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의 피드백

비판보다 공감이 먼저입니다.

by 보담이

현재 사이버대학교 아동학과 3학년에 편입하여 재학 중이다. 아동학과 특성상 대면 수업이 필수인 과목이 있는데, 그중 <아동미술> 수업 때의 일이었다.


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미술프로그램을 시연하는 시간이었다. 학생들의 시연을 앞두고 교수님은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발표자 각각의 시연이 끝나고 다른 학우들은 해당 발표에 대한 피드백을 해주셔야 합니다. 단, 긍정적인 피드백만 합니다. 그리고 피드백은 구체적으로 해주면 좋겠습니다.”


교수님의 말을 듣고 처음에는 대학원에서의 혹독한(?) 논문 발표와 심사의 과정을 거쳤던 경험이 있어서인지 긍정적인 피드백만이 가능할는지 의심부터 했다. 나는 어떤 학문을 연구하는 자라면 마땅히 논리적이고 비판적인 사고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고, 또 일상에서 책이나 영화를 볼 때, 물건을 살 때, 심지어 사람을 만날 때도 그 장단점을 분석하는 일이 익숙했기에 긍정적으로만 무언가를 평가하고 판단하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느꼈다.

그러나 나는 수업이 끝나고 내가 편협했음을 인정하고 반성하게 됐다. 수업 시간에 이루어진 긍정적인 피드백 시간에는 어떠한 부정적인 언급 없이 서로의 내용에 공감해 주고, 아이디어를 더하는 것만 했다. 그런데 발표와 피드백이 계속 진행되고, 서로의 의견이 쌓이자 발표자들은 자신의 과제에 부족한 점을 스스로 깨우치고, 최선의 결과에 도달할 수 있는 방향을 스스로 잡을 수 있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우리는 논리와 비판이 아닌 선의와 공감만으로 사람을 설득시키고 성장시키는 놀라운 경험을 했다.

사실 내용이 부실한 발표도 있었고, 고민이나 정성이 느껴지지 않는 발표도 있었다. 평소의 나 같았으면 잘못된 점도 지적하고, 개선 방향도 제안하는 것이 청중의 도리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칭찬할 의지가 있으니 어떻게든 칭찬할 거리가 만들어졌다. 나중에는 내가 제일 신나서 긍정적 피드백을 했는데, 모든 발표 시간이 끝나고 한 학우가 찾아와 “어쩜 그렇게 피드백을 잘해주냐”라며 놀라워했다. 물론 교수님이 “훌륭한 발표에, 훌륭한 피드백!”이라고 계속 격려하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셨기에 가능했겠지만, 내 몸부터가 비판보다는 칭찬하는 행위에 더 적극적으로 반응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제가 좋아하는 글쓰기는 무언가를 사랑하고 긍정하는 글쓰기였어요. 무언가를 사랑해야 좋은 글이 나오더라고요. 누군가를 비난하고 싫어하는 감정에서 ‘강한 에너지’가 나올 수 있지만 ‘긍정적이고 환한 에너지’는 나오지 않지요. 적과 싸우는 투사의 이야기를 쓸 때도 초점은 적에 대한 증오가 아니라 적과 싸우는 투사에 대한 사랑에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정여울, 《끝까지 쓰는 용기》 중에서

<아동미술> 수업은 한마디로 ‘긍정적이고 환한 에너지’의 장이었다. 예전의 나는 가까운 사람일수록 직언을 하는 것이 상대방을 지키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재는 상대방의 수고와 노력을 알아주는 것이 우선이고 부족한 부분은 천천히 채울 수 있도록 서로가 노력하는 것이 그 사람을 진정 사랑하는 방법임을 깨닫고 있다. 이번 경험을 통해 그러한 생각이 틀리지 않음을 다시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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