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벌레의 서랍

by 달그림자

17장 나로 산다는 것


내면의 성숙이 주는 평안함


세상에 두려울 것 없이 살았던 내가 위축되고 자신감이 사라졌던 것은 너무 아이러니하게도 남편과 결혼한 후였다.


남편은 결혼하고부터 모든 일을 그만두었다. 임신을 하고도 일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였다.

그래도 신혼이라 불만 없는 시간을 보냈다.


그런 시간이 지속되면서 둘째가 생겼을 땐 '그럴 리가 없다'라고 부인하는 말에 실망과 상처가 살 속으로 파고들어 온 듯한 아픔을 느끼게 했다. 그때부터였다.


"내일이면 괜찮을 거야" 하는 마음으로 보냈던 시간들은 점차 실망과 기대 없는 좌절로 물들었다.


"저런 사람이었어?"라는 의문이 "응 그런 사람이야"라고 인정되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엄마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한 탓에 내색 없이 지내다가 결국은 폭발을 하게 되었다.


너무나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보면 해주고 싶고, 해주어야 할 것들이 많았다. 그러나 현실은 그 마음을 담아내지 못했다.


점차 원망과 미움으로 옷을 만들어 입은 것처럼, 그 마음이 내가 되어 버린 것 같았다.


깊은 사랑만을 받으며 살아왔던 내 마음에 미움과 원망이라는 감정이 심어지기까지 참으로 혼란스러웠다.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과 남편을 향한 마음은 상극이었고, 그런 마음에 괴로웠다.


거기에 시어머니는 "남편이 못 벌면 너라도 나가 벌어라"하며 아이들을 데려가셨다.

이제 다섯 살과 세 살인 나의 아이들을...


보름정도의 시간이 흐른 뒤 남편을 다그치며 아이들을 데려오려 시댁으로 갔다.


그렇게 밝고 구김 없던 아들의 말과 행동이 달라졌다. 주눅들은 모습에 존칭과 억지로 눈물을 삼키고 있었다.

"엄마 저기 가서 버스 타면 우리 집에 갈 수 있는 거죠?" 그 말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 어린것이 그럴 생각이었구나. 너무 아찔했다. 당장 아이들을 데리고 버스와 전철을 번갈아 타며 집으로 도착했을 때, 이후 남편에 대한 나의 마음을 완전히 접었다.


무관심이 얼마나 무서운지 난 그때 알았다.


남편과 함께 살았던 10년, 그 후 남편의 경마 경륜에 의한 빚을 갚으며 10년, 그 20년을 미움으로 살았다.


아이들에게 내가 받았던 그 크고 넓은 사랑을 온전하게 나눠주지 못한 채 보내온 시간에 나는 마음이 병들고 몸도 병들어 갔다.


끝날 것 같지 않은 고통만이 나를 기다린다 여겼다. 두렵고 무서웠다. 이 상황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있는 힘껏 발버둥을 쳤다.


그런데 그 모든 원인은 남을 향한 '누구 때문에, 무엇 때문에'에 있지 않고, 오로지 내 안에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누구 때문에, 무엇 때문에'는 외부요인이라 여겼기에 좋아질 상황도 외부에서만 찾게 되었다. 그러면서 또 다른 상처로 엎친데 겹친 꼴이 되어 더 악화되고 있었다.


어느 순간 "행복하기 때문에 웃는 것이 아니라 웃기 때문에 행복하다"는 그 말로 모든 것을 뒤집어 생각하게 되었다.


'~때문에'가 '나로 인해'로 바뀌면서 모든 원인을 내게서 찾으니 바꿀 수 있는 방법도 쉽게 보였다.


'나로 인해 웃고 나로 인해 행복하게 만들 수 있어.' 내가 웃으면 아이들도 웃고, 주변이 모두가 웃게 된다는 것을 알았다.


굳어있던 얼굴은 어느새 펴지고 어긋났던 상황들도 점차 펴지기 시작했다.

어느새 '행복 바이러스'라는 별명도 얻으면서 실없을 만큼 웃었다.


회복전선에 들어오면서 깨닫는다. 더 늦지 않게 알게 된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그렇게 난 마음의 평온함을 찾아가고 있다.

가끔 또 불쑥 '~때문에'가 튀어나오면. 나에게 말한다. '네가 이렇게 하면 되잖아'라고ㅡ


이렇게 알을 깨고 나오듯 나를 깨우치게 해 줬던 남편이 이젠 밉지 않다. 나와 다른 세상으로 가벼렸지만, 이제라도 나의 무관심했던 그 마음을 사죄하고 싶다.

그리고 다시 사랑한다 말해주고 싶고, 미안하다 말해주고 싶다.


그렇게 나의 마음을 미운 5세 때처럼 내 위주로 돌려보내고 있다. 비록 완전하게 날갯짓을 하지는 못하지만 날개를 펴기까지는 할 수 있지 않을까?


나를 보며 나에게 해주는 말, " 넌 잘할 수 있어." 그리고 이 모습으로 세상에 고요히 합류한다. 이게 나로 사는 것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