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벌레의 서랍

by 달그림자

14장 미꾸라지 양어장과 거머리


트라우마가 남긴 두려움


그날은 일곱 명이 함께 공주능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는 미꾸라지 양어장이 있었다. 우리는 항상 그 양어장에 대한 호기심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주인아저씨가 일을 하며 늘 지키고 계셨기에 먼발치에서 흘깃 보는 것이 다였다.


그런데 그날은 아저씨가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누구라고 말할 것도 없이 눈짓으로 양어장에 들어갔다.


한참 동안 미꾸라지 잡으려고 휘젓고 다니면서 난장판을 만들어 놨다. 어느새 주인아저씨가 나타났고, 우리는 놀라서 뛰어나왔다.


하지만 작았던 나는 그 높이를 쉽게 나오지 못했다. 아이들의 손을 빌어 나왔을 때 내 한쪽다리에 시벌건 것이 붙어 있었다.


"이게 뭐야? 하며 옆에 있던 아이가 물었다.

나는 처음 보는 것이었다. 내 다리에 붙어 있던 것이 떼어내려 하니까 더 단단하게 매달렸고, 순식간에 몸을 부풀렸다.

무섭고 놀라서 세상이 떠나가라고 울었다.

주인아저씨로부터 다른 아이들은 도망갔다.

난 꼼작하지 못했다.


결국 아저씨가 라이터불로 떼어내주었다.

그러고는 멀리서 숨어있던 아이들과 내게 함께 들으라고 큰 소리로 야단치고, 다시는 들어가지 않겠다고 약속을 받아내셨다.


사실 난 그 약속이 아니어도 두 번 다시 들어갈 생각은 없었다.


그렇게 양어장을 빠져나와 우리는 집으로 향했다. 거머리의 몸부풀리기와 그 빨판의 강력함으로 이미 혼비백산한 상태였다.


그 일의 기억은 공포영화를 몇 편 본 것과 같은 기분이었다.


아저씨에게 혼나는 것보다 거머리가 더 무섭고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성인이 되어 그와 같은 두려움을 느꼈다면 남편의 빚으로 독촉을 받던 일과 견주어 본다.


잠깐의 경마 경륜으로 많은 빚을 지게 된 상태였다. 카드깡도 하고 지인에게 빌리기도 하고, 연대보증이라는 것을 하면서 내가 빚 독촉을 받는 상황이 되었다.


독촉전화는 그야말로 협박과도 같았고 이곳저곳에서 하루에도 몇 통씩 받았다.


핸드폰과 한참 친해질 무렵 난 그 벨소리가 공포로 느껴지게 되었다.


살면서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은 일이었다.


남편의 순간 쾌락이 무책임으로 나락시켰고, 그 지경이 되도록 몰랐던 나의 무관심이 낳은 결과였다.


그 일로 수년간 사는 것이라고 할 수 없는 그런 시간들을 보냈어야 했다.


가장 크게 느껴졌던 것은 두려움이었다.

이 생활이 끝날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키워진 마음은 남편에 대한 원망과 미움, 나 자신을 질책하는 마음이었다.


10년 동안 그 빚을 갚으며 쌓아 왔던 마음들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그 마음에 내게 실명이라는 위기를 안겨주었고, 죽음마저 생각하게 했었다.


어느 날 TV개그 프로그램에서 강호동이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웃으면 행복해진다"는 말을 했다.


가슴에 와닿았다. 그런데 웃어지질 않았다.

근육이 굳어있었다. 거울을 보며 또 한 번 놀랬다. 내 표정이 저승사자라 하면 어울릴 것 같았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정말 놀랬다. 가장 끔찍했던 것은 이 얼굴로 아이들을 대했다는 사실이다.


가장 쉬웠던 것이 웃는 것이었는데, 그것이 가장 힘든 일이 되어 버렸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웃자, 웃어보자, 이게 뭐라고ㅡ"

그러면서도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웃으려 애쓰고 자연스럽게 웃게 될 때까지 굳었던 근육이 풀리는데 시간이 제법 걸렸다.

그 웃는 연습으로 굳었던 얼굴이 풀리고, 그동안 쌓였던 끔찍한 감정들이 희미하게 옅어지고 있었다.


그러면서 느꼈다.

아버지의 그 잔잔한 미소는 이런 모든 감정들로부터 구속받지 않는 방법이었음을...


모든 두려움과 공포 미움, 원망과 같은 감정들을 덮을 수 있던 것은 웃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아버지의 모습을 떠 올 리

게 되었다.


그리고 깨닫는다.

나의 수많은 부정적인 감정들로부터 나를 지켜주는 것은 대단한 그 무언가가 아니었다. 내가 가장 잘해왔던 것, 항상 내게 있던 그 미소, 웃음이었다.


​거머리의 공포는 지금 내게 트라우마가 될 수없다. 빚에 쪼들리며 생겼던 그 두려움과 미움, 원망도

지금은 평정심 얻고자 쌓아 올리는 성곽의 가장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