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그 사람들은 그 표적을, 그것의 원래 모습인 우월함에 대한 표창으로 설명하지 않고, 반대로 설명한 거야. 사람들은 말했지, 이 표적을 가진 녀석들을 무시무시하다고, 또 그들이 실제로 그렇기도 했어. 용기와 나름의 개성이 있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한테 늘 몹시 무시무시하거든.
나는 자아정체성이 확립되는 청소년기 때만 해도 카인처럼 내가 다른 사람과 구별되는 <표적>이 있을 거라고 믿었다. 즉, 다른 사람과 달리 내가 '특별한' 사람일 거란 생각을 했었다. 무시무시함과 우월함의 차원은 아니지만 나는 나의 개성에 대한 믿음이 있었고, 굽히지 않는 용기가 있다고 생각했다. 더 나아가 나의 이 특별함을 알아봐 주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나와 비슷한 특별함을 가진 사람(소울메이트)를 찾고도 싶었다.
하지만 대학을 졸업하고, 박물관 안내데스크에 취업하고 나서는 내 인생이 급속하게 무료하고 지지부진하게 느껴졌다. 대학 시절부터 꿈꿔왔던 학예사란 직업과의 연관성을 찾아 일단 들어간 직장이었지만 나의 꿈과는 멀어진 현실에 박탈감만 느꼈을 뿐이었다. 정보력도, 도전 정신도 없었지만 그래도 책상에 앉아 공부하는 게 주특기였기에, 그거 하나 믿고 당장의 무력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대학원에 진학했다.
학사 전공과는 다른 '문화인류학' 전공으로 대학원을 들어간 나는 대학원을 다니는 내내 문화인류학이라는 학문을 공부하기에 내 역량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석박사와 같이 발표하고 토론할 때면 나의 부족한 지식과 초라한 경험으로는 그럴듯한 지적 생산물을 내놓지 못하는 것 같아 늘 초조했고, 스트레스를 받았었다.
발표와 과제를 준비하면서, 시험을 치르면서 내 부족함을 저주하며 버티고, 버티는 날이 이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대학원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타고 가던 중 우연히 교수님을 만나 옆자리에 앉게 됐다. 지금은 그때의 기억이 희미해져 우리가 어떤 대화를 앞에서 나누었기에 교수님이 내게 다음과 같은 말을 해주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하지만 다음과 같은 '나를 알아주는 말 한마디'가 결국은 석사 학위를 가질 수 있도록 했다.
"너는 인류학을 공부하는데 적합한 사람이야. 기본적으로 너는 인류에 대한 애정이 있단다."
그 순간 벅차오르는 감정에 눈물을 훔쳤다. 내가 하는 행위가, 더 나아가 내 존재가 인정받은 느낌이었다. 나는 대학원 생활을 끝까지 해내는 과정에서 나의 특별함을 알게 됐다. 다른 경력자들에 비해 내 지식과 경험은 부족할지 몰라도 인간, 자연, 사회, 현상 등을 바라보는 내 시선은 남들보다 포용적이구나. 기본적으로 연구 대상에 대한 애정이 있기에 남다른 시선과 분석을 던질 수 있구나.
누구도 시키지 않은 청소와 정리를 스스로 찾아서 했던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그만두던 날 사장님께서 내게 문화상품권 몇 장을 전달하며 "그동안 네가 여기서 제일 열심히 일한 거 알고 있다. 그동안 수고했다."라며 감사의 인사를 받았을 때,
다정한 인사와 친절을 베푼 도서관 사서 봉사활동의 1학기 마지막 날 한 학생에게 간식과 함께 "이렇게 친절한 사서 선생님은 처음이에요. 방학이 끝나고도 뵀으면 좋겠어요"라는 내용의 편지를 받았을 때,
'나의 특별함'은 더 빛을 발한다. 내 진가와 노력을 인정해 주고 알아주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었다는 것에 감사할 뿐이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여 특출난 재능이나 능력이 아니더라도, 또 남들과 뚜렷이 구별되는 점이 아니더라도 모든 개개인은 온전히 ‘나’이기에 가지는 특별함이 있다. 유일한 나로서 오는 특별함에 감사하며 살다가 보면 내 삶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그렇기에 나뿐만 아니라 개개인 그 누구라도 각자만의 특별함으로 빛날 수 있음을 믿으며, 그렇게 되기를 바라며, 나 또한 누군가의 특별함을 알아주는 말 한마디를 늘 준비하며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