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 : 시마 바라 항 터미널 → 지치부가우라 공원(1.5km) → 와렌가와(3.7km) → 화쇄류 최장 도달점(후카에 사쿠라 파크)(5.1km) → 길상 흰색 하늘 다리의 전망(6.0km) → 니타 제1공원(8.1km) → 효탄이케공원(10.5km)
규슈올레의 두 번째 코스는 하카타에서 기차로 갈 수 있는 아주 먼 곳으로 가기로 하였다. 우리에게 꽤 익숙한 지명인 나가사키현에 있는 시마바라 코스에 도전한다.
하카타역에서 미도리 하우스텐보스선을 타고 오늘 묵을 다케오 온센역으로 향한다. 일본의 기차 시스템은 매우 다양하고 촘촘히 연결되어 웬만한 곳을 빠르고 쾌적하게 이동할 수 있다.
여기에는 외국인 관광객에게 특전을 주는 jr 패스가 한몫한다.쾌속이어서 꽤 먼 거리인데도 1시간여 만에 도착한다.
짐을 락커에 보관시키고 다시 시마바라선으로 갈아탄다. 노란색 한 량짜리 귀여운 기차는 덜커덩 덜커덩거리며 바닷가 시골 마을을 천천히 달린다. 하교하는 학생도 타고, 장에 다녀오는 할머니, 할아버지, 출퇴근하는 젊은이들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기차를 탄다. 우리나라에는 추억으로만 있는 완행열차가 이곳 시골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이동 수단인 듯싶다. 나이 든 운전기사가 운전도 하고, 역에 설 때마다 내리는 사람들의 기차 요금을 직접 받는다. 당연히 카드 사용은 안 되고 오로지 동전으로 요금을 내고 거슬러 받는다. 요금을 내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급한 것 없고, 누구 한 사람 채근하는 이도 없다. 그저 조용히 자신에게 주어진 위치에 충실하다 못해 경건하기까지 하다.
< 시마바라역에서 한 컷 >
도착한 시마바라역은 바닷가 마을에 있는 역이다. 워낙 시골이라 아주 작은 마을을 상상했는데, 목포와 비교될 만큼 크고 번화한 모습에 깜짝 놀랐다.
올레길의 시작은 시내버스를 타고 시마바라항 터미널 역까지 가야 한다. 역에 있는 시작점에서 우리는 약간 흥분된 상태로 길을 나선다. 도로는 정사각형 모양으로 동서남북 어디나 통하게 되어 있고, 그 사이 사이에 마을이 들어서 있다.
조금 걷자니 시마바라 성의 모습이 보인다. 천수각 보수 공사 중이라 시내를 전망할 수 있는 5층은 들어가지 못하고, 4층까지의 전시실만 둘러본다. 한국 사람들이 많이 와서인지 전시물에 친절하게 한글로 설명이 되어 있다.
시마바라현은 일찍이 서양에서 천주교가 들어온 곳이고 이를 통해 서양 문물을 일찍 받아들이는 계기도 되었다. 그때 들어온 이가 사비에르 신부다. 영민을 물론 영주들도 영향을 받았고, 심지어는 1582년 4명의 청년을 로마로 파견하여 신부가 탄생하고 유럽에 일본을 알리기까지 하는 등 시마바라 반도 전체가 그리스도교 왕국과도 같았다고 한다. 그러나 ‘마쓰쿠라 시게마사’라는 새 영주는 혹독하게 그리스도교를 탄압했다. 1627년 경부터 신자들을 연행해와 펄펄 끓는 유황천인 온센천(지옥천)을 쏟아 신교를 버리도록 강요하였으며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가차없이 던져 버렸다고 한다. 그 후에도 모진 박해가 이어졌다. 또한 지역을 통치하는 마츠쿠라 시게마사(松倉重政)가 성을 개축하기 위해 막대한 세금을 거두어들이는 등 폭정이 계속되자 키리스탄들이 중심이 되어 반란을 일으킨다. 물론 섬 대부분이 참가한 반란이었으나 막부의 지원까지 받은 정부군에 의해 단 한 명도 살아남지 못한 슬픈 역사가 있는 곳이다. 조선은 박해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신앙을 지키고 뿌리를 깊게 내렸으나, 이곳 일본은 모진 탄압을 이기지 못하여 카쿠레 키리스탄이 되거나 교세가 점점 줄어들게 된 배경이 되었던 사건이다.
< 기독교를 전파한 사비에르 신부 >
3, 4층 전시실에는 생활상과 농기구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그중에는 현지인들의 사진들이 있었다. 마치 50년~60년대 우리들의 모습 같다. 동네 아이들과 청년들의 사진에서 삐딱하게 짝다리를 한 사람이 남편의 고등학교 시절 사진 같아 “당신 여기 있네.”하며 우울한 마음을 달래본다.
시마바라 성 관람에 많은 시간을 빼앗겨 올레를 걷는 시간이 빠듯하다. 급한 마음으로 길을 나선다. 항구에서 시작한 올레길은 바닷가 마을을 쭉 걷게 한다. 제주 올레길과 비슷한 분위기로 현무암의 너른 바위와 푸른 바다가 시원하게 펼쳐있다. 저 바다 너머 우리나라가 있을 것 같아 멀리 타국에 온 느낌이 들지 않는다. 바닷가 마을의 풍경은 어디나 비슷하다. 움푹 들어와 있는 갯벌 쪽으로 흰색의 고기잡이배들이 정박해 있고, 방파제로 둘러쳐진 안쪽으로 지붕이 낮은 집들이 들어서 있다.
열살 쯤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들 세 명이 방파제에서 공놀이하고 있다가 지나가는 우리를 보고 경쾌한 목소리로 “곤니치와”한다. 그 순간을 놓칠 수 없는 남편은 함께 사진을 찍자고 한다. 익숙한 듯 자연스럽게 포즈를 취하는 아이들과 함박웃음을 웃는 한국 할아버지가 렌즈 안으로 들어온다. 바다와 해맑은 아이들의 미소, 그리고 저물어 가는 석양의 붉은 빛이 어우러지는 멋진 시간이다.
시마바라 코스는 일본에서 가장 최근 형성된 ‘헤이세이신산’을 감상하며 걷는 ‘지오파크(화산)테마 코스이다. 이곳 운젠 화산은 1991년 6월 3일 용암과 화산재를 분출하며 격렬하게 폭발했고, 이 사태로 1백여 명이 사상하는 피해가 발생한 곳이라 한다. 1792년 대폭발로 1만 5천여 명을 숨지게 한 일본의 대표적인 활화산으로 1백 99년 만에 다시 폭발하여 인명피해를 불러일으켰던 곳이다.
그러나 그러한 아픔에도 불구하고 마을의 집들도 그렇고, 계획된 듯한 도로 어디에서도 그 모습을 찾아볼 수는 없었다. 다만 마유산 붕괴로 형성된 섬, 그리고 거무튀튀한 흙, 용암이 지나간 길의 흔적으로 남은 깊은 골짜기, 산 정상의 알 수 없는 흰 연기 등으로 상상만 해볼 뿐이다.
바다를 돌아 마을로 들어서니 와렌가와강이 길게 펼쳐있고, 석양을 받으며 노인 두 분이 산책하고 있다. 어디든 시골 마을을 지키는 것은 노인들 뿐이다. 갓쇼시라텐 다리를 건너 마을 안으로 들어가니 밭에서 푸성귀를 뽑고 있는 할머니와 농기구를 손질하는 할아버지가 친절한 미소를 보낸다. 마을 옆길에 있는 올레 표시를 따라 올라가는데 동네 노인들이 모여 담소를 나누다 우리를 보고 걱정스러운 눈길과 말을 건넨다. 그때는 그 의미를 몰랐다.
석양이 더 기울여 저녁으로 향하고 있는데 마을 길이 갑자기 산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가파른 산길을 오르니 대나무 지팡이를 넣어둔 바구니와 멧돼지를 주의하라는 문구, 커다란 쇠통, 방망이가 놓여 있다. 힘껏 멧돼지 쫓는 통을 두드리고 ’걸음아 날 살려라‘하는 심정으로 뛰다시피 올라간다. 우거진 나무로 주변은 점점 어두워지고 산골짜기는 끝도 없이 깊어진다. 땀은 비가 오듯 쏟아지는데 등골은 서늘하다 못해 공포까지 몰려온다. 어찌나 무서운지 가파른 산을 뛰다시피 내려오니 숲의 끝이 보이고 마을이 나타난다. 이제는 거의 다 왔겠거니 했는데, 웬걸 마을을 벗어나니 또 산자락으로 리본이 매달려 있다. 가고 싶지 않지만, 어쩌랴…. 끝까지 갈 수밖에…. 그렇게 빠져나오면 마을, 그리고 다시 큰 길이 아닌 다시 숲속 길이 반복된다. 의미가 느껴진다기보다 그저 올레의 거리를 맞추려 억지로 길을 돌아가게 하려는 것인지 모른다는 생각에 스트레스가 몰려온다.
그러나 가만 생각해보니 이 길도 낮에 걸었다면 오히려 마을로 난 아스팔트 길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걷는 사람에게 좋은 길일 것이다.
어떤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 같은 상황도 전혀 다른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 것인데, 내 형편대로 섣불리 생각하고 판단하였으니 괜히 부끄러운 마음이 든다.
일부러 돌아가게 하기 위함이 아니라 걷는 자를 위한 세심한 배려일 것이다.
그렇게 몇 구비 마을과 마을 산자락 길을 돌아 나오니 오늘의 끝 지점 효탄이케 공원이 보인다.
이 공원은 1792년 마유산이 크게 무너졌을 때 흙과 모레가 만들어 낸 작은 산(나가레야마)위에 만들어져 있고, 표면의 굴곡으로 연못까지 만들어진 곳이라 한다. 오늘은 온종일 운젠다케산의 활발한 화산활동으로 생겨난 공원, 강, 그리고 지금도 마그마가 분화구 위로 솟아오르며 생긴 용암동을 멀리서 조망하며 걸었다.
인간이 만든 뛰어난 과학기술과 문명도 대재앙 앞에서는 속수무책일 것이다. 결국 자연을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그 질서에 순응하며 조화를 이루어 살아가야 한다는 진리를 새삼 되새기게 된다.
돌아오는 길…. 밖은 깜깜하고 시마바라 바다의 검푸른 파도가 완행열차의 차창에 어른거린다. 나도 모르게 덜컹거리는 창문에 머리를 기대고 까무룩 잠이 든다…. 고요한 정적이 흐르는 철길 위로 이따금 열차의 기적소리만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