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맑아 가슴이 저밉니다

by 사jang

태풍이라더니 밤새 비가 내리고는 그친 뒤 하늘이 맑습니다. 가슴이 저밀 정도로 하늘이 맑습니다. 울컥 올라오는 뜨거움에 주책스레 눈물까지 고입니다.


감성적이기 말기로. 감성에 충실하지 말기로. 감정에 복받쳐 글을 쏟아내는 일은 안 하기로 다짐했었습니다. 감정에 취해 그 아픔의 취기로 쏟아냈던 글로 보기 좋게 브런치 작가 신청에 낙방한 후 official 은 어디까지나 official로 대처해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가르침을 준 터였습니다. 패션 사업할 때도 개취(개인의 취향)로는 사업에 성공할 수 없음을 깨달았고,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내 감정에 충실해 아무리 혼신의 힘을 대해 나 자신을 대변해봐야 듣는 사람은 아무런 감정의 전이도 느끼지 못한 채 버려진 담배꽁초를 짓밦듯 밟힌 기억이 있었기에, 감정은 드러내지 않는 것이 프로페셔널한 거라고 스스로에게 말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만은 아마추어이고 싶습니다.


유튜브에 영상을 업로드한 후 짧은 이 메일을 받았습니다. 응원한다는 메시지였습니다. 생면부지의 구독자 분과 나눈 몇 개의 댓글과 이 메일에 울컥한다는 것이 스스로 민망하기도 하고 주책스럽기도 했지만 어쩌면 그분은 내가 가장 목말라했던 부분을 감히 건드리셨던 것 같습니다. 초면에 막 실례를 범하면서 브런치에 그분의 댓글을 통째로 옮겨 도용하고 브런치 글도 이 메일로 보냈습니다. 왠지 나의 무례함에도 너그러이 기뻐해 줄 것 같아서였습니다. 그리고는 또 짧은 메일을 받았습니다. 그리고는 얼마 후 구독과 함께 라이킷 알림이 주르륵 떴습니다. 좋아요 수로 증명되어야만 하는 세상이 언제나 부대끼는 나는 인스타에서도 좋아요 수를 숨겨야만 마음이 편해지는 밴댕이 속 알 딱지 인간입니다. 그럼에도 그분의 라이킷 알람은 유튜브에 그분이 남기신 댓글이 그러하듯, 숫자로써 환산할 수 없는 나를 옳아 매고 있는 닷을 끊어버리는 듯한 어떠한 힘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아마 한 인간에 대한 진심 어린 “지지” 였던 것 같습니다.


집을 나서면서 태양빛을 그대로 발산하는 맑은 하늘을 보면서 뉴질랜드의 하늘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인생의 막다른 골목과 같은 막막함을 마주하며 친정엄마와 두 아이들을 데리고 한 달 반 가량 뉴질랜드를 여행하며 보았던 그 하늘이었습니다.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소리에도 그 청명한 하늘을 보고있음에도 시도때도없이 눈물이 죽루룩 흐르던 때였습니다. 세상에서 자연이 주는 모든 축복을 모두 누리는듯한 자연환경을 가진 뉴질랜드였지만, 그 역사는 잔인함과 쓰디씀과 고통의 화석을 가진 나라. 저 역시 많은 혜택을 누리며 온실 안 화초로 자라 온 인생이었지만 어느 순간 나를 보았을 때는 유리로 둘러싸인 건물에 갇혀 버둥되는 한 마리의 새와 같은 존재였습니다. 어찌 이 유리 건물로 날아들어왔는지 알지 못한 채 나가기 위해 버둥되다 유리에 부딪쳐 날개가 찢어지고 피 가흐르고 작은 뼈마디들이 골절되고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작은 새. 그러한 내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 나는 너무 아팠습니다. 밖엔 하늘이 보이는데 나는 바람을 느낄 수도, 날수도, 가고 싶은 곳으로 갈 수도 없었습니다. 이곳을 벗어나고 싶은데 더 이상 날갯짓을 할 힘조차 낼 수 없는 상태, 깃털이 피에 뭉쳐져 날개를 펼 수도 없는 상태였습니다.


겨우 가뿐 숨이 잦아들 정도로 회복되었을 때 나는 또다시 무모한 날갯짓을 시작했습니다. 내가 이 유리 건물로 우연히 날아들어왔다면 다시 나갈 창문이 어딘가엔 존재하리라는 막연한 희망을 안고.


힘겨운 날갯짓에 버둥되며 입이 타들어갈 때 누군가 물 한 방울을 내 주둥이에 떨어뜨려주었습니다. 그래서 다시금 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맑은 하늘에 가슴이 저며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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