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손꾸락

좌절하지 않고 열심히 살았던 할머니에게 대한 찬가

by 보담이

“손꾸락이 아프다.” 할머니와의 통화 중 수화기 너머로 어김없이 들려오는 소리다. 할머니는 관절염으로 손가락이 아프단 소리를 입에 달고 사신지 오래다. 요 몇 년 그 증상이 심해져 새벽에는 손가락의 통증과 그로 인한 미열로 잠을 못 이루신다. 그리고 낮에는 붓고 뻣뻣해진 손가락 때문에 설거지나 빨래와 같은 가사를 돌보는 일도 쉽지가 않으시다.

나는 첫째를 낳고 산후조리를 신경 써야 할 시기에 찬물에 손을 넣고 가제 수건을 하루 종일 빨아 댔었다. 낮에 그렇게 손가락을 실컷 쓰고 난 뒤 새벽에 눈이 떠지면 손가락이 오므라져서 펴지지 않고 굳어 있었다. 그러면 난 화장실로 달려가 눈물을 흘리며 뜨거운 물을 켜놓고 손가락이 펴질 때까지 주무르곤 했다.


내가 눈물을 흘렸던 이유는 통증에 대한 아픔 때문만은 아니었다. 내 몸을 내 의지대로 움직일 수 없다는 절망감 때문이었다. 난 그 몇 달 동안도 정말 힘겨운 시간을 보냈는데 몇 년을 손가락 때문에 고생하신 할머니는 얼마나 답답하고, 속상하실까.


어느 날은 할머니가 손가락이 아프다며 눈물을 흘리시는데, 할머니의 너무 슬픈 표정에 나도 그만 울컥했다. 나도 아이를 키우고 가정을 꾸리는 삶을 살다 보니 할머니 눈물의 의미가 단순히 아픔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할머니는 초등학교 졸업을 하지 못했고 가난한 삶 때문에 공부할 수 있는 상황이 계속 안 되었다. 그래서 현재까지도 할머니는 제대로 글을 읽고 쓰지를 못 하신다.


할머니는 어렸을 때부터 연필을 잡는 대신 일 하는데 자신의 손을 다 쓰셨다. 제대로 된 직장 한번 가져본 적 없는 할아버지를 대신하여 밭일부터 식당일, 건어물 가져다 시장에 파는 일까지 가족의 생계만을 위해 뼛골이 빠지게 일하셨다. 그래도 그 몸을 쓸 수 있어서 살아올 수 있었는데, 이제는 평범한 일상의 일조차도 감당하지 못하는 망가진 몸뚱이 때문에 서러움이 폭발한 것이다.


손가락이 아프지 않으려면 손가락을 쓰지 않는 것이 유일한 답이다. 그런데도 할머니는 손가락을 계속 쓰신다. 자신의 집안일은 물론 일주일에 한 번씩 찾아오는 아빠의 간식도 챙겨줘야 하고, 근처에 혼자 사는 작은 아빠의 반찬도 만들어줘야 한다. 자식들 불효자라는 소리 안 듣게 하려면 제발 반찬 만드는 일 그만하시라고 얘기하는 데도 반찬을 만들려는 할머니의 의지를 꺾을 수가 없다.


병원을 가거나, 텔레비전을 보거나, 운동하러 동네 주변을 거니는 것 외에 할머니의 취미 생활은 없다. 예전에는 수영을 취미 삼아 하기도 했었는데, 이제는 팔십 넘은 노인네 위험하다고 수영 교실에도 못 나가게 됐다고 한다.


지금의 할머니에게는 집안일을 하고 요리를 하는 것이 그녀의 시간을 지루하지 않게 보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래서 손가락 쓰는 일을 실컷 하셔 놓고 매번 손가락 아프다고 하소연하시는 할머니를 보면 한숨이 나오면서도 이해가 된다.


지금은 내가 제주도에 살고 있어 할머니를 자주 찾아뵙지 못한다. 그래서 예전보다 안부 전화를 자주 드리게 된다. 그러면 할머니는 내게 꼭 전화를 끊기 전에 “이렇게 전화해 줘서 고맙다”라고 말씀하신다.


나도 할머니께 고마운 것이 많다. 사실 어떤 시대에 살든, 각각의 세대는 나름의 힘듦이 있다. 그리고 아무리 힘들어도 좌절하지 않고 열심히 사는 사람들은 어느 시대에도 있다. 우리 할머니는 정말 그렇게 삶을 사셨던 산증인이다.


할머니의 살아오셨던 의지를 보면 나도 어떤 어려움도 헤쳐나갈 수 있는 용기를 얻게 된다. 또한 할머니의 생활의 지혜는 물론이거니와 연륜에서 묻어나는 할머니의 혜안은 나의 삶에서 맞닥뜨릴 수 있는 문제들을 미연에 방지하고 쉽게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준다.


할머니가 손가락 때문에 아프시고 불편한 건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지만, 구부러진 손가락은 할머니가 열심히 살아온 세월의 흔적이므로 이에 대해 무 서러워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손녀는 할머니가 우시면 마음이 너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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