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큰딸은 어릴 때부터 집안에서와 달리 밖에 나가서는 내성적이고 소극적인 아이였다. 자기 할말 제대로 못 하는 아이, 사소한 일에도 눈물부터 쏟는 그런 아이였다. 예를 들어 놀이터에 마주친 또래 아이들에게 먼저 다가가거나 어울리지 못했고, 가끔 누구와 만나 놀더라도 자기 의견을 제대로 말하지 못하다 결국은 답답하고 속상해 울곤 했다. 나와 남편은 그런 딸아이가 늘 안타까웠다.
남편은 내게 아이가 말하기도 전에 요구사항을 들어주지 말라고 잔소리를 했다. 아이가 말을 끝까지 안 하고, 엄마에게 의존해서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하지 않는다고 말이다. 처음에는 소심한 성격의 원인을 내 탓으로 돌리는 남편의 말이 참 서럽고 속상했다. 아이를 위한 내 호의가 결과적으로는 아이의 행동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을 믿기 싫었다. 아이를 잘 키웠다는 자부심이 크던 나는 나 때문에 아이가 잘못됐다는 소리를 쉽게 인정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스스로 선택할 수도 있는 문제인데 내게 의견을 자꾸 묻는 딸아이의 반복되는 모습을 보며 아이가 독립적이지 못한 건 일정 부분 내 잘못도 있음을 인정하게 됐다. 지금은 눈치껏 다 해주는 엄마가 되지 않으려고 많이 노력하는 편이지만 아이들의 필요를 먼저 나서서 해주는 버릇을 완전히 고치지는 못하고 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큰딸이 기본적으로 근면하고 성실한 아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학교생활을 무난하게 해냈고, 독립심이란 날개를 퍼덕이며 그 나이에 맞게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들을 점차 늘려나갔다. 하지만 친구들과의 관계는 여전히 어려웠다. 어떤 날은 큰딸이 잠자리에 들기 전 자신은 인기가 없는 아이라며 눈물을 흘렸고, 또 어떤 날은 처음에는 호의로 먼저 다가오던 친구들이 나중에 자신과 멀어진다는 고민을 털어놓기도 했다. 그와 같은 딸의 이야기를 듣는 나는 속이 문드러졌다. 그래서 제주도로 이사와 작은 학교를 가게 된 딸이 제발 친구들과 잘 지내기를 바랐다.
그런데 학기 초까지 큰딸이 친구 때문에 속상하다며 집에 와서 우는 일이 잦았었다. 그러면 나는 큰딸의 자초지종을 듣고 나서 달래 주면서도 점점 (내 기준에서) 이렇게까지 울면서 토로할 일인지에 대한 의심이 들었고, 속상해하며 우는 딸을 더 이상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딸에게 “왜 너는 잘못한 친구에게 바로 얘기를 못 하느냐, 조금 더 목소리를 크게 내라.” “친구들 앞에서 속내를 얘기 안 하고 표현을 안 하면 다른 친구들이 너를 무시한다.”라며 훈수를 여러 번 두었다. 그와 같은 (그때는 옳다고 생각했던) 가르침을 또다시 주던 어느 날 딸이 내게 “엄마는 내가 잘못하지 않았는데 왜 혼내”라고 소리쳤다. 그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가 딸에게 무슨 짓을 한 거지?' '그래, 내 딸은 잘못한 게 없어. 친구들을 괴롭힌 것도 아니고, 피해를 준 것도 아니잖아. 그리고 과연 소심한 성격이 문제라고 할 수 있을까.’ 내가 정당하다고 생각해서 딸에게 했던 모든 말과 행동이 그렇지 않았다고 깨닫는 순간 딸에 대한 미안한 감정이 폭풍우 치듯 내 온몸에 휘몰아쳤다.
딸이 그 말을 한 이후 나는 딸에 대한 죄책감에 몇 날 며칠을 괴로워했다. 그날 이후로 다시는 딸아이의 대인관계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얘기하지 않았다. 다만 이런 말은 해주었다. "너와 맞는 친구가 있고, 너와 맞지 않는 친구가 있는 거야. 그러니 너와 맞지 않는 친구에 대해 너무 신경 쓰지 말고 거리를 좀 둬도 괜찮아." 그리고 "친구들이 말을 걸거나 물어보면 간단하더라도, 작은 목소리라도 괜찮으니 꼭 대답은 해주렴."
곧 여름방학이 다가오는 1학기의 끝자락에 있는 우리 딸은 현재 아주 학교생활을 잘 해내고 있다. 물론 소심한 성격도 여전히 있고, 눈물 많은 것도 그대로이지만 친구들에게 먼저 다가가 어울릴 줄 알고, 선생님께 크게 인사할 수 있게 됐다. 한 학급, 15명이란 비교적 적은 인원의 학생 사이에서 선생님의 관심을 고루 받고, 운동장을 같이 뛰어놀 수 있는 친구들이 생긴 딸은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아이를 위한답시고 내게 한정된 답을 자식에게 주입하려 하기보다는 느리더라도 아이 스스로가 성장할 수 있도록, 변화할 수 있도록 지켜봐 주고 응원해 주는 것이 진정한 부모의 역할이며, 사랑의 방법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