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규슈 올레도 후반전에 돌입한다.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두려움으로 여러 번 망설이고 포기하기를 반복하다 용기를 낸 도전이었다. ‘시작이 반’이라는 속담대로 어느새 열여덟 개 길 중 열네 번째 길을 걷는 날이다.
아마쿠사 제도의 섬마을을 나와 구마모토에서 하루를 쉬며 재장전을 한 후라 몸과 마음이 한결 상쾌하다. 아침 7시 35분 신칸센을 타고 우리는 이즈미역으로 간다. 이곳에서 다시 버스를 타고 올레 시작점으로 이동을 하여야 한다. 그런데, 이즈미역의 코인 보관함에 짐을 맡기고 지역 버스를 타기 위해 정류장으로 갔으나 안내 표시가 어디에도 없다. 주변을 이리저리 헤매다 버스표를 파는 곳을 찾아 문의하니 7시 35분에 이미 첫차가 떠났다고 한다. 설상가상으로 다음 차는 11시 35분에나 온다고 한다. 걸어가기에는 너무 먼 거리인 데다 무작정 두 시간을 기다리기는 것도 무리다. 난감한 상황이다. 매번 철저하게 준비한다고 하면서도 갈아타는 로컬 버스 시간을 놓치는 실수를 반복하고 만 것이다.
하는 수 없이 우리는 택시를 타기로 했다. 하얀색 벨벳 시트가 씌워진 올드카에 연세 지긋한 운전기사님이 우리를 이즈미 코스의 시작점인 가미오카와우치(上大川町)에 내려주셨다.
우왕좌왕했던 마음을 다스리고 마을의 초입에 있는 ‘이츠쿠시마 신사’에서 스탬프를 찍고 힘차게 발걸음을 내딛는다.
이츠쿠시마 신사(厳島神社)는 1573년에 창건되었다. 차갑고 아름다운 물을 제공해 주고 농사를 지켜주는 지역의 수호신을 모신 신사다. 이즈미는 한자로 출수(出水), 물이 많은 동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또한 세계적으로 희귀한 흑두루미가 매년 10월 중순부터 12월경에 걸쳐 시베리아로부터 날아와 월동하는 곳이다. 새들이 우아하게 날개를 펼치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모습이 압권이다. 겨울철에 이즈미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으로 유명하다.
규슈 올레를 걸으며 인상 깊었던 것은 마을 어디나 산이 있고, 그곳에는 하늘을 찌를 듯한 삼나무와 대나무가 빽빽하게 심어진 모습이었다. 고즈넉하고 낮은 기와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전형적인 일본의 시골풍인 이 마을도 키가 큰 삼나무와 대나무 군락이 초록의 원시림으로 둘러싸여 있다. 그 마을의 고샅길과 숲길을 따라 올레길을 조성해 두었다.
숲길을 벗어나 잠시 차도를 따라 걷기도 하고, 때로는 넓은 임도를 걷기도 하는데, 어디에나 길가로는 크고 작은 시내(川)가 이어지며 맑은 물이 우렁차게 흐른다. 지명인 이즈미(出水) 다운 자연 풍광에 속이 다 시원해진다.
건널목을 건너니 옛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시골 학교가 하나 나온다. 오카와우치 초등학교다. 왠지 먼 과거로의 시간 여행을 온 느낌을 받는다. 운동장에는 저학년으로 보이는 이십여 명의 어린이들이 줄을 맞추어 방재훈련을 진지하게 받고 있다. 한국보다 먼저 초고령 사회를 겪고 있는 일본은 어딜 가나 노인들 천지였다. 규슈 올레의 시골길에서는 더더욱 어린아이들을 보기 어려웠는데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 신선한 광경이다. 잠시 넋을 잃고 철조망 너머로 고개를 들이밀고 구경 삼매경에 빠진다.
학교를 지나 길은 다시 시원스럽게 흐르는 강 옆의 논둑길로 이어진다. 올레 표시가 되어 있는 길을 따라 걸어야 하는데 철조망으로 사방을 막아 진입을 할 수가 없다. 풍미 좋은 쌀농사를 보호하기 위하여 설치된 것인가? 이런 짐작을 해 보지만 올레꾼에게는 야박하다 싶은 생각이 든다. 다시 온 길을 되짚어 나와 논길 위로 난 차로를 걷는다. 차가 휙휙 다니는 도로 옆길은 같은 거리라도 왠지 멀고 지루하게 느껴진다.
얼마나 걸었을까? 고메노쓰강(米之津川)을 따라 형성된 무논 지대를 지난다. 물만 대어 놓은 겨울 논에 벼 그루터기들이 삐죽이 서 있는 모습에서 한동안 잊었던 어린 시절 기억이 떠오른다. 오십오 년쯤 된 옛날이야기다. 먹을 것이 귀했던 시절, 추수가 끝나고 나면 할머니 손에 이끌려 논바닥에 떨어진 낟알들을 주우러 가곤 했다. 허리를 최대한 낮춘 채 고개를 박으며 벼 이삭을 줍다 보면 구멍이 보인다. 진흙 구멍에 손가락을 깊숙이 넣어보면 딱딱한 우렁이의 등껍질이 손에 잡힌다. 낟알이 바구니에 수북하게 쌓이고 덤으로 잡은 우렁이를 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미소 지으시던 할머니와 어린 나의 모습이 떠오르다니 참 신기한 일이다. 길을 걷다 보면 눈앞에 펼쳐지는 광경 속으로 과거의 기억이 묘하게 되살아나는 체험을 할 때가 있다. 내 몸에서 분리된 어떤 기운이 영사막을 펼치고 과거의 기억들을 불러내는 것이다.
바람에 실려 온 숲의 향기에 정신이 번쩍 들어 앞을 본다. 널찍한 임도 아래로 폭이 넓고 길게 이어진 고가와댐 호수 (高川水库湖)가 보인다. 사람의 흔적이 없는 호수는 조용하고 천연의 원시림 같다. 조심스레 걷는데, 철새들이 후다닥 일제히 하늘로 날아오른다.
“쏙쏙, 쌕쌕, 까르륵, 낏낏…….”
엄마를 부르는 새끼 새들의 부산한 쫑알거림, 관능적이고 가느다란 구애의 속삭임, 신경질적으로 자신의 세를 과시하는 우렁찬 울음소리들이 숲과 호수에 가득하다.
고요하던 숲과 호수가 불청객 두 사람 때문에 장날 시장터처럼 시끌벅적하다. 장터의 소란은 이내 호수와 숲이 연주하는 오케스트라 화음으로 변한다. 잠들었던 서사가 고요하게 때론 경쾌하게 호수와 숲에 멋진 선율로 울려 퍼진다.
또 풍경은 어떤가? 넓고 긴 호수를 둘러싸고 있는 벚나무와 은행나무들이 나르시스가 되어 물속에 자기 몸뚱이를 담근 채 석양에 반사되고 있다. 그 풍경은 황홀하다 못해 짐짓 경건하기까지 하다. 삼십여 년간 사람들에게 잊혔던 전설 속의 정령들이 깨어나 고가와댐 호수 (高川水库湖) 길을 걷는 낯선 방문객들에게 반갑게 알은체를 하는 듯하다.
길은 다시 강물 위로 난 산악산책로로 이어진다. 작은 폭포가 흘러내리는 골짜기가 나오고 그 위로 가파르게 오르는 길이 이어진다. 길 아래 비탈과 절벽 아래로는 빽빽이 들어선 나무들 사이로 시퍼런 강물이 언뜻언뜻 눈에 비친다. 이즈미 올레의 클라이맥스 단계일 거라는 생각을 하며 젖 먹던 힘까지 짜내어 오른다. 다행스럽게도 급경사 오르막에 줄을 매고 난간이 설치되어 있어 도움을 받는다. 오랫동안 걷는 이가 없어 방치되었던 옛길을 찾아내어 과거를 현재로 이어준 규슈 올레 이즈미의 길잡이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든다. 그들의 정성에 감동되어 힘든 줄도 모르고 한 발 한 발 오르다 보니 어느덧 내리막길이다. 내려가는 길도 가파르지만, 계단을 튼튼히 만들어 놓아 안정적으로 걸을 수 있다.
가파른 길과 시원한 강물 그리고 마을이 반복되는 풍경에 빠져 정신없이 걷다 보니 산허리를 빙 둘러 서 있는 오만구(五萬溝)라는 수로와 이를 기념하기 위해 세워놓은 준공비에 다다른다.
‘오만구 수로(五万石沟遗迹)’는 오노하라 개간지의 용수로를 확보하기 위해 30년에 걸친 공사 끝에 1734년에 완성되어 1977년까지 40여 년간 사용되었다고 한다. 길이가 20km나 될 만큼 규모가 큰 수로였고, 5만 석 수확의 염원을 담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드디어 오늘 길의 종착지인 ‘이즈미 후모토 역사관(出水麓武家屋敷群)’에 도착한다. 이곳은 무사들이 모여 살았던 마을을 보존하고 꾸며 만든 역사 문화 마을이다. 가지런한 돌담 사이로 오랜 세월의 무게가 느껴지는 기와집들이 늘어서 있다. 마치 우리나라의 양동마을 같은 풍경이다. 그중에서 4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다케조에 무사저택>을 찾아 들어간다. 80세가 넘은 할머니 도슨트가 조용히 일어나 우리에게 다가오신다. 반갑게 인사를 하시더니 집안의 구석구석을 안내하신다. 일어로 조곤조곤하게 설명하시는 모습은 겸손한 듯하면서도 자부심이 넘치신다. 마당과 연결된 무사의 다다미방에 이르러서는 우리 둘에게 “うらやましい(부럽다)”고 하시며 사진을 찍어 주겠다고 하신다. 이런저런 포즈를 취하라고 주문하며 여러 장의 사진을 찍어주며 두 손을 꽉 잡는다. 왠지 뭉클해지는 순간이다.
새벽부터 서두른 탓에 올레 최장코스인 13.8km를 끝낼 수 있었다. 역사 안에 있는 ‘코알라 식당’에서 우엉 정식과 돈가스 정식으로 뒤늦은 점심식사를 한다. 역사 안에 있는 음식점인데도 깔끔하고 맛도 있어 기분이 좋다.
오늘은 시작이 매끄럽지는 않았지만, 전체적으로 시간 안배를 매우 잘한 탓에 예상보다 훨씬 만족도가 높은 길이였다.
길을 걷다 보면 어떤 이유나 사연도 잘 알아보지 않고 눈에 당장 보이는 길의 관리 상태나 교통편에 따라 주관적으로 평가하게 된다. 그러나 길이란 그 길에 기대어 살아온 사람들의 이해관계 차이에 따라 일부 구간이 폐쇄되기도 하고, 경로를 변경하기도 할 것이다. 길을 낼 때도 길 위의 사람들이 모두 같은 생각과 의지로 길을 낸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니 길을 내는 긴 과정에서 규슈 올레 어느 길 치고 어찌 여러 사연이 없었겠는가? 그럼에도 규슈의 관광기구와 지역의 마을 사람들이 머리를 맞대고 의지와 열정으로 길을 내고 관리하며 오늘에 이르렀을 것이다. 새삼 걷고 있는 길과 앞으로 만나게 될 길에 대해 숙연한 마음까지 든다.
더욱이 오늘처럼 길을 걷는데 소설의 플롯처럼 적절하게 발단과 전개 그리고 클라이맥스까지 주어진다면 더욱 그 감동과 여운은 오래도록 기억에 깊이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