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질의 역사 2

고난의 행군

by 사jang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

-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어쩌다 시작된 사업으로 겪은 고난의 행군을 한 문장으로 표현한다면?


말해 뭐해!


가슴 아픈 과거사를 망각의 주머니에서 꺼내려니 스트레스 주의령이 떨어진다. 스트레스 방지턱으로 이 대목은 제 3자의 시점으로 서술하겠다.


디자이너 브랜드란 생산, 유통, 마케팅의 세 축으로 돌아간다. 생산을 돌린 후 모델을 섭외해 룩 북을 찍어야 하고 사이트가 구축되어야 하고, 온 오프 매장이 있어야 한다. 시즌 생산이니 만큼 여름 시즌을 준비한다면 여름이 오기 전에 판매 준비가 끝나야 한다. 그리고 사업에 있어 가장 큰 비중은 마케팅이다. 팔아야 할 것 아닌가. 누구한테 어떻게 팔 것인지 파이프 라인이 전혀 만들어 있지 않으면 혼자 고비 사막을 헤매며 로스앤젤레스 시민 여러분에게 내 옷을 사달라고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는 것과 같다.


결과는? 뻔하다. 목이 터져 피가 나고 옷은 사막의 모랫바람에 묻혀 신상을 뽐내던 자취를 잃어버리고 울음보만 터져 나와 오아시스 웅덩이를 만들 것이다. 사jang의 꼴이 딱 그러했다. 여름 시즌은 이미 시작됐고 생산은 아직? 미쳐? 완료되지 않았고, 뒤늦게 받아 방 하나를 가득 채운 옷 박스들은 그야말로 숨통을 죄는 올가미가 되었다. 이때부터는 소화불량 급이 아니다. 위경련, 위궤양, 십이지장궤양, 급성 위염, 심하면 위장암이 발생할 수도 있는 하이퍼 리얼리티 질병급이다. 사jang은 매일매일 울며 겨자를 먹었다고 한다. 그래도 낙천적인 그녀의 성향?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뇌에 깊숙이 프로그래밍된 근자감급 믿음으로 인해 링 위에서 얻어 떠질 만큼 얻어터지고 1라운드를 마쳤다. 땡땡땡.


곧 2라운드가 시작된다. 어떻게 할 것인가? 버틸 것인가? 올라가면 또 얻어터질 텐데 그러고도 또 버텨낼 수 있을까? 역시 사람은 맞아야 정신을 차린다. 맞기 전엔 계란으로 바위 치기, 맨땅에 헤딩하기 식의 문구가 영웅적으로 보이지만 맞고 나면 사람의 무모함은 질병이라는 걸 뒤늦게 깨닫는다. 어떡하지? 사jang은 머리를 굴린다. 여기서 내빼야 하는데 영 모양새가 좋지 않다. 1라운드 만에 자진 퇴장이라니 이 웬 명예에 먹칠하는 짓인가? 이럴 때 필요한 건 명분! 명분이 필요하다. 사jang의 개인사로는 가슴 아픈 일이지만 명분이 생겼다. 그녀의 둘째 딸이 오래도록 앓고 있던 아토피가 온몸으로 퍼져나가면서 악성 아토피가 돼버린 상황이 발생했다. 매일매일 몸에서 진물이 흐르고 피가 나고 살은 다 벗겨지고, 남편과 교대로 거의 뜬눈으로 간호를 하며 아이 옆을 지새우길 밥 먹듯이 했다. 아토피가 극성을 부린 시기는 2년 이상 지속됐다. 사실 명분이랄 것도 없이 자연스레 사업을 접었다.


그 와중에서도 끈질긴 꿈에 대한 욕망은 그녀를 드레스 제작하는 일로 계속 고문을 시켰으니…

명색이 음악가 아니었나, 무대 위 드레스에 대한 로망 또한 오래된 것이었으니 이 전 글에서 스킵했던 에피소드들, 드레스 전문 패턴 학원에 다니고, 웨딩샵에 들어가 직접 드레스 만드는 거 배우던 열정을 되살려 그녀는 대량생산이 아닌 드레스 맞춤 제작으로 눈을 돌린다. 그러나 아토피의 역공은 쉬지 않고 기세를 더했고 사jang 은 사업이고, 드레스 제작이고, 나발이고 두 손 두 발 다 들고 항복했다.


아토피와의 전쟁은 사jang의 욕망을 거세해버렸다. 이제 그녀는 더 이상을 꿈꾸지 않는 자로 살기로 했다. 꿈, 그렇게 허망한 게 또 있을까. 그녀에게 꿈을 좇는다는 건, 에너지 탕진, 돈 탕진, 정신의 피폐함을 의미했다. 이제야 그녀는 철이 든 걸까? 그녀는 결론을 내렸다. ‘넌 아무것도 안 하는 게 돈 버는 길이야. 제발 일 벌이지 마. 아무것도 하지 말고 조용히 가만히 지내라고’


그 후 사jang 은 철이 들었을까? 대답은 응, 아니요.


아토피와의 전쟁은 다행히 서울대 병원을 1년 가까이 다니면서 소강상태에 이르렀고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것이 있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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