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에 작은 문고에서 하는 글쓰기 모임에 참여했다. 거기서 만난 문고 회장님과 개인적으로 이야기를 나누다가 내 동창생들과의 독서 모임 이야기가 나왔다. 문고 회장님은 “동창생들하고 그런 모임도 가져? 대단하네. 우리 동창들끼리는 수다 떨기 바쁜데.” 그래서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친구들이 다 훌륭해서 가능한 모임이에요.” 그러자 문고 회장님이 “그러는 당신도 훌륭하겠지.”라며 응수했다.
독서 모임을 하는 친구 셋과 나의 인연이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시작되었으니, 이제 그들과 알고 지낸 지가 벌써 20년이다. 초중고 시절과 대학교 시절을 합쳐도 꾸준히 연락하는 사람이 열 손가락이 안 되는 내 좁은 인간관계에서, 자주 연락하고 보는 친구들은 사실 그 셋밖에 없다. 그래서 요즘은 20년이란 세월 동안 서로의 옆을 지키며, 이런 건전한 문화 활동도 함께 할 수 있는 친구들이 있음에 감사하다.
그러다 문득 어떻게 우리가 오랜 시간 우정을 쌓아올 수 있었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다. 우리 넷은 정말 다르다. 당연히 MBTI도 다르고, 가정 형태, 스타일, 인생 가치관, 종교 유무까지 모두 다르다. 너무도 다른 네 사람이 만나 매번 이야기를 풀어내며 즐거운 만남을 이어올 수 있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우리 넷 모두가 배려하고, 경청하고, 공감하는 자세를 가졌기 때문이다.
남편은 내가 친구들과 카톡으로 대화할 때 어떤 식으로 대답해야 할지 주저하고, 뜸 들이는 모습을 보며 내가 친구들을 어렵게 생각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정확히는 ‘어렵다’기 보다는 ‘조심스럽다’라는 표현이 맞겠고, 하지만 조심스럽다고 해서 ‘불편한’ 관계는 아니다.
나이가 들어도 인간관계는 어렵고, 사람한테 상처를 받는다. 그래도 위안 삼을 수 있는 것은 그동안의 상처를 기억하고, 내가 받은 상처를 다른 사람한테는 주지 말아야겠다는 결심을 하는 것이다. 친구들에게 조심스러운 건 관계의 소중함을 알기에 상처되는 말을 하지 않으려는 내 노력의 일환인 것이다.
한편 다르기 때문에 배울 수 있는 점도 많다. 우리 네 명의 인생과 의견이 세상 모든 사람의 인생과 의견을 대변하지는 않지만 내 친구들을 통해서 나는 내가 아닌 주변 사람의 다른 생활 방식과 관점을 들여다볼 수 있다. 친구들의 입장을 헤아리다 보면 다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너그러움이 생긴다.
친구 관계가 유지되려면 어떤 균형이 필요하다. 신체, 교육, 재산, 사회적 지위 등등의 조건이 맞아야 관계가 유지되는 것이다. 물론 물리적인 것뿐 아니라 정신적인 것 역시 균형의 조건이 될 수 있다. 나와 내 친구들이 그렇다. 우리들의 공통적인 정신적 지향점은 ‘건전하고 건강한 삶의 의지’이다. 인생의 굴곡 앞에서 우리는 모두 건전하고, 건강한 방법으로 어려움을 극복하는 사람이다. 우리는 서로에게 문제 해결의 직접적인 도움을 주진 못해도 문제를 맞닥뜨린 당사자가 맞서 이겨낼 수 있도록 응원과 지지를 아끼지 않는 버팀목으로서 존재해 왔다.
다음에 오는 글은 우리의 우정을 어떻게 지속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친구들의 생각을 정리한 것이다.
친구 1:
“추억도 있고, 서로 좋아하고, 소중하게 생각하니까 일부러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연락한다기보다 습관처럼 내 삶의 일부처럼 지금까지 쭉 관계가 지속된 거 같아.”
“성향은 다르지만 그 다름을 인정하고 상대방을 존중하니까 관계가 더 단단해지고 있는 것 같다.”
친구 2:
“나에게는 순수한 시절에 만나서 정말 즐겁게 지냈던 추억도 좋지만, 어려운 시기에 고민 많을 때도 함께 머리 맞대고 걱정해 주고 공감했던 기억들이 우리 관계에 큰 뿌리가 된 것 같아.”
“특히 10대 말, 20대, 30대 계속 성장하는 시기 동안 서로에게 배운 점도 많았어. 특히 선하고 바르게 살려고 노력하는 마인드는 너희에게서 좋은 영향을 받고 있어.”
친구 3:
“서로에게 관심이 있었던 거 같아. 고1 때 친구로 만나 학창 시절을 같이 지내왔고, 그때보다 지금이 성숙해지긴 했어도 변함없는 게 신기해.”
“우린 성향도 다르고 캐릭터도 다르고, 관심이 달라도 궁금한 마음이잖아. 그 마음과 진심 어린 응원이 나에게 참 좋은 친구라고 느끼게 했어.”
문고 회장님 말이 맞다. 우리 넷은 서로의 부족한 점을 끄집어내지 않고, 가지고 있는 모습 그대로를 인정해 주고 존중해 주는 훌륭한 친구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