얻어터지고도 또?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 속담
돈이 없다. 더 이상 삽질에 쓸 여유자금이 없을뿐더러, 시간 에너지를 탕진한 건 타박상이지만 돈 탕진은 골절이다. 링 위에 올라가는 건 둘째치고 링 근처에도 얼씬거리지 말 것을 명령했건만 타박상이 나을 즈음 또 스멀스멀 링 생각이 난다.
도대체 이 놈의 뇌에 입력된 프로그래밍이 뭐길래 사 jang 은 그렇게 얻어터지고도 링 위에 올라가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걸까? 유추해보건대 어려서부터 세뇌되어온 프로그래밍 ‘꿈을 크게 가져라’, ‘넌 크게 될 인물이다’, ‘니 태몽은 보통 태몽이 아니야. 넌 꼭 대기만성할 거야’ 등등인 것 같다. 죄다 마미가 내게 입력해준 입력값이다. 게다가 마미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다. 그 믿음이라는 것의 무서운 위력은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내가 만들어낸 결과물들이 찐따 같아서 너무 괴로울 때도 마미의 믿음은 흔들림이 없다. 실로 부담백배, 그 믿음으로부터 도망가고 싶은 심정이다. 나는 그럴만한 그릇이 아니라고요. 나도 40대라고요. 이제 좀 헛된 꿈은 좀 버리세요. 그런데 어쩌면 내 마음이 나이 드신 할머니가 된 마미의 옛 말들을 끝끝내 붙잡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사람의 마음은 이렇게 간사하다.
그래서 대체 사jang의 꿈이 뭔데? 밑도 끝도 없다. 그냥 성공하는 거다. 돈, 명예? 아 진짜 없어 보인다. 속물 아냐? 아마 맞을 거다. 솔직히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그런데 속마음에게 백번을 물어보면 그 마음이 없다고는 말 못 한다. 그렇지만 그 보다 큰 게 있긴 하다. 세상에 증명하고 싶은 거다. 나란 사람을. 그럼 인정받고 싶은 거네. 맞다. 난 세상에서 인정받고 싶다. 내가 뭐든 목표로 했던걸 이뤄보고 싶은 거다. 항상 그것에 목말라 있었으니까. 한 번도 내가 목표로 했던걸 제대로 이뤄낸 적이 없다는 것에 대한 존심상함. 난 그걸 극복하고 싶다. 세상에 모든 포도가 다 신포도 인게 너무 싫다. 여우와 신포도에 나오는 여우가 되고 싶지 않다. 그러기 위해 포도를 먹어보는 게 내 목표다. 그게 내가 바라는 성공이다. 포도가 신지 매운지 단지 떪은지 쓴 지 새콤한지 직접 먹어보는 게 목표다.
어찌 되었든, 링에 올라가도 골절은 입지 말아야겠다 생각했다. 꿈을 위해 도전하는 건 좋은데, 더 이상 돈 탕진은 말자. 그렇게 눈을 돌린 것이 있었으니 “창업”.
자수성가 성공기가 가득 담긴 책을 골라 읽고, 우리나라 창업의 대부라는 권도균 씨를 반드시 만나야겠다는 뜬금없는 생각에 또 꽂혔다. 그래서 창업아이템은 뭔데?
사jang 이 링 위에서 얻어터지면서 드는 생각은 제조업은 돈을 벌기 힘든 구조라는 거였다. 내가 세상에서 젤 멋진 옷을 만들었다 치자. 시장의 반응은? 없을 무.
이미 산업사회는 포화기를 지났다. 물질이 넘쳐나 처치 곤란의 시대이다. 선택을 하는 것 자체가 일이 된 세상에 내가 아주 좋은 걸 만들었어요~ 해봤자 씨알도 안 먹힌다. 상품은 가성비가 아주 떨어지거나 가성비가 아주 좋거나 둘 중 하나여야 팔린다. 가성비가 아주 떨어지는 상품이 명품이다. 대신 가심비가 높기 때문에 사람들은 목을 맨다. 이젠 상품은 성능이 아닌 심리적 만족을 줘야 팔리기 때문이다.
내가 명품을 만드는 디자이너가 되려면 이번 생은 글렀다. 그러니 디자이너의 꿈은 통과. 그리고 제조업은 재고가 문제다. 내가 디자인을 열개를 만든다 치자. 그중 잘 팔리는 건 세네 개다. 그럼 나머진 재고다. 잘 팔리는 건 없어서 못 팔고 안 팔리는 건 떨이로 팔려해도 경비도 안 나온다. 중국 제품과의 가격경쟁에서 처음부터 밀리는 건 말할 것도 없다. 어쨌든 저쨌든 사jang 의 머리론 제품을 만들어서 판다는 건 답이 안 나온다. 그런데도 디자인이 좋은 걸 어떡하나. 그럼 혼자 만들어 입어야지 모. 그런데 이젠 혼자 만들어 입기도 시간, 경비가 부족하다. 그래서 자라에서 옷을 사서 패치를 닥지닥지 붙이고 다녔다. 내가 봐도 옷이 너무 이쁜데, 보는 사람마다 이쁘다고 한다. 내가 리폼한 거라 하니 자기들도 만들어 달란다. 사jang 의 머릿속에 삐용삐용~ 경고음이 들려오기 시작한다. 말려들지 마라. 말려들지 마. 그래 봤자 만들어놓으면 비용도 안 나온다. 너 경험해봤잖아. 말려들지 마!!!
사jang은 현명하고 싶다. 그렇지만 이성의 소리는 감정의 행동력을 막지 못한다. 그녀는 그날로 동대문에 패치를 사러 간다. 그런데 이성의 소리도 못 말리는 사jang을 시장이 말려준다. 패치는 대량으로 밖에 판매가 안된단다.(여기는 동대문 종합시장이 아닌 동화시장이다. 동화시장은 물건도 다르고 소매판매는 안 한다) 그리고 생산할 거 아니면 샘플 판매 안 한단다. 패치는 하나당 최소 100개씩 안 가져가면 절대 안 판단다. 동대문 시장 사장님들은 사정 같은 거 잘 안 통한다. 나 같은 피라미가 와서 슬픈 표정을 짓든 비굴 모드로 나가든, 매장 앞을 서성이며 시간 끌기 작전으로 나가든 네버 마인드다. 결국 동대문 사장님 승. 하는 수 없이 생산 돌릴 거라 뻥치고 패치 몇 종을 뭉텅이로 안고 동화시장을 나선다. 뭉텅이는 작은데 지갑이 허하다. 동대문은 현금결제다.
밤 낮 없이 머리가 돌아간다. 온갖 잡다한 아이이어들이 쏟아져 나온다. 어떤 게 쓰레기고 어떤 게 물건인지 알 수 없는.
자자 생각을 좀 해보자. 니가 하려는 게 도대체 뭐지? 스타트업. 그게 뭔데? 창업이라고 요즘은 나라에서 지원도 많이 하고, 스타트업 인큐베이터라고 창업자를 키우는데도 많대. 왜 요즘 잘 나가는 마켓 컬리. 당근 마켓. 아이디어스. 배달의 민족. 그런데가 다 창업해서 성공한 데야. 모두 인터넷 플랫폼이지.
그래서 니가 그런 걸 하겠다고? 노노노. 내가 그런 거물급은 안되고 어쨌든 창업이란 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거야. 그러니까 사업계획서를 써서 합격을 하면 창업지원도 받고 여러 가지 도움을 받을 수 있대.
그래서 사jang은 열심히 사업계획서를 작성해서 창업 지원해주는 곳을 뒤지다가 카이스트에서 하는 지원사업에 응모를 했다. 덕분에 대전까지 내려가서 프레젠테이션을 덜덜 떨면서 하고 며칠 후 연락이 왔건만… 합격은 했는데 교육이 대전에서 있단다. 그 전 해까지는 판교에서 교육이 있었다고 들었는데 그 해부터는 대전 카이스트에서 진행한단다. 사업비도 지원을 해준다는데 일주일에 한 번씩 5시간 걸려 대전으로 왔다 갔다 그게 가능한 일일까? 사jang은 눈물을 머금고 제안을 드롭시켰다.
그래도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권도균 씨는 만나야 해. 그녀는 권도균 씨가 대표로 있는 스타트업 인큐베이터 ‘프라이머’에서 주최하는 데모데이에 참가한다. 그리고 위대한 창업자들의 스토리에 가슴 떨려하지만 권도균 씨는 멀리서만 봤다. 목표는 단 한마디라도 해보는 건데. 몇 천명이 모인 데모데이에서는 언감생심이다. 후에 소규모 모임에 지원해서 드디어 스타트업의 대부 시라는 권도균 씨를 가까이서 보았다. 마지막 큐앤에이 때 잘나신 분들이 쏼라쏼라 멋진 퀘스챤과 토킹들을 하시는 바람에 얼어서 손도 못 들었다. 그리고 모임이 끝난 후 그분께 다가가 나의 사업계획에 대해 공손하게 몇 마디 올렸다. 그분이 말씀하셨다. “우선 해보시고 수익이 나는지 한번 보세요.” 그렇다. 이 세계는 말이 필요 없는 세계였다. 수익이 나야 하는 세계였던 것이다.
그렇게 온, 오프로 사업을 진행시킬 구상을 열심히 하던 와중 코로나가 터졌다. 나의 망상들은 코로나와 함께 자진 자취를 감추었다. 여기까지가 나의 허무맹랑한 과거 삽질 스토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