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벌레의 서랍

by 달그림자

13장 우월감, 그 이중성의 거울


글을 읽는다고?


세 살 위인 작은 언니는 예쁘고 똑똑했다.

일곱 살에 학교를 다니던 언니는 나를 앉혀놓고 글을 가르쳤다.


그 덕에 네 살에 글을 읽게 된 나는 글이란 글은 눈에 띄는 대로 읽었다.


뜻은 알지 못했어도 글을 읽던 나의 모습은 어른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우쭐거리는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것은 골목대장을 하고 싶었던 내게 또 하나의 무기와도 같았다. 다섯 살인 내가 일곱, 여덟 살인 아이들보다 더 잘 읽었기 때문이다.


가끔은 아홉 살보다도 잘 읽었다. 이것은 잘난 척을 하며 우월함으로 어깨에 힘줄 수 있는 일이었다. 어른들이 비교를 하며 나를 칭찬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비교로 화가 났던 아이는 내가 나올 때를 기다렸다는 듯 보자마자 밀치고 달아났다. 난 끝까지 쫓아가 때려주려 했지만 넘어지면서 무릎과 손바닥이 찢겨서 주저앉아 울었다.


쫓아 나오신 아버지품에 안겨서 일렀다.

아버지는 웃으시면서 "괜찮다, 네가 그 아이를 화나게 했나 보네. 화가 나면 너도 그러지 않니"


그 말씀에 생각을 했다. "난 화나게 한 게 없는데ㅡ, 너도 그러지 않니"


그날은 나가서 놀지 않았다. 집에서 실컷 먹고 언니 오빠와 TV 보며 놀았다. 그러면서도 계속 생각을 했다.


내가 화가 날 때가 언제인지 , 왜 그 아이가 화가 났는지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화가 나면 나도 그 아이처럼 표현을 했다.


며칠이 지나서 그 아이를 다시 만났는데 여전히 화가 난 상태였다. 내게 다가오더니 "네가 잘났으면 그렇게 잘 났냐? 네가 나보다 글을 잘 읽는다고? 읽어봐" 하는 것이었다.


비교를 당하면 나도 기분이 나빴다. 그리고 그것은 정말 화가 나는 일이었다.


순간 "왜 그렇게 극성맞니? 아무개처럼 얌전히 좀 놀아라."라고 동네 어른에게 야단맞던 것이 떠 올랐다.


골목에서 너무 시끄럽게 놀아서 아기를 재울 수 없다며 야단치며 했던 말이다. 그때는 아기가 잘 수 없다는 말에 순순히 다른 곳에 가서 놀았지만 "아무개처럼 얌전히 좀 놀아라" 그 말에 나와 비교되었던 그 아무개가 미워졌기 때문이다.


알았다. 비교당한다는 것은 기분 나쁜 일이다. 거기에다 그 아이가 잘난척하는 모습은 정말 꼴 보기 싫었다. 화가 날만 일이다.


화가 난 그 아이에게 "글은 네가 나보다 더 잘 읽잖아" 소리 지르고 집으로 뛰어 들어갔다.


사실 이런 일은 다반사였다. 대수롭지 않게 지났던 일들이다. 그런데 막상 밀쳐지고 넘어져 다치고 보니 생각이 달라졌다.


잘났다는 '우월감'은 타인에게 화를 유발할 수 있고, 내게는 '상처'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을 지나고 다시 또 생각해 본다.


현재의 우월감과 자신감


​성인이 된 후, 학력, 직함, SNS 팔로워 수, 성공한 이야기 등으로 남과 자신을 스스로 비교를 한다. 그러면서 가끔 우월감을 갖지만 대체로 우울해진다.


'나이도 어린것이 벌써 저렇게 성공했네.

평생을 일했어도 구경도 못 할 돈을 저 아이는 하루 만에 번다고?'스스로 이런 목소리를 내며 좌절한다.


어렸을 때는 어른들이 나를 남과 비교하는 것이 싫었으면서 성인이 된 지금은 스스로 남과 비교하며 기분이 업 다운이 된다.


SNS에 올라온 사진들은 꾸며진 우월감이나 자만심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정말 잘난 사람은 구태어 사진을 올려 뽐내지 않아도 스스로 잘난 것을 알고 있다.


그 사진들을 보며 그들과 나를 비교하고 부러워하는 것은 자신의 가능성마저 짓밟는 일인지도 모른다.


스스로의 어제와 오늘을 보며 성장해 나가는 모습에서 스스로 자신이 인정될 때, 진정한 우월함과 자신감은 그런 때 나오는 것이어야 한다.


하지만 나비로의 변태는 '더 잘났다'는 우월감 대신, '아직 채워야 할 것이 많다'는 겸손함 위에서 완성될 것이다. 가장 높이 날기 위해서는, 가장 낮게 엎드려 성찰해야 가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