팥죽 끓이기
동지는 전통적으로 팥죽을 쑤어 먹거나 이를 대문과 마당에 뿌려 악귀와 액운을 내쫓는 풍습이 있었다. 밤의 길이가 가장 길고 어두운 날, 붉은팥으로 나쁜 기운을 물리치고 새 출발을 기원하는 날이다. 우리 절에서는 해마다 동짓날이면 붉은팥으로 팥죽을 끓인다.
동짓날에 필요한 양을 준비하려면 꼬박 이틀 정도 걸린다. 먼저 팥죽에 넣을 찹쌀에 맵쌀을 7;3 비율로 섞어 하루 밤을 불려서 빻는다. 빻은 찹쌀가루는 넓은 차실에 도반들이 열 명 남짓 모여 앉아 새알을 빚어서 미리 준비해 둔다.
팥죽의 주인공인 붉은팥은 하룻 저녁 물에 담가 둔다. 죽을 끓일 때 붉은팥은 사용하는 이유는 옛날부터 붉은색은 나쁜 기운을 막고 귀신을 물리치는 색으로 여겼다. 동지는 밤이 가장 길고 음의 기운이 가장 강 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반대로 음의 기운을 상징하는 붉은팥을 사용했다고 한다.
팥 자체도 “부정한 것을 쫓는다”는 의미가 있어서, 집 안에 뿌리거나 음식을 만들어 먹으면 한 해의 건강과 평안을 지킨다고 믿었다. 그래서 동짓날에는 팥죽을 끓여 먹거나 문이나 벽에 조금씩 뿌리는 것은 집안에 들어올 수 있는 나쁜 기운을 막는 의식이기도 하다.
물에 하루 저녁 담가두어 불린 붉은팥은 다음 날 이른 아침 7시부터 가마솥을 걸어놓고 푹 무를 때까지 삶아낸다. 삶은 팥은 갈아서 다시 가마솥으로 가져가 물을 넣고 농도를 맞춰가며 한 시간 정도 더 끓인다. 지금은 기계를 사용해서 30분이면 끝난다. 3년 전만 하더라도 500여 명 분을 일일이 소쿠리에 받쳐 걸러 내야 했으니 그 고생을 말해 뭐 하랴.
동지 법회에 오시는 분들은 물론이고, 읍내 불우이웃과 경로당, 읍사무소, 소방서, 파출소, 은행, 금고, 우체국 등 모든 관공서에도 나누려면 많은 양을 준비한다. 차질 없게 준비하려면 신도들의 울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준비하는 이틀은 너도나도 할 것 없이 바쁘다. 공양주 보살님의 주문이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모든 분이 자발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분주하게 돌아가지만, 손발이 척척 맞는다.
법회가 끝나고 점심 공양이 시작되기 전까지 공양간은 정신없이 돌아간다. 점심 공양을 알리는 목탁소리가 울리기 전까지 초 긴장 상태다. 시간에 맞춰 가마솥 끓는 팥물에 새알을 넣어 신도들의 공양 준비를 마치면 나눔을 위한 300인 분의 양을 포장을 시작한다. 손에 익은 도반들의 포장 솜씨는 자동화된 생산 라인처럼 익숙했다.
역시 사람 손은 무서웠다. 새알 만드는 것도 여럿이 모여서 만드니까 산더미같이 쌓인 쌀가루가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지는 것이다. 그 엄청난 양을 단숨에 만들어 치웠다. 역시 엄마들의 손은 빛보다 빨랐다. 만드는 동안에 웃음바다를 만든 난센스 퀴즈도 한몫했다. 내내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지루할 틈도 없었다, 시간이 언제 흘러갔는지 모를 정도였다.
그 덕분에 작은설 명절 준비를 재미있게 할 수 있었다. 동지가 지나면 다시 낮이 조금씩 길어지기 시작하기 때문에 옛날 사람들은 동지를 새해의 시작으로 여겼다.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이할 준비를 하는 명절이라고 해서, 동지를 흔히 설 다음 가는 작은설이라고 한다.
그래서 “동지를 지나야 한 살 더 먹는다.” 해서 팥죽을 만들어 먹고 새해 달력을 선물한다. 우리 절에서도 해마다 팥죽 끓이는 것을 멈추지 않는 것도, 새해맞이 설이라는 큰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 날은 남편도 절에 필요한 일을 찾아서 한다. 꼼꼼하고 챙겨주고 뒷마무리 정리를 도와주는 남편도 동짓날 꼭 필요한 일손이다. 고마운 손, 고마운 마음. 언제나 부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