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칠한 남편과 털털한 마누라가 사는 법

나를 먼저 돌아보기

by 마리혜

비가 오고 며칠 뒤였다. 흙 범벅이 된 등산화가 볼썽사나웠다. 약초라고는 캐본 일이 없는 이가 노련한 약초꾼을 따라나선 지 세 시간 만에 나타났다. 질퍽한 산속을 헤맸는지 등산화가 온통 흙으로 칠갑했다. 꾸지뽕, 우슬과 이름을 모르는 약초 등. 초보 약초꾼 치고 꽤 많은 양이었다.


약초를 모르지만 관심이 많았던 남편은 마침내 노련한 약초꾼을 만났다. 탁구 동호회 신입 회원 중에 약초 채취가 취미인 회원과 급속도로 친해지더니 이번에 따라나서게 되었다. 약초 스승과 제자, 완전 딱 맞는 친구를 만난 셈이다.


남편은 칭찬을 기대하는지 은근히 목소리 높여 자랑을 늘어놓고 있었다. 내가 봐도 신기했다. 약초를 캐본 일이 없는 사람이 어찌 알고 이 많은 양을 캤을까 싶었다. 초보 약초꾼은 본인이 채취해 놓고도 약초 이름은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모르면 독약이나 마찬가지인데 그걸 어떻게 믿어?” 고개를 갸우뚱하며 의심쩍게 한 마디 툭 던져보았다. 남편은 눈을 크게 뜨고 펄쩍 뛴다. 같이 간 노련한 약초꾼이 알려 준 대로 일일이 확인하고 채취했으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한다.


관절에 좋다고 하는 우슬이 가장 많았다. 퇴행성 관절로 무릎 통증으로 고생하고 있는 남편은 평소 우슬 약초에 관심이 무척 많았다. 약초에 관해서는 지식이 없고 실제로 본 일이 없기 때문에 정말 우슬이 확실한지 의심이 생겼다.


말로만 듣던 우슬을 실물로는 처음 보았다, 채취해 온 날은 눈으로만 씻었다. 뿌리 모양새를 보니 도대체 엄두가 나질 않았다. 이튿날 남편은 점심상을 물리자마자 한쪽에 밀어두었던 우슬을 씻고 있었다. 마디마디 씻는 일이 만만치 않아 보였다.


더덕더덕 엉키듯 뿌리가 한 뭉텅이로 붙어있어서 씻기도 거북했다. 처음에 흙을 털어내고 물에 두어 번 대충 씻어내고 잠시 담가 두었다. 30분 후에 칫솔로 하나하나 문질러서 씻어내야 했다. 그래도 남편의 힘을 보태니 어느새 번개같이 씻고 마무리했다. 함께 씻어서 소쿠리에 담고 보니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흙 범벅이 된 등산화가 문제가 되었다. 약초 캐고 온 날, 등산화를 빨아 달라는 부탁을 했는데, 찰떡같이 대답해 놓고 미루고 있었다. 사실 엄두가 안 나고, 꾀가 났다. 잠깐이면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었다. 바쁘다는 핑계로 세탁실 한쪽 구석에 처박힌 등산화를 눈에 거슬려도 얼른 손이 가질 않았다.


“등산화는?”

“아직 엄두가 안 나서 못 빨았는데?”

캐다 놓았던 우슬을 함께 씻고 난 뒤 농담 반 진담 툭 던진 말에 불편하신 남편 심기를 제대로 건드렸나 보다. 중얼중얼하더니 비누와 솔을 챙겨 운동화를 박박 문대씻기 시작했다. 감정이 실린 손놀림은 가속이 붙어 번개 같았다.


분명 무슨 예민한 일이 있긴 했다. 눈치 없이 한 마디 했다가 제대로 걸렸다. 그래도 그렇지 그게 그렇게 언짢을 일인가? 나 역시 벼락 맞은 것처럼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한편으론 속으로 반가웠다. 흙투성이 신발에 손이 안 가서 미루던 것을 힘 좋은 남편이 순식간에 해결했으니 말이다. 진즉에 힘 좋은 사람이 빨지.(중얼중얼)


이것도 나이 듦인가. 남편의 투덜거림이 이젠 크게 노여워지지 않는다. 별일 아닌 일로 까칠해도 그러려니 한다. 어떤 때는 손주들처럼 철 안 든 어른이겠거니 하고 마음에 두지 않는다. 아마 반대로 남편도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나 자신을 돌아보면 답이 나온다. 까칠한 남편이 대체로 털털한 마누라와 한집에 사는 자체도 그리 만만치는 않을 터이다. 어찌 되었든 믿고 맡긴 등산화를 제때 못 씻은 내 잘못이 있었다. 그렇다고 퉁퉁거린 남편이 못마땅했지만, 서로 감정 상하지 않고 너그럽게 넘어가길 잘했다.


오늘처럼 작은 일로 감정이 상할 때는 나만의 방법으로 푼다. 숫자를 하나부터 열까지 세며 길게 숨을 들이쉬고 내쉰다. 그러면 올라오려고 하는 감정이 사그라들면서 잠시 흔들렸던 감정이 제자리로 돌아간다. 사람 사는 모습이 비슷하지 않을까? 아주 작은 감정도 큰 갈등의 씨앗이 될 수 있다. 그 순간 나를 먼저 돌아볼 때 해답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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