가 아니야. 모든 직무를 다 할 줄 아는 사람만이 진정한 영업을 할 수 있지. 그만큼 영업은 종합예술이기도 해."
"자신이 파는 상품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절대 남에게 그 물건을 팔 수 없어. 그러니 항상 고객이 원하는 Needs가 무엇인지 공부할 필요가 있지"
나는 계속해서 그의 가르침을 적어두곤 했다. 때로는 고객사의 갑질에 마음의 상처를 받았지만 나는 그것도 하나의 배움이라고 생각했다.
'내 사업을 할 수 만 있다면 그 어떠한 수모도 두렵지 않아!'
그렇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당시 나는 미리 예방주사를 맞고 있었다. 정확히 3년 뒤 나는 나만의 회사를 공동지분으로 설립하였다. 그와 함께한 3년이 없었다면 나는 절대 회사를 설립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세상으로 나아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