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치는 에너지를 주체할 수 없었던 어린 시절의 나는 가만히 있는 것이 가장 힘든 아이였다.
다섯 살 어린 나이에 흑백텔레비전을 통해 보았던 발레리나의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사람의 몸으로 그렇게 우아하게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고, 그 동작들은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틈틈이 그 동작들을 따라 하며 시간을 보냈고, 덤으로 얻게된 유연함 덕분에 훗날 '요가를 배웠냐'는 말을 듣기도 했다.
무용이라는 단어를 알고 간절히 꿈꾸었지만, 원하는 만큼의 충분함 없이 흐지부지되었다.
결국 그 넘치던 에너지는 태권도로 향하게 되었다.
중학교 3학년 때 시작된 태권도 수련은 나의 삶에서 가장 즐거웠던 시간이었다.
모든 에너지를 집중시키듯이 태권도를 수련을 했다. 지금 나는 현재 경기도 태권도협회에서 부회장이라는 영광스러운 타이틀을 얻게 되었다.
여성으로서는 최초의 자리이다 보니 그만큼의 무게감도 느낀다.
나의 발걸음이 곧 후배들의 길이 될 테니, 발걸음 하나하나를 허투루 할 수 없음에 신경을 곤두세우게 된다.
생활고에 시달리면서도 십수 년간 간신히 이어온 심판 생활의 과정을 거쳐 얻어진 자리이기에, 남다른 뿌듯함과 대견함을 스스로 느낀다.
그 안에 가장 크게 자리 잡은 감정은 '감사'이다.
시대가 바뀐 흐름 속에 운 좋게 얻어진 자리일 수도 있지만, 감사하게도 노력의 대가를 명예로 보답받게 되었다.
시합을 알리는 개회사를 맡게 된 것도 여성으로는 처음이었고, 본의 아니게 이 자리에서 새로운 역사의 시작이라는 개인적, 사회적 의미를 갖게 되었다.
비록 짧은 시간의 개회사였지만, 많은 떨림과 벅차오름은 많은 분들의 관심으로 더해졌다.
덤덤한 척하면서도 내심 '감사합니다'를 수없이 되뇌었다.
이 자리에 있게 되기까지 함께하며 이끌어주셨던 분들께, 그리고 오랜 시간 함께 심판 생활을 해왔던 선배와 동료들에게도 그저 모든 것이 감사하기만 하다.
그러나 아직 노력의 끝을 보여서는 안 된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다. 올바르고 흠 없이 다져진 발자국으로 후배들이 그 길을 밟아도 흔들림이 없도록, 할 수 있는 만큼의 노력이 필요함을 안다.
오늘의 한 줄 사색
명예로운 감투의 무게는 과거의 보상(報酬)이 아니라, 후배들을 위해 올바른 길을 다지는 책임(責任)의 첫 발자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