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내가 생각을 잘못한 걸까. 의사가 난자 기증을 말했을 때 난 그녀를 가장 먼저 떠올렸다. 머릿속에 얽혀있는 여러 전선줄에서 그 전선에만 전기가 통하는 것 같았다. 그녀는 내가 초등학교 4학년 때 만난 절친이고, 장담하건대 나의 평생 소울메이트다. 우린 혈액형도 같고 체형도 비슷하고 좋아하는 음식도 이상형도 상당히 많이 겹쳤었다. 일례로 우리의 첫사랑은 그녀의 집에 이웃한 고교에 다니던 남학생이었는데, 그가 졸업하고 더는 우리의 시야에서 보이지 않을 때까지 잘 알지도 못하는 그에 대한 환상을 심으며 함께 시시덕거리던 추억도 가지고 있었다. 그녀의 난자라면 나와 안 맞을 이유가 전혀 없을듯했고, 그녀를 닮은 아이라면 그야말로 나와 안 맞을 이유가 전혀 없겠다고 확신했다.
다만 그녀가 그것을 허락할지 두려웠지만, 친구는 일 초의 망설임도 없이 기꺼이 하겠노라고 말했고, 그날 우린 서로를 끌어안고 한참을 울고 웃으며 우리의 단단한 우정을 확인했다.
나의 예상처럼 그녀의 난자는 남편의 정자를 무리 없이 받아들여 나의 자궁에 안착했고, 나는 그동안 꿈꾸던 모든 태교에 전념하며 배 속의 아이에게 집착하고 또 집착했다.
그녀는 이미 두 아이의 엄마였으므로 나에게 필요한 것과 필요하지 않은 것들에 대하여 세심하게 일러주었다. 심지어는 내가 너무 불필요한 태교에 집착한다고 충고하며 그저 편안히 지내는 루즈한 일상을 권했지만, 내가 버럭하고 짜증을 내자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물론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우리는 절친이니까 말이다. 그녀의 성격상 필요하지 않은 충고를 한 적은 거의 없었다. 그리고 그녀의 성격상 상대방이 받아들이지 않는 충고를 두 번 한 적도 없었다. 그리고 그녀의 성격상 그녀의 충고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을 이해하고 가까이 두는 일도 없었다. 하지만 내 아이였다. 다소 과하더라도 내가 원하면 그녀는 저만치 물러서야 한다고 나는 생각했다.
어쩌면 그 순간부터 우리의 수분 없이 단단했던 우정에 자작자작 금이 갔는지 모른다. 친구로서의 충고였는지 난자기증자로서의 염려였는지 나는 아직도 판단이 잘 서지 않지만, 그녀가 그 순간부터 나에게서 어떤 거리를 두려 했다는 것을 나는 분명히 느꼈다.
그러나 여전히 임신이 두렵고 어려웠던 나는 그녀에게 많이 의지했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세심하게 배려하며 일러줬고, 때론 한밤중에도 나를 찾아와 안심을 시켜주고 돌아가곤 했다. 시간이 나면 임산부가 마시기 좋은 차를 달여오거나 부드러운 채소 같은 것을 자주 삶아다 주곤 했는데, 아마도 임산부가 겪는 소화기관의 문제를 배려한 것 같았다.
아이가 세상에 나오던 날을 잊을 수 없다. 모든 부모가 그러하겠지만, 나에게는 정말이지 그날 이후의 모든 순간이 특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튼튼하지도 씩씩하지도 않았던 나의 난자들로 열한 번의 실패와 절망을 겪은 후에 얻은 내 아이였다. 내 목숨을 포함해 내가 가진 그 어떤 것보다 더 소중한 내 아이.
자연분만하겠다고 고집을 쓰고 분만실로 들어서자, 이미 나보다 어린 두 산모가 막바지 진통을 하고 있었다. 프라이버시를 생각했다고는 볼 수 없는 얇은 커튼으로 나눠진 분만 침대 사이를 한 명의 분만의와 세 명의 간호사가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갑자기 몰려든 손님들로 정신을 못 차리는 식당 사모님처럼 얼굴이 벌건 의사는 안경에도 땀이 차 있었고, 이게 무슨 일이냐를 여러 번 중얼거렸다. 그랬거나 말거나 고작 의사 한 명이 산모 세 명의 출산을 동시에 받으려 한다는 그 상황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려다 보니 산통에 더해 짜증이 났다. 게다가 나는 마흔에 가까운 노산이라 왠지 부끄러운 마음에 아파도 더 아프다는 신음을 낼 수 없었다.
두 아이가 먼저 태어났고 의사는 영혼 없는 칭찬을 허공에 날리며 산모들을 내보냈다. 의사는 여유를 찾은 듯 혼자 남은 나의 산통에 맞추어 연신 힘을 주라고 말했다. 하지만 천정의 전등이 태풍에 흔들거리는 여린 나뭇가지처럼 요란하게만 보이고, 허리 아래로는 느껴지는 어마어마한 산통에도 불구하고 거기가 내 몸이 아닌 것처럼 도통 힘이 들어가 지지 않았다. 급기야 진이 빠진 의사가 왜 다른 산모들처럼 힘을 주지 못하느냐며 짜증을 드러냈다. 그 말을 듣고 3초쯤 후부터 다시 시작된 진통에 맞춰 나는 분만실이 떠나가라 고래고래 욕지기를 하기 시작했다. 아악 씨발, 이런 씨발 젠장 씨발 빌어먹을 씨발 니미럴 씨발 씨발 씨발... 아마 한 삼백 번은 발악질을 한 것 같은데 의사고 간호사고 멀찍이 물러서더니 곧이어 남편이 들어왔다.
누가 보면 남편이 산통을 했을 것처럼 얼굴은 무르익은 딸기처럼 붉어져 있었고, 태평양같이 넓은 이마에는 땀방울이 도록도록, 소처럼 커다란 눈에는 그렁그렁 맺힌 눈물에 노란 눈곱이 동동, 게다가 몽글한 코 망울 아래로는 콧물도 조금 나와 있었다.
그 불쌍한 몰골에도 나의 산통과 수치심과 천장을 뚫고 나간 분노 게이지 때문에 나는 그를 용서할 마음이 발톱의 때만큼도 없었으므로, 대번에 상체를 날려서 수술용 모자를 쓴 그의 대갈통을 낚아채 잡고는 요동하는 전등의 박자에 맞춰 그야말로 미친 듯이 흔들어 댔다. 분만실이 시끄러운 것은 절대 이상할 일이 아니다.
아무튼 괴성에 가까운 욕지기와 남편의 얼마 남지 않은 머리카락을 죄다 희생해 가며 나는 매우 특별한 딸아이를 낳았다. 출산 후 치료를 위해 병원을 찾았을 때 아기를 받아준 분만 의사는 거기 없었는데 간호사들에게 물어보니 안식년을 갖는다고 했다. 하긴 많이 놀라기도 했을 것이다.
그녀는 내가 딸아이를 낳았다는 연락을 받고도 병원에 오지 않았다. 말로는 바빠서 그랬다고 했지만 나는 마음이 석연치 않았다. 아이에게 다른 감정이 있는 것은 아닌지 본능적인 경계심이 발동하고 있었다.
그녀가 아이를 처음 본 것은 내가 산후조리를 모두 끝내고 집으로 돌아와 안정을 찾은 다음이었다. 통화를 여러 차례 하긴 했지만, 그녀는 한사코 바쁘다는 핑계로 아이를 보러 오지 않았다. 그나마 그 첫 만남도 아주 잠시 아이를 보고 예쁘다고 몇 마디 말만 할 뿐 안아주지도 않고 선물만 두고 금세 자리를 털고 가버렸다.
어쩌면 그렇게 나와 아이를 피해 주기를 내가 바란 건지도 모르겠다. 나는 내가 그녀의 아이들을 안고 예뻐했듯이 나의 아이를 그녀도 소중한 조카처럼 대해주길 바랐지만, 그녀는 이미 엄마를 경험하고 있는 선배로서 누구보다 더 잘 알았을 것이다. 그녀의 그 어떤 행위도 나의 경계와 의구심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오 하나. 딸의 이름이다. 세상에 하나뿐인 내 딸 오 하나. 하나의 백일 날 그녀를 비롯한 친지들이 찾아와 소박한 파티를 했었다. 아주 잠깐 그녀에게 하나를 안아달라며 나는 일부러 쿨하게 그녀의 품에 하나를 맡겼다. 사랑스러운 아이를 선물해 준 그녀이기에 나는 어머니의 너른 마음으로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아이를 넘겨주던 그 순간 아차 하는 따가운 느낌이 드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나는 차디찬 얼음물에 던져진 것처럼 온몸에 소름이 돋고 말았다.
엄청나게 낯을 가리고 엄마밖에 모르던 하나가 그녀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더니 곧이어 토실한 입술을 한껏 벌리며 해맑게 웃었다. 그녀의 눈에서도 반짝하고 뭔가가 빛나는 듯했고, 두 사람의 모습은 거실로 들어오는 저녁 햇살이 더해져 숨 막히게 아름다웠다.
나도 모르게 하려던 일도 잊고 그녀에게서 하나를 빼앗듯이 데려왔다. 그 바람에 파티의 분위기가 어색해지고 말았다. 그녀를 알았던 모든 시간을 통틀어서 그녀가 그렇게 섭섭한 표정을 지은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녀는 남편에게 일이 있다는 말을 남기고 나를, 하나를 다시 보지 않고 서둘러 자리를 떠나버렸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만나지 않았다. 연락조차 하지 않았다. 그녀가 어디서 무얼 하고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는지 내가 소문으로 알았듯이 그녀도 우리가 어떻게 사는지 건너 건너 전해지는 소문을 통해 알았을 것이다. 가슴이 찢어졌지만 일상은 덜 불안했다. 마치 그녀의 소중한 물건을 가지고 와서 내 것 인양 지키는 미안함을 그녀가 헤아린다는 것이 어느 날은 고맙다가도 어느 날은 지독하게 우울했다.
그렇게 10년이 흘렀다. 하나는 똑똑하고 예쁘고 완벽하게 자라고 있었다. 어찌나 나와 잘 맞는지 세상을 10년밖에 안 살고도 하나는 벌써 나의 절친이 되었다. 목소리는 얼마나 차분하고 또 귀여운지 나는 잠들기 전에도 일부러 하나의 폰으로 전화를 걸어 말을 걸곤 했다.
남편은 나보다 더했다. 딸이 바라는 일이라면 반쯤 미친 듯이 몰두했다. 공룡이 좋다는 말에 딸의 방을 온통 공룡 장난감으로 가득 채워 놓은 사람이다. 하루는 아빠가 만들어준 스파게티를 하나가 참 좋아하더라고 말했다가, 이 주 동안 칼퇴근해서 저녁마다 우리에게 온갖 종류의 스파게티를 만들어 준 사람이다. 하나가 그 스파게티 위로 닭똥 같은 눈물을 툭툭 떨구면서 스파게티보다 아빠가 좋은 거라고 말한 후에야 부녀가 부둥켜안고 눈물에 콧물에 젖은 얼굴을 비비며 겨우 그 극성을 멈춘 사람이다.
우리에겐 사랑할 시간이 부족할 뿐 사랑은 언제나 흘러넘쳤다고 자부할 수 있다. 하나는 나와 남편의 중심이었고 그만큼 견고하고 단단하고 완벽했다. 그래서 우린 더 힘들었는지 모른다.
오 하나는 11살이 되지 못하고 사고로 절명했다. 다 같이 재미있자고 간 물놀이에서 왜 우리 아이만 사고가 났을까 수백 번도 더 생각했지만, 그 불행한 사고의 원인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사고 소식을 듣고 영안실의 시신 확인을 위해 남편과 서로를 의지하며 들어섰다. 눈을 감고 곤하게 잠이 든 하나를 보며 멍하니 저 애가 왜 여기서 잠을 자나 생각했다. 깨워야겠다는 생각으로 하나의 얼굴을 만지려는데 그때 문득 알았다. 하나가 그녀와 참 많이도 닮아있다는 것을. 사실 남편을 닮은 커다란 눈만 빼면 나머지는 온통 그녀였다는 것을 말이다.
우리가 처음 만난 그 시절의 그녀와 정말 신기하리만치 닮았다는 것을 어째서 나는 그 순간에서야 알았던 걸까. 투명한 피부, 까만 머리, 긴 손가락, 반달 손톱, 길고 예쁜 다리, 못생긴 새끼발가락, 무릎 아래 있는 작은 반점까지 말이다. 사람을 웃게 만드는 말재주 아니 웃을 때까지 말하는 말재주라고 해야 하나, 다정한 배려, 무한한 책임감, 말릴 수 없는 승부욕, 절대 없는 손재주.
아마 알고 싶지도 기억하고 싶지도 않았나 보다. 그러나 그 순간엔 마치 나만 몰랐던 사실을 그제 서야 마주한 것처럼 묘한 배신감이 들었다. 나에게 온 세상을 던져주고 죽음으로써 모두 가져가 버린 것도 모자라, 딸은 이제 '나는 지금껏 당신의 딸이 아니었어요'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창자의 끄트머리로부터 식도까지 북받쳐 올라오는 설움이 핏덩이를 토하듯 터져 나왔다. 무엇을 보다 먼저 슬퍼해야 하는지 나는 우선순위조차도 정할 수가 없었다. 그저 소리 지르고, 울고, 울다가 까무러쳤다.
장례식 날 남편이 그녀를 불렀다. 나는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난 제정신이 아니었으니까. 그녀가 내 앞으로 와서 내 손을 잡았을 때 매정하게 뿌리친 기억은 있다. 그리고 머리를 감싸 쥐고 더없이 슬피 울었다.
마지막 인사를 하라고 하나의 시신을 가까운 친지들에게 잠시 보여주는 예식이 있었다. 유리 벽 너머에 하얀 하나가 곱고 반듯하게 누워있었다. 나와 남편 그리고 시댁 식구 몇은 유리 벽 안으로 들어가 하나의 손을 잡거나 뺨에 살짝 손을 대며 작별을 고할 수 있었지만 그녀는 유리 벽 안으로 들어올 수 없었다. 내가 허락하지 않았다.
유리 벽 너머 그녀의 시선은 오직 하나에게만 박혀있었다. 심지어 내가 적의를 가지고 노려보는 것도 모르는 것 같았다. 그렇게 노려보고 있자니 그녀가 상당히 수척해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늘 총기가 넘치던 눈에는 오직 슬픔만 있었다. 그녀는 흐르는 눈물을 닦지도 않고 인형처럼 꼿꼿이 서서 하나를 바라보았다. 지난 10년간 보지 못한 한을 풀기라도 하듯이.
하나를 보내고 모두 그 자리를 떠났지만 그녀는 그대로 서서 하얀 커튼이 쳐진 유리 벽 너머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살바토레 페라가모 발렛 플렛 슈즈에 젖은 얼룩이 점점 넓어지고 있었다.
그렇게 일 년이 지났다. 나는 남편과 일상을 함께 할 수 없을 만큼 피폐해졌고, 남편은 오롯이 알코올에 의지하는 사람이 되었다. 우린 각자의 길을 가기로 하고 최근 법률적인 이혼을 했지만, 여전히 한집에 살면서 다른 방을 쓰고 있다. 각자의 길을 가기로 하고 각방을 쓰는 이유는 이 집에 하나가 살았던 방이 있기 때문이다. 하나의 향기가 남은 온갖 종류의 공룡이 가득한 공간. 남편도 나도 그걸 포기할 수 없었다. 아직은 하나를 놓아줄 수가 없다.
오늘 나는 그녀와 만난다. 그녀는 내가 연락을 하기 전까지 먼저 연락을 한 적이 없다. 생각해 보니 우리가 친구로 지냈던 모든 날의 대부분이 그랬던 것 같다. 그래서 내가 먼저 연락했다. 늘 그랬듯이.
만나면 무슨 말을 해야 할까 고민스럽다. 하나 이야기를 해야겠지만 쉽게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다시 친구로 돌아갈 수는 있을까.... 나를 용서할 수 있을까.... 나를 이해해 줄까.
무엇보다도 만약에, 만약에 말이다.
내가 다시 부탁하면 그녀는 나에게 또다시 난자를 기증해 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