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보니 제주도에 살게 됐다. 순전히 남편 직장 때문에 이주하게 되었다. 친정과 시댁 어른들은 남편이 좋은 일자리를 얻었다는 소식에 반가워하면서도 사랑스러운 손주들을 거의 못 보게 될 거라며 많이 서운해하셨다. 더욱이 나와 남편은 부쩍 양가 어른들의 나이 들어감을 느끼고 있었던 터라, 그들의 안위를 가까이서 지켜볼 수 없을 거란 사실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래서 돌아보면 흔한 버킷리스트 중 하나인 제주살이의 기회가 우리 가족에게는 마냥 행운처럼 다가오진 않았다.
제주도로 이주하기 전 우리 가족은 한적한 동네에 남편이 직영 공사로 지은 단독주택에 살고 있었다. 집이 있는 동네는 천혜 환경을 가진 제주도에 비하면 너절하고 변변찮다. 하지만 처음으로 가져 본 ‘우리 집’에 나와 남편은 남다른 애정을 쏟았고, 아이들과도 많은 추억을 만들었다. 정든 집을 떠나 새로 정착한 제주도에서의 처음 몇 달은 침울했다. 제주의 1월은 쉼 없이 부는 바람과 잦은 비로 춥고, 우중충하고, 회색빛이었다. 그리고 관광객도, 원주민도 아닌 우리 가족은 제주 어디를 가더라도 어정쩡한 위치에서 그곳의 분위기에 어울리지 못했다. 원주민들이 애용하는 곳에 가면 내가 쓰는 말과 말투가 이질적으로 내 귀에 꽂힌다. 특히 목욕탕은 좁고 울림이 있는 공간인데 할망들의 제주어 소리가 들리다가도 나와 딸이 대화를 하면 그곳의 공기가 미묘하게 바뀐다. 이럴 때면 나는 눈이 아닌 마음에서 오는 시선을 느낀다.
사실 1, 2월까지만 해도 섬이라는 제한적 장소의 답답함과 불편함에 대한 생각이 불현듯 치솟아 올랐다. 그럴 때마다 내 마음속에 우울한 감정이 스멀스멀 올라오곤 했다. 그러던 감정은 3월 달이 되어서야 사그라들었다. 제주의 봄 햇살 아래 싱그럽고, 눈부신 웃음을 지으며 학교 운동장을 뛰어노는 딸과 아들의 모습을 지켜보며 순간 내 우울과 불행이 나로부터 시작됐음을 깨달았다. ‘과거의 행복한 기억에 얽매여 지금의 행복을 구하지 않으면 불행해질 수밖에 없구나.’ 나는 마음을 고쳐먹기로 했다. 제주살이에 대한 불만보다는 감사함을 찾아보기로 말이다.
난 곧 일상 속 작은 것에서 감사함을 찾기 시작했다. 아침마다 아이들이 자고 있는 이층 방으로 올라가면 가로로 널찍한 창문이 있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제주의 하늘과 밭의 풍경은 마치 벽에 걸린 액자 속 그림과도 같다. 육지에서도 하늘 보기를 좋아했는데, 그것은 제주의 하늘과 비교할 바가 못 된다. 자주 비가 내리는 것에 대한 보상이라도 하듯 맑게 갠 제주 하늘은 가슴 찡하게 아름답다. 파란 물감에 물 한두 방울 굵게 떨어트린 듯한 하늘에 한껏 부풀어진 하얀 구름을 눈에 담을 때면 행복이 차오른다.
작은 아이의 등원 가는 길에 제주의 교목과 관목이 줄지어진 도로를 달리다 보면 시선 끝에 수평선이 보인다. 짙푸른 바다 위에 자욱한 물안개가 피는 하늘을 바라보는 일은 매번 감탄할 만하다. 그리고 도로 곳곳에 계절 마다도 아닌 월마다 바뀌는 색색의 꽃들의 향연은 오감을 자극한다. 3월에 집 앞 가까운 밭에 뿌려진 씨가 곧 싹을 틔워 파릇파릇 자라더니 5월이 넘어서자 하얀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에 나오는 것처럼 숨이 막힐 지경의 달빛 아래는 아니었지만 6월 초순까지 소금을 뿌린 듯한 메밀꽃의 잔상은 내 마음을 뒤흔들기 충분했다.
제주의 아름다운 환경에 설레고 들뜰 때면 마치 제주에 여행 온 듯한 느낌이다. 여행자의 관점으로 제주를 바라보면 제주의 모든 것이 연구할 대상이고, 영감의 원천이 된다. 처음에는 혼란스러웠던 중간자의 위치가 이제는 유리하게 느껴진다. 관광객보다 여유롭게, 원주민보다 창의적으로 제주를 바라볼 수 있어 기쁘다. 나는 아이들과 함께 멀리 보이는 웅장한 한라산, 에메랄드빛의 함덕 해변, 소박하고 아기자기한 시골 학교 풍경을 수채화 물감이나 파스텔 등으로 그려낸다. 일상이 예술로 승화되는 특별한 경험을 즐기고 있다. 이제는 언제일지 모르는 육지로의 귀환을 앞서 생각하며 걱정하기보다는 감사한 마음으로 제주의 순간순간을 찬란한 기억으로 남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