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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숙 Sep 07. 2023

시간 속에

모두가 나였음을

우리는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을 뿐인데, 나를 둘러싼 세상은 너무도 빠르게 변하고 있음을 느낀다.

어느새 60을 코앞에 바라보는 나이가 되면서 지금 내가 바라보는 세상은 그동안 살아왔던 세상과는 너무도 다른 세상이 되어버린 듯하다. 점점 낯선 말들과 함께 새로운 것들이 등장하며 다른 세상을 만들어 가는 요즘 나는 분리된 다른 세상에서 허덕이는 기분이다. 


알아듣지도 못하는 말들이 내 귀를 넘나들 때마다 나는 모른다는 것에 그리고 앞으로의 변화를 예측할 수 없다는 것에 불안함을 느낀다. 내가 모든 것을 다 알아야 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큰 흐름의 변화가 있음을 막연하게 느끼고 있으며 그 흐름에 올라타지 못하게 될까 봐 두렵다. 


AI에 의해 1주일 만에 10년의 시간을 앞당겼다느니 미래의 직업이 변한다느니 많은 말들이 있으며, 이미 그 변화를 일부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준비된 것은 없고 준비를 하려니 너무도 벽이 높아 보이고 안절부절 마음이 급하게 느껴진다. 나만 그런 것일까? 아닐 것이다. 


그런데 이런 나의 마음에 감사한 생각이 든다. 이것은 내가 살아있음을 의미하는 것이고, 생각을 하고 있음이겠지 싶다. 변화를 느낄 수 있다는 것도, 그 변화에 함께 움직이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도 모두 내가 그만큼의 여유가 생겼음이라는 것을 느낀다. 


당장 코앞에 불을 꺼야 하는 시간을 보낼 때는 이런저런 생각조차 할 겨를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루하루 벌어 모아 빚을 갚고 생활하고 돈만 쫒았어야 했던 그 시간에는 아무것도 보이지도 않고 생각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참 많은 시간이 흘렀고, 많은 일들이 있었다. 모든 것이 안정적이고 완벽하다 할 수는 없지만 지난 시간에 비하면 많은 여유가 있음을 느낀다. 그 모두가 감사하다. 아직도 갈 길이 멀긴 하지만 시간 속에 변화를 만들어 낸 것처럼 앞으로도 많은 변화를 만들어 낼 것이기 때문에 이젠 걱정하지 않는다. 


몰라서 두려운 것은 내가 알게 되면 사라지는 것이기에 하나씪 알아 나가면 되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 보다 조금 늦더라도 괜찮다. 나의 속도에 맞춰 한 발 한발 내딛다 보면 나의 목적지에 도달할 것을 알기에 괜찮다. 내가 해내는 모습을 보이면 함께하는 나의 아이들도 조금은 수월하게 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내가 인생 선배인데 선배답게 잘 해내자. 지금 나는 시간 부자니까 할 수 있어.' 다짐도 하면서...


시간의 변화마다 그 속에 있던 나의 모습은 매번 달랐다. 어려서는 부모님의 사랑으로 부족함이 없었다. 주머니에 돈이 얼마가 있는지도 모르고 나가서 아이들에게 맛있는 것을 사주고 동대문 지하상가를 지나다가 마음에 드는 옷이나 신발을 내 맘대로 살 수가 있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작은언니의 죽음으로 모든 것이 바뀌기 전까지는 나는 세상이 모두 나의 것인 줄 알았다.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세상의 쓴맛을 알게 되었다. 남편의 도박으로 생긴 빚으로 극심한 스트레스에 의한 실명위기를 겪게 되면서 삶을 놓아버릴 생각까지 하게 되었었다. 이후 남편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모든 빚을 떠안아 정신없이 살아온 그 시간들은 나를 내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 만든 듯했다. 


시간마다 다른 삶을 살았던 나는 마치 다른 사람 같다. 하지만 그 모두가 나의 삶이었고, 그 속에서 나는 철학자도 되고, 심리학자도 되고, 종교인도 되었으며, 삶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다.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는 눈을 갖게 되었고, 더 깊이 생각할 수 있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다시 다른 시간을 만나면서 또 다른 나를 만나게 될 것이다. 이제는 조금 더 아름다운 나를 만나고 싶다. 내면으로 여유가 있으며,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받은 것보다 더 많이 베풀며 살 수 있는 아름다운 나를 만나기 위해 나는 지금 준비를 하는 중이다. 


원망이라는 마음이 나를 얼마나 지치고 힘들게 했는지, 미움이라는 마음이 나를 얼마나 갉아먹는지를 지독히도 경험하면서 이제는 나의 남은 삶에는 사랑이라는 따뜻함을 그리고 감사라는 그 넓은 마음으로 세상을 아름답게 살고자 한다. 


우리의 감정 모두를 경험하면서 나를 위하고 아끼는 감정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되었다. 사랑, 미움, 원망, 시기, 질투, 감사, 행복 중에 나를 위하는 것은 사랑과 감사 그 속에서 느껴지는 행복이라는 것을 안다. 


그래서 욕심보다는 욕망을 가질 것이고, 좌절보다는 희망을 위해 배움을 지속적으로 이어 나갈 것이다. 그 안에 뚜렷한 나의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가 크든 작든 나의 나침반으로 여길 것이며 길을 잃지 않으려 노력할 것이다. 


그러는 가운데 두려움의 감정은 줄어 갈 것이며, 해냈다는 뿌듯함으로 채워 갈 것이다. 이런 나의 모습은 가까이에 나의 사랑하는 아들과 딸에게 힘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고, 나를 보는 다른 이들에게도 작게나마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기대되는 나의 미래의 시간은 나를 믿고 기다리고 있기에 수시로 이 모두를 되새기며 앞으로 나아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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