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유산

소설

by 레들민

어머니는 세 개의 장기를 절제하는 수술 이후 1차로 열두 번의 항암을 했다. 그러나 제대로 걷기 어려울 만큼 온몸이 독한 약 기운에 눌리자 2차 이후의 항암치료는 일찌감치 포기했다. 누추하게 오래 사느니 서둘러 가는 편이 낫다면서 어머니는 민이를 불러 일사천리로 자산을 정리했다. 그리고 민이가 사는 신도시 근교 작은 전원주택 부지에 방 하나, 화장실 하나, 부엌 겸 거실이 하나인 소박한 패시브하우스를 들였다. 매일 오전과 오후로 한 시간씩 도시 인근에 잘 정비된 산책로를 걸었다. 주로 작은 마당에 심은 채소나 꽃을 돌보았고 가끔 영화나 책을 보기도 했다. 민이가 알려준 유튜브를 보며 저녁마다 요가도 열심히 했다. 그렇게 좋아하던 컵라면에 반주 한 잔을 곁들이는 모습은 다시 볼 수 없었다. 오히려 몸에 좋은 음식들을 연구하고 틈틈이 레시피를 정리해 두었다가 나와 민이를 불러다 굳이 그 맑고 싱겁고, 신선하고 싱겁고, 향긋하지만 밍밍한 요리들을 공들여 만들어 먹이곤 했다. 그렇게 4년이나 버틴 거였다.


말기 암은 대부분 고통 속에서 운명을 맞는다고 들었지만 어머니는 조용히 떠났다. 이때다 싶었던 어느 날 스스로 구급차를 불렀고, 구급차 안에서 본인의 휴대폰으로 나와 민이에게 마지막으로 전화를 걸었고, 병원 도착 즉시 응급실, 중환자실로 옮겨졌다가 의식을 잃은 지 이틀 만에 돌아가셨다. 그 고통을 어떻게 참으셨는지 모르겠다며 의사들이 혀를 찼다. 하지만 어머니 같은 사람은 아마도 중환자실에서 호스와 연결된 기계에 의존해 숨을 쉬는 것을 더 못 견뎠을 것이다.


어머니는 동작이 빠른 사람이었다. 남들보다 손이 빨라 뭐든 일찌감치 해치웠다. 그 덕에 그릇도 자주 놓쳐 우리 집엔 모양이나 무늬가 다른 컵이며 접시들이 유난히 많았다. 무슨 일이든 서둘러 마치면 여유가 생길 것 같지만 어머니는 여유를 누리는 느긋함보단 그 여유를 어떻게 소비할 것인가에 대한 조급함으로 늘 바빴다. 어머니의 시간은 누구보다 빠르게 흘렀고 한가로이 뒤를 돌아보는 법이 없었다. 어머니는 무척 부지런한 사람이었다.

내 생각이지만 삶의 방식이 어머니처럼 남보다 특별히 빠르다는 것은 나처럼 특별히 느린 것과 별 차이가 없는 것 같다. 하지만 민이는 뭘 더 건진 것도 없는데 같은 시간 대비 훨씬 많이 움직였으니까 사실은 어머니가 상당히 비효율적인 인생을 사신 거라고 말했다. 어머니의 비효율이 오늘의 우리를 낳았다면 꽤 괜찮은 거 아니냐고 물었더니 민이는 그러니까 더 빨리 가신 거라면서 버럭 신경질을 부렸다. 그럴 때면 민이는 이상하게도 나보다 더 어머니를 많이 닮은 것 같았다.


어머니의 주행은 안전하고 빨랐다. 처음 가는 길은 영락없이 헤맸지만, 한번 익힌 길에 대한 어머니의 주행은 일초의 망설임 없이 빠르고 정확했다. 그런 길은 시간대의 교통 흐름까지 파악하고 신호를 외워 단숨에 질러가곤 해서 학창 시절 민이와 나는 가끔 겁을 먹기도 했다.

어쩌다 그 완벽한 주행을 방해하는 차량이 나타나기라도 하면 어머니는 듣지도 못한 독한 저주를 끝없이 퍼부었다. 엄마는 욕주머니를 따로 달고 사냐며 민이가 아무리 질색해도, 어머니는 '살아보라, 어느 땐 욕도 약이 된다'며 특히 누가 듣지 못할 땐 더 크고 독하게 한 번씩 해보라고 말하곤 했다. 그러면 민이는 어머니가 돌아가시면 좋은 기억은 없고 욕바가지 기억만 남겠다고 비아냥거렸다. 그러면 어머니도 지지 않았다.

“그래. 니 멋대로 한번 살아봐. 욕이라도 실컷 할걸 하는 후회랑 절대 남기지 말고.”


어머니는 계산대로 움직이는 것을 선호했다. 신속하고 정확하면 더할 나위가 없었다. 마치 신호를 외우고 가는 길이 여러 면에서 빠르고 합리적이라 여기셨던 것처럼 장례도 그렇게 하고 싶었던 것 같다. 2차 항암을 거부하는 어머니를 붙들고 제발 항암을 다시 하자고 미친놈처럼 매달렸을 때 어머니는 앙상한 두 손으로 내 볼을 감싸며 간절하게 부탁했다. 세상에 나올 때는 계획이 없었지만 나갈 때는 당신의 계획대로 가고 싶다고.

덕분에 장례도 어렵지 않았다. 우린 그저 어머니가 미리 정해놓은 장례업체에 전화만 하면 되는 거였다. 장지로 가기 전 당신의 머물던 자택을 방문해 달라고 하셨던 것이며 화장비용과 수목장 비용까지 업체 측에다 몇 년 전에 이미 선결제까지 해놓았다. 죽은 사람이 산 사람을 챙기는 기분이 들었다. 좋진 않았다. 손 안 대고 코를 풀었다고 마냥 웃을 수만 있을까.


장례식에는 어머니가 생전에 지정해 둔 몇몇 친지와 오래된 지인들만 초대되었다. 아버지는 오지 않았다. 아마도 두 분의 합의가 있었을 것으로 생각했다. 장례식은 어머니의 완벽한 계산대로 간소하고 조용하게, 빠르고 정확하게 지나갔다. 장례지도사는 돈을 받은 게 미안할 정도라고 말했다. 어머니의 장례식은 소박하고 깔끔했고, 초라하고 서운했다.

다른 장례식과 다른 점이 있다면 민이와 나 그리고 초대한 친지와 지인들 모두에게 일일이 손 편지를 써서 미리 장례업체에 맡겨 놓은 것이었다. 돌아가시기 불과 석 달 전 일이었다. 급한 성격 탓인지 어머니는 어떤 결정을 내리던가 어떤 사건에 대한 언급을 할 때에도 길게 시간을 쓰지 않았다. 편지는 의외였다. 어머니의 편지는 낯설었고, 나로서는 표현하기 어려운 어떤 벅찬 긴장감마저 들었다.


처음엔 어리둥절했던 손님들이 받아 본 편지를 차례로 소리 내어 읽기 시작했다. 편지에는 어머니가 지인들과 나누었던 은밀한 비밀들이 가감 없는 비속어와 함께 알알이 까여있었다. 그러니 누구 한 사람의 공개만으로는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마치 한 거미줄에 걸려든 나방들처럼 미세하게 혹은 교묘하게 얽혀있어서 하나의 편지가 공개될 때마다 다른 사건의 실마리를 찾게 되는 재미가 있었다. 살다 보니 잊힌 건지 잊다 보니 지켜진 건지 꺼낼수록 다소 낯간지러워지는 이야기들이 결국 어머니의 거미줄을 풀고 자유를 찾은 나방들처럼 하나 둘 빈 허공을 향해 날아갔다. 그리고 차가워진 세상밖에서 금세 식어가는 입김처럼 그들의 깊은 한숨으로 흩어졌다. 눈물을 훔치다 웃고, 웃다가 눈물을 떨구고, 그러다 인사를 하고 돌아서 갈 때는 모두의 얼굴에 편안한 그늘만 남았다.

내 맘대로 표현한다면 어머니는 직선처럼 강하고 때론 점선처럼 유쾌한 여성이었다. 곡선처럼 유연한 멋은 없었지만 주변의 신뢰와 호의를 잃지 않는 좋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어머니는 아버지의 외도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아버지의 외도문제로 이혼을 선택한 그때가 나는 군 제대를 마치고 아르바이트 자리를 찾아보며 2학기 복학을 준비하던 시기였고, 민이는 막 고3이었다.

그 해 여름 방학 어느 주말, 오랜만에 셋이 함께 늦은 아침을 먹던 중이었다. 밥을 끄적이던 민이가 어머니 눈치를 보더니 졸업을 하면 호주 워킹 홀리데이를 가보고 싶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놀라는 기색 없이 씹다 만 입 안의 밥을 꿀떡 삼키더니


“왜 여기 대학은 갈 자신이 없니?"


민이가 동네 양아치처럼 짜증 나게 대답했다.

“아니, 내 처지에 대학은 무슨. 내가 뭐라고 여기서 대학을 다녀. 알아보니까 워홀 가면 돈도 벌고 공부도 하고 그럴 수 있겠더라고요. 혼자 살아봐야지. 나도 이제 다 컸잖아.”


어머니와 눈도 마주치지 않는 민이를 바라보며 어머니는 차분하게 말했다.

"너 하고 싶은 대로 해. 다만 대학은 가야 해. 워홀 말고 지금부터 준비해서 바로 유학 가."


그러자 민이가 어머니를 쏘아보며 급발진을 했다.

"어떻게 그래? 도대체 무슨 생각이야? 엄만 내가 얼마나 맘이 불편한 지 알기나 해? 난 여기서 살기 싫어. 여기선 대학도 다니기 싫어. 이제 더는 엄마한테 신세 지기도 싫거든? 친엄마도 아니면서 무슨 유학까지 보내주려는 거야. 돈은? 있고?"


민이가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면 나는 말리지 못했다. 조그맣고 땅땅한 민이는 언제나 불같았다. 민이가 일진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을 멈추고 공부를 시작했을 때도 그랬다. 절대로 무시당하지 않겠다며 지독하게 파고들었다. 민이는 고집스럽고 열정적이고 악독한 녀석이었다. 나는 자세를 바르게 고쳐 앉고 냉큼 앞에 놓인 얼음물을 집어 들이켰다. 물을 마시고 나면 얼른 자리에서 일어서려고 했다. 얼음 두어 개가 입안으로 밀려 들어왔다. 어머니는 좀 전보다 차분하게 말했다. 소름 돋게 차갑게 들렸다.


“내가 언제 너한테 친엄마라고 우겼니?”


민이는 얼굴이 새파래지며 금방이라도 울 것 같았고, 나는 컥 하며 물었던 얼음을 식탁 위로 뱉어버렸다.


얼굴에 물이 튄 어머니가 손바닥으로 얼굴을 문질러 닦았다. 눈은 나에게 온갖 욕지기를 다 퍼붓고 있었지만 입은 민이에게 향해 있었다.

“네 엄마 마지막 소원이 너 대학교 가는 거 보는 거랬어. 그때까지만이라도 살고 싶다고."


민이는 사촌 동생이었다. 아버지의 누이, 가련한 고모가 남긴 혈육이었다. 우리가 살던 집은 분양받아 입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대단지 신축 아파트였고, 내가 입학한 초등학교도 개교한 지 몇 달 밖에 되지 않아 어머니 특유의 커뮤니티가 아직 형성이 되지 않았던 터라 어머니가 굳이 여기저기 민이의 존재를 애써 설명하지 않아도 보는 사람들은 당연히 민이가 그냥 딸인 줄 알았다. 그래서 어머니는 민이가 딸이라는 말을 남들 앞에서 일부러 하고 다닐 필요가 전혀 없었다. 하지만 다섯 살에 집으로 온 민이는 어머니가 친엄마가 아님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무슨 상처가 남았는지 모르지만 처음에는 주워온 다친 고양이처럼 거칠고 사나웠다. 새로 생긴 동생이 귀여워서 같이 놀아주려던 나도 많이 할퀴었고 삼촌인 아버지는 자주 물렸다. 어머니에겐 해를 가하진 않았지만 거의 모든 면에서 주로 강경한 거부의 의사를 밝히며 속을 썩였다.

학교를 막 들어가서는 주변의 아이들을 하도 때려서 하루가 멀다고 학부모들의 민원이 들어왔다. 어머니는 학교 선생님의 전화와 맞은 아이들의 어머니 전화를 받다가 머리가 수화기 안으로 들어가 버릴 것 같았다. 그러다 기어이 식판으로 한 사내아이의 머리통을 내리쳐서 여섯 바늘이나 꿰매게 하는 소동이 일어났다. 그날 어머니는 양발도 신지 않고 총알처럼 학교로 달려갔다. 머리가 무릎에 붙은 것처럼 얼굴을 들지 못하고 다가오는 선생님마다 붙들고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학교에서 병원으로 병원에서 학교로 오락가락 하다가 작은 악마 같은 민이의 손목을 단단히 움켜쥐고 나보다도 훨씬 늦게 집으로 돌아왔다.


뭘 잘못했는지 몰랐던 건지 모르는 척했던 건지 민이가 집 현관에 들어오자마자 어머니의 손을 뿌리치며 소리를 질렀다.

“우리 가족 아니야!”


민이와 어머니를 걱정하며 현관으로 달려 나갔던 아버지는 슬쩍 내 목덜미를 잡으며 한걸음 뒤로 빠졌다. 어머니는 종일 굽었던 허리를 힘겹게 펴고 현관에 걸린 해바라기 그림을 마주 보며 지친듯 말했다.

“이 집에서 매일 내가 한 밥 먹는 사람은 다 가족이야.”


“진짜 엄마가 아니잖아!”

민이가 떨어질 듯 떨이 지지 않는 질긴 눈물방울을 달고 악을 썼다. 정말 딱 한 대만 쥐어박고 싶었다.


그때 어머니의 눈빛이 냉정하게 변하며 민이에게 내려 꽂혔다. 그리고 따지듯 물었다.

“선생님이 엄마한테 전화하라고 하면 민이는 누구한테 전화했지?”


“그래도 엄마라고 안 불러!”

민이도 도발하듯 어머니를 노려보았다. 그런 민이를 보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주먹이 불끈 쥐어졌다. 어머니는 민이에게서 반걸음쯤 거리를 두고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나도 알아. 나는 민이 진짜 엄마가 아니야. 민이 진짜 엄마는 하늘나라에 있어. 그건 민이도 알고 나도 알고 여기 오빠랑 삼촌도 다 알아. 그러니까 우리 모두가 다 알고 있는 거야. 민이 진짜 엄마는 여기 이 세상엔 없어. 원래 여기 이 세상에서 엄마는 밥도 해주고, 머리도 빗겨주고, 손잡고 같이 학교도 가주고, 오늘처럼 민이가 잘못하면 선생님한테 가서 손잡고 같이 죄송합니다 하고 말해야 되는 그런 사람이야. 그럼 여기서 항상 민이 손잡아 주는 사람이 누구야? 그게 누구지?"


민이가 어머니를 올려다보자 대롱대롱 달려있던 눈물 방울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나는 불끈 쥐었던 주먹을 슬그머니 귀 밑까지 들어 올렸다가 어깨에 올려진 아버지의 손에 힘이 들어가자 다시 슬그머니 내렸다.


"그래서 다들 나보고 민이 엄마라고 하는 거야. 하늘나라 엄마는 진짜 엄마. 나는 여기 민이 옆에 있는 그냥 엄마. 정말 모르겠어? 이 바보야."


“나 안바보야! 바보 아니라고! 그런데 왜 사람들한테 내 엄마라고, 그거 한 번도 말 안 했잖아!”


그날 민이는 엄마의 굵은 허벅다리를 붙들고 어미를 떼어낸 새끼강아지처럼 낑낑거리며 울었다. 어머니는 그날 이후 몇 달을 민이의 손을 잡고 마주치는 사람마다 ‘네, 제 딸입니다, 얘가 제 딸이에요. 내가 얘 엄마예요. 예쁘죠? 제 딸이라서 그래요’ 하는 듣기에도 이상한 말을 남발하고 다녔다.

하루는 앞집 아주머니가 나를 불러 세우더니 민이가 친동생이 아니냐며 넌지시 물어보았다. 하긴 처음 있는 일도 아니었다. 벌써 경비아저씨가 두 번이나 물어봤었으니까. 나는 아주머니를 빤히 쳐다보다가 한숨을 길게 쉬면서

"나도 저 똥바가지 말썽쟁이가 내 동생이 아니면 정말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그러는가 싶었던 시간이 지나더니 곧장 또 사춘기랍시고 학교만 가면 화장실 거울에 붙어서 오페라 여배우 같은 화장을 하고 앞머리에는 커다란 구르프를 말고 다녔다. 죄다 자기처럼 기가 센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던 어느 날 학교 근처 분식집 앞을 그런 몰골을 하고 당당하게 지나다가 어머니의 힘찬 등짝 스매싱을 맞았다. 사실 어머니는 초등학교부터 중학교까지 핸드볼 주전선수였다. 그래도 그렇지 등짝을 맞았는데 코피가 난 건 그때 들으나 지금 들으나 신기방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여름날 갯벌에 늘어진 게들이 사람 발자국에 놀라 달아나듯 민이의 친구들이 혼비백산 도망을 가고, 분식집에서 급히 빌린 휴지로 코피를 틀어막고 요란한 화장이 귀신 떡칠이 되어 집으로 잡혀 들어왔었다.


어머니는 민이가 화장을 못하게 막진 않았다. 다만 진하게 하지 말라고 타일렀다. 화장이 옅어지더니 금세 친구들도 순둥 한 아이들로 바뀌었다. 영리하고 활발한 민이는 그렇게 외고에 입학했다. 아버지가 집을 나가자 다시 뚱한 표정이 되긴 했지만 말로든 힘으로든 어머니를 이길 깜냥이 아니었기에, 민이는 어머니의 권유대로 캐나다로 가서 주로 연애질을 열심히 하는 유학생이 되었다.

민이는 분기마다 남자 친구를 바꿔가며 연애에 열중했고, 연애의 상대가 바뀔 때마다 화상 통화로 어머니에게 소개했다. 도대체 뭘 어떻게 하는 건지 장학금도 받았고 생활비도 스스로 해결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민이와 통화를 할 때마다 늘 무슨 말인가를 더 하려다가 눌러 참는 듯했다. 어려서부터 독감 한 번 걸린 적이 없는 무쇠 체력과 악독한 지구력을 가진 민이었지만, 어머니는 어쩔 수 없이 민이를 향한 걱정을 멈추지 못했다.


지금 민이는 결혼해서 아이도 낳고 잘 살고 있다. 하지만 일과 가정을 병행하느라 있는 독기를 다 부리는 중이다. 거기다 어머니까지 그랬으니 민이의 최근 몇 년은 그야말로 정신이 없었다. 어머니의 영정을 한 시도 떼지 않고 안고 있다가 결국 그대로 품고 집으로 가져간 걸 보면 아마도 내 동생 민이는 오래오래 이 세상 엄마를 놓지 못할 것 같다.


모든 장례 절차에서 유독 아버지를 떠올리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는 것이 신경 쓰였다. 아버지에게는 편지도 없었다. 당신의 삶에서 아버지를 거세한 것 같았다.

살다 보면 이혼은 일어날 수 있는 이별이라고 했었다. 사람들은 일일이 다 설명할 수 없는 여러 이유들로 헤어지지만, 시간이 지나다 보면 대개는 그렇게 용서 못할 일도 아닐 거라고 했었다. 두 분의 경우 아버지의 잘못은 아버지가 감당하고 있고, 어머니에게 남은 잘못은 어머니가 잘 견딘 것 같다고 했었다. 하지만 살면서 그 사소한 잘못들을 저지른 자신을 용서하기가 더 힘들더라고 말했다. 어머니의 잘못이 무엇인지 궁금하지도 않지만, 어머니의 잘못은 단 하나 그 남편이란 인간 자체를 온전하게 믿은 것 밖에 없다고 난 생각했다. 그리고 어머니가 무너지는 모습을 보던 날 나도 아버지를 찢어버렸다.

어머니는 아무리 미워도 그가 영원히 나의 아버지라고 말했다. 아버지처럼 살지 말란 말이기도 했고, 아버지를 돌아보란 말이기도 했지만 더 듣고 싶진 않았다. 병이 나고 어떻게 삶을 정리할지 혼란스러웠을 때 어머니는 나를 불러 털어놓았다. 어머니는 언젠가 내가 아버지를 용서하길 바랐던 것 같다.


어머니가 아버지를 보낸 가장 큰 이유는 삶에 지쳐있었기 때문이었다. 10년 근속한 회사를 나와 그와 관련된 하청을 받는 알뜰한 기업체를 꾸리던 아버지는 친지들에게만 유난히 거절을 못하는 성격 탓에 오랫동안 금전적인 문제로 시달렸다. 급기야는 사촌 형님과 조카에게 사기를 당해 사업을 접을 뻔한 적도 있었다. 그런 금전적인 위기가 생길 때마다 어머니는 아버지를 대신해서 여러 은행들을 심지어 지방의 지점까지 돌아다니며 돈을 융통해 냈다. 아버지의 사업이 망하지 않은 데는 어머니의 거침없는 금융전략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어머니의 사업적 수완을 거의 인정하지 않았다. 칭찬과 부러움이 자자한 주변 사람들과는 다르게 한사코 어머니는 주부라고 한정 지으려 들었다. 내가 입대할 즈음 어머니는 달마다 지내는 제사를 줄이고 일을 하고 싶다고 아버지를 설득했지만 결국 종손이라는 입장차로 아버지와 갈등만 불거졌고, 하필 그때 생각보다 이른 갱년기가 시작되면서 시도 때도 없이 깊어지는 우울과도 싸워야 했다. 어쩌다 생긴 골이 하루하루 깊어졌지만 인생의 반절을 의지해온 아버지를 떠나기에는 낡고 무딘 핑계들뿐이었다.

그래서 아버지의 외도를 알았을 때 어머니는 오히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버지의 외도는 확실하게 날이 선 어머니의 칼이 되었던 것이다. 어머니가 삶에 지쳐있지 않았다 하더라도 아버지의 외도는 이혼이란 결과를 불러왔을 것이지만, 어떤 변명의 여지도 없이 외도라는 감출 수 없는 증거로 꽁꽁 묶어서 단박에 아버지를 밀어낸 것에 대해 어머니가 느끼는 일말의 자책 혹은 억울함을 실은 항변 같기도 했다. 아무도 어머니를 비난하지 않는데도 말이다.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 암 판정 이후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두 분은 자주 연락을 주고받았다. 나나 민이가 바쁘면 병원에도 함께 다녔다. 어느 가을 1박으로 지리산 단풍구경을 다녀온 일엔 화가 나서 가족 모임엘 가지 않을 정도로 못마땅했지만, 병원에 가 줄 사람이 하나 더 있어서 그건 다행이라고 생각은 했었다. 아무튼 그래서 어머니는 아버지를 용서한 줄 알았다.


짐가방을 들고 쫓기듯이 집을 나서는 아버지는 현관에 서서

“내가 다.. 내가 미안해”라고 흐느끼는 듯이 말했다.


어머니는 제 풀에 지친 표정으로 식탁 의자에 앉아 아버지가 애지중지하던 코냑 병을 붙들고 있었다.

“꺼져, 정남주 이 나쁜 새끼야”


아버지가 나간 후 어머니는 코냑 병나발을 불었다. 벌컥벌컥. 듣기에도 소름 끼치는 소리가 났다. 그러다 곧바로 싱크대에 달려들더니 죽어가는 돼지처럼 꾸에액 꾸에액 창자까지 꺼내놓을 듯이 토악질을 했다. 급하게 들이켠 술 때문인지 구토 때문인지 어머니의 얼굴은 돼지고기처럼 붉어지다 쇠고기처럼 진홍색으로 변해갔다. 민이가 한 팔로 어머니를 부축하고 다른 팔로는 어머니의 등을 두드리며 연신 쓸어주었다. 어머니 얼굴이 눈물과 콧물과 땀으로 처참하게 망가지고 있었다. 슬퍼 보이지 않았다. 순전히 중의적인 이유로 스스로를 갈기갈기 찢어 엄벌하려는 미친 사람 같았다. 버린 그리고 버려진 상황이었으니까.

거지 같은 상황에 대한 모멸감으로 벌벌 떨며 어머니 손에 차가운 물 한잔을 쥐어주었다. 식탁 위에 쓰러진 코냑병이 혼자서 펑펑 울다가 식탁 아래로 떨어져 흉측하게 부서졌다. 모든 것을 미리 정해놓고 움직일 수 없었던 그때 어머니의 복수는 빠르지도 정확하지도 않았다. 이길 수 없을 만큼 볼 품 없었다.


모든 장례절차를 마무리하고 오후가 좀 지나서 민이는 가족들과 함께 집으로 돌아갔다. 아직 가정을 이루지 못한 나는 어머니의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의 거실에 앉았다. 어머니의 편지를 소파 옆 작은 테이블 위에 올리고 지금 읽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잠시 생각했다. 어떤 말들이 쓰여 있을까 예상하니 두렵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복잡했다. 그러다 마음을 다스린다고 눈을 감았더니 잠이 몰려왔다. 생각해 보니 지난 3일 동안 거의 잠을 자지 않았다. 그냥 잠이 오지 않았다.

나는 어려서부터 무슨 일이 있으면 잠을 잘 자지 못했다. 소풍날도 시험날도 면허 시험을 보던 날이나 신체검사를 받던 날, 면접이 있던 날, 첫 데이트가 있던 날, 출근이 시작되는 월요일에도 그 전날에는 항상 잠이 오지 않았다. 그런 날은 핫쵸코, 미지근한 우유, 마사지, 운동, 천몇 마리의 양 떼도 나를 재우지 못했다. 민이는 그런 나를 새가슴이라고 놀리곤 했다.


어머니 소파에 누워 오랜만에 곤한 잠이 들었다. 뭔가를 긁는 소리에 잠이 깨어보니 못생기고 덩치 큰 고양이가 바닥에 둔 가방을 열렬하게 긁고 있었다. 맹추였다. 불러도 오지 않고 생선살을 던져줘도 그다지 반기지 않아서 맹추라고 부른다던 그 고양이었다. 어디서 왔는지 작년 어느 땐가 제멋대로 집안으로 들어와 살아버린 녀석에게 어머니는 마실 물과 먹이를 챙겨준다고 했었다. 아침에 문을 열어두면 느릿느릿 마당으로 나가 볼일을 보고, 오후엔 아무 데나 드러누워 늘어지게 햇볕을 쬐거나, 비가 오면 현관 앞 어머니의 흔들의자에 앉아 우수에 젖은 눈으로 내리는 비를 감상한다던 한량이다.

어머니에게서 여러 말로만 들었을 뿐 사실 온전한 모습으로 대면한 적이 없었다. 어머니는 녀석이 어디 있다고 여러 번 말해주었지만, 찾아보면 가구아래 비좁은 틈이나 소파와 벽 사이 좁은 틈에 끼어 꼬리나 내놓은 정도였고 집주인 외에는 제 모양을 보여주지 않는 요망한 생명체였다. 아무튼 맹추는 외부인이 오면 꼭꼭 숨었다. 그래서 그 녀석이 더 생각이 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일주일은 굶었을 터라 나는 고양이 먹이를 찾아 나섰다.


부엌은 정돈되어 있었다. 개수대에 설거지도 없고 심지어 밥솥 안에는 마른밥도 없었다. 싱크대 찬장을 열어보니 백미 즉석밥이 가지런히 열두 개나 놓여있고, 접시는 크기대로 줄을 맞춰 앉았고, 모양과 무늬 크기까지 중구난방인 컵은 들쭉날쭉하지만 반듯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거기에는 민이와 내가 초등학교 시절에 만든 이상한 모양과 기괴한 무늬의 컵도 두어 개 섞여 있었다. 저런 걸 왜 아직도 가지고 계시나 모르겠다 생각하면서도 잠깐은 반가웠다.

여기저기 열심히 뒤져보니 싱크대 아래 칸에 넣어둔 고양이 사료가 보였다. 간식인 츄르도 있었다. 고양이 사료를 꺼내어 아무 그릇이나 찾아서 넣어주고 부엌 한쪽에 3단으로 쌓인 생수 하나를 꺼내 다른 그릇에 붓고 병째로 마셨다. 사료와 물을 챙겨 거실로 가니 잠을 자느라 덮었던 재킷을 녀석이 방석인 양 깔고 앉았다.

소파에서 좀 떨어져서 사료와 물을 놓고 손사래를 쳤더니 녀석이 마지못해 소파에서 내려왔다. 배가 고팠을 법도 한데 한없이 느릿느릿 걸어서 물을 두서너 번 핥더니 난데없이 나를 노려보았다. 간식을 넣어줄 걸 그랬나 싶은 순간이었다. 맹추가 사료 냄새만 맡고 다시 소파로 올라왔다.

‘어쩌라고..’라고 했지만 맹추에게 자리를 살짝 내어줬다. 하지만 보란 듯이 소파 등받이에 사뿐히 올라선 맹추가 덥석덥석 다가와 머리 냄새를 맡았다. 그리고 기분 나쁘게 발로 쳤다. 좀 씻으라는 말인가 싶은데 녀석은 그대로 내 어깨가 닿는 소파 등받이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야 나만 불편하냐’하고 나는 조금 옆으로 자리를 옮겼지만 이내 맹추가 방향을 틀고 따라왔다. 아마도 그새 녀석은 내 머리 냄새에 중독된 듯싶었다. 고급진 취향의 직진남 맹추 때문에 가라앉은 기분이 나아지고 있었다. 지금 막 누군가에게 긍정적인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가 고팠다. 어머니의 장례를 치르는 동안 무얼 먹었는지 기억이 없었다. 뭐라도 먹긴 했을 텐데 말이다. 다시 어머니의 부엌으로 갔다. 이번엔 냉장고를 열었다. 역시 어머니는 좀 다르다. 크고 작은 유리 용기에 여러 찬이 담겨있었다. 주로 채소지만 아마 맛있겠지. 내친김에 냉동실을 열어보니 소고기 돼지고기 생선류 그리고 닭가슴살이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었다. 이런 것을 드셨을까 싶을 만큼 많은 양의 고기였다. 가끔 모이는 가족 모임 때문일까?

돌아가신 어머니를 보내고 어머니 집에 들어와서 아들이 하는 짓이 고작 고기를 구워 먹는 것이냐 싶으면서도 나는 얇게 저며진 샤부용 소고기 한 팩을 집어 전자레인지 해동 기능을 눌렀다. 햇반 두 개를 데워 놓고, 프라이팬을 찾아 인덕션에 올렸다. 팬을 달군 다음 식용유를 두르고 고기를 익혔다. 역시 뜨거운 물에 빠뜨리는 건 내 취향이 아니다. 밀폐용기에 담긴 오이김치와 당근채 그리고 무슨 절임 같은 걸 꺼내어 어머니의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어머니의 식탁 의자에 앉았다.


공격적인 허기가 느껴졌다. 식탁 위 수저통 안의 숟가락을 서둘러 집었다. 차가운 스테인리스다. 따듯했던 어머니의 작은 손이 생각났다. 눈물 방울이 숟가락의 오목한 단면 위로 떨어졌다. 차려진 음식들이 ‘얼른 먹어, 이게 마지막이야’ 하고 말하는 것 같았다.

식탁 위 머그잔에 일그러진 곰이 나를 구경하고 있었다. 분명 귀여운 너구리를 그렸지만, 팬더곰 같은 짐승이 들어앉은 400밀리 커다란 머그잔이었다. 그 컵의 바닥에는 곰보다 못생긴 글씨가 갈팡질팡 파여 있을 터였다. '오마니 사랑함다'라고.

그 머그잔 너머 벽에 닿은 식탁 끝 가장자리에는 각종 약병들이 주르르 서 있었다. 그중엔 어머니가 마지막에 집어 들었을 진통제 병도 모자를 벗은 작은 병정처럼 우뚝 서 있었다. 눈물이 떨어지고 있었지만 웃음이 났다. 문득 맹추가 짜증 난 듯 야옹 하고 울었다. 아, 너도 고기 냄새가 좋구나. 혹시 내 머리에서 고기 냄새가 났니? 맹추의 그릇에 수북하게 고기를 덜어주고 어머니의 식탁에서 함께 밥을 먹었다. 다들 그냥 이렇게 사는 건가, 이토록 사소한 소통이 위로가 되다니. 뻔뻔한 맹추 덕에 내 얼굴에도 편안한 그늘이 지고 있는 것 같았다.


어머니의 작은 거실 벽에는 벽만큼이나 큰 대형 TV 모니터가 있다. 아마도 이 집안에서 가장 비싼 가전일 거다. 애교라곤 없는 아들인 내가 집들이 선물로 사드렸다. 그러고 보니 저 좋은 장비를 두고도 아들은 어머니와 함께 앉아서 영화나 TV프로를 본 적이 없고, 어머니도 말 한마디 조른 적이 없었다.

민이는 근처에 살아서 수시로 오가며 어머니를 살폈다. 함께 살기를 거부하는 어머니를 위해 민이가 일부러 어머니를 거기다 모신 것이기도 했다. 한 달에 한 번 가족 모임이 있는 날이면 모두 작은 마당에 둘러앉아 민이가 준비한 식사를 하거나, 날씨가 궂은날엔 좁은 거실에 붙어 앉아 북새통을 치르며 밥을 먹기도 했다. 대형 TV가 제법 큰 역할을 하기도 하는 그날은 어머니의 꿀 떨어지는 시선이 손주들한테서 떨어질 줄을 모르고, 밥도 먹는 둥 마는 둥, 쉬지 않고 아이들 뒤를 따라다녔다. 때문에 독한 민이는 어머니가 얼마나 손주들을 사랑하는지 잘 알면서도 가족 모임 외에는 웬만해선 아이들을 데리고 오지 않았다. 가족 모임이 어머니 집에서만 이루어진 것도 메뚜기처럼 뛰는 아이들과 아픈 어머니를 모시고 함께 갈 수 있는 식당이 여의치않기도 했지만, 어머니가 부산한 아이들 때문에 갑작스럽게 피로해질까 봐 민이가 신경을 곤두세우는 때문이기도 했다.

나는 가족모임 외에 어쩌다 한 번씩 주말에만 어머니를 보러 왔다. 특별히 할 이야기가 많지 않은 아들과 어머니가 만나는 날엔 아들이 사들고 온 유명 식당의 초밥을 먹고 어머니가 만든 목련꽃차를 마시며 지나간 영화 같은 것들을 이야기했다. 나는 주로 들었다. 가만히 듣고 있으면 영화의 줄거리와 주연 배우들에 대한 어머니의 기억력에 놀라고, 영화의 깊이를 알아보는 어머니의 심미안에 또 놀라곤 했다.


TV를 켰다. TV를 껐다. 다시 켰다. 영화를 볼까 편지를 읽을까 고민했다. 편지를 읽고 나면 나는 정말 어머니와 작별을 해야 할 것만 같아서 서두르고 싶지 않았다. 마음을 잡지 못하고 애꿎은 TV의 리모컨만 만지작거리다 밤이 더 깊어졌고. 잠은 오지 않았고, 맹추는 소파 아래 죽은 족제비처럼 길게 누웠다. 아무래도 어머니가 남긴 편지를 읽어야 할 것 같았다.



사랑하는 나의 보물,

나의 아들 인아

민이를 부탁해. 맹추도. 아버지도.


추신 : 고맙다.


솔직히 마지막을 정리하는 어머니라면 특별한 말을 썼을 거라고 기대했었다. 익숙한 당신 같지 않은, 내 엄마 같지 않은 다른 사람을 마주하게 될까 봐서, 삶을 정리하는 어머니는 멀고 낯설 것만 같아서 그래서 미리 겸허하게 겁도 양껏 먹어 두었다. 그런데. 엄마, 나랑 장난 지금 해?

어머니를 잃은 깊은 슬픔과 어머니가 남긴 큰 사랑을 보게될 것이란 망상적인 기대가 바람 빠진 풍선처럼 쪼그라들자 맹추앞에서 조차 작아지는 쪼잔한 배신감을 느끼며 편지를 접었다. 민이 편지 내용은 안 봐도 알겠다. 저기서 보물을 천사로 바꾸고 민이에게는 나를 잘 부탁하셨을 테지. 다만 추신의 내용이 몹시 궁금하다.

하긴 편지에 써 있을 법한 뻔한 말들을 내가 모를리 없다. 밥 잘 먹어라, 몸에 좋은 걸로 먹어라, 똑바로 씻어라, 성실하게 살아라, 실패 앞에서 더 용감해져라, 동정심을 가져라, 결혼이 어쩌고 저쩌고. 어쩌다 순서만 좀 바뀌지 헤어질 시간이 되면 항상 그런 잔소리를 하셨으니까. 벌써 다 못이 박혔는데 굳이 편지로 쓰실 리가 없다. 그건 정말 어머니답지 않으니까.


그러고 보니 장례식 이후 어머니 집에서 보았던 것들이 어쩌면 나에게 남긴 진짜 편지 같다. 흐트러지지 않은 집안을 보여주시려고 날마다 정돈을 하셨던 거고, 금방 지은 잡곡밥을 좋아하시면서 즉석 흰쌀밥을 층층이 쌓으신 거며, 좋아하지 않는 고기를 종류대로 냉동실을 채우신 거며, 혼자인 내가 안쓰러워 일부러 맹추처럼 무심한 녀석을 골라 분양받으셨겠지. 마음을 나누는 친구들이 있어 삶이 채워진다는 것, 이해하고 포용은 해도 명확한 삶의 경계가 있음을 아버지를 통해 보여주신 것처럼 어머니는 이미 아는 길을 정확하게 도달하는 당신의 가장 뛰어난 능력을 다시 보여주신 거였다. 여기가 어머니와 함께 한 모든 시간의 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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