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쪽같은? 아들 생일날에

엄마 아들로 태어나줘서 고마워!

by 마리혜

우리에게 선물로 온 아들이 오늘로써 서른 땡 번째 생일을 맞았다. 강산이 세 번씩 바뀌고도 더 됐으니까, 시간이 주는 느낌은 까마득한데, 마치 어제 일 같다. 당시에는 1963년부터 진행된 인구 억제 정책으로 가족계획사업은 공식적으로 폐지되었지만, 산아 제한 정책 폐지는 그 보다 훨씬 뒤에 이루어졌다. 그래서 세 번째 아이부터는 의료보험 적용에서도 제외되었다.


“둘도 많다.”

“고운 딸 하나 백 아들 안 부럽다”

산아 제한 정책 이후에 한 자녀 낳기를 독려하는 수많은 표어가 곳곳에 깃발처럼 나부꼈다. 둘째 딸을 가졌을 때는 사촌 언니들로부터 야만인 소리를 듣기도 했다. 처음에는 동생을 생각하는 마음에 농담처럼 하는 말이겠거니 했다. 요즘 누가 셋을 낳냐고 가끔 진담 같은 농담을 던질 때는 무시당하는 느낌마저 들기도 했었다.


실제로 시골인데도 불구하고 주위에는 성별에 관계없이 한 자녀 가정이 많았다. 그러니 셋째를 출산할 때는 그보다 더 심한 말을 해도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두 딸을 두고도 셋째 아이를 계획한 데에는 맏며느리라는 굴레를 스스로 벗어나지 못한 이유도 있었다. 어른들도 강요하시지는 않았다. 다만 맏며느리로서 아들이 있어야 형제 지간에 면이 선다고 생각했다.


한편으론 딸도 좋지만, 아들도 있어야 더 좋다는 단순한 생각도 컸다. 연로하신 친정 엄마도 남의 집 맏며느리로 갔으면 아들은 꼭 있어야 한다고 은근히 부담을 안겨주신 것도 한몫했다.


어느 부모든 자식을 향하는 마음은 똑같다. 그런데 유독 아픈 손가락은 있다. 나에겐 우리 아들이 그랬다. 산모일 때 건강하지 못해서 아들이 태아 때부터 고생을 지독하게 했다. 아이를 품고 두 번이나 수술을 했으니 태어나기도 전에 고통을 먼저 겪은 셈이다.


위의 두 누나는 자연 분만이었으나 수술 후 출산은 위험할 수 있으니 제왕절개해야 된다는 의사 소견이 나왔다. 그 바람에 세 번째 출산이라는 이유로 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큰 수술비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다. 태아 때부터 엄마 때문에 힘들었던 아들은 태어나자마자 발육이 늦어서 애를 많이 태웠다. 하지만 자라면서 밝고 씩씩하게 잘 자라 주었다.


발육이 늦고 약해서 누나들과 달리 키울 때 어려운 점이 무척 많았다. 그렇지만 힘들어도 키우고 나니 아이들 덕분에 행복한 일들이 훨씬 더 많다. 나에겐 없는 친화력까지 갖고 있어서 가끔 깜짝 놀라기도 한다. 태아 때 지독하게 고생시킨 것이 미안해서 온통 사랑으로 키웠다. 그래서 그런지 사랑이 많다. 지금도 아들은 엄마를 바라보는 눈빛에 꿀이 뚝뚝 떨어진다.


처음 산모 진료받으러 갔다가 아들이라는 소식을 듣고 나오는데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우리 엄마가 가장 걱정하셨을 테니까 제일 먼저 친정 엄마한테 전화를 드렸다. 엄마 목소리를 듣자마자 나도 모르게 엉엉 소리 내며 울음이 터져버렸다. 지금은 돌아가시고 안 계시지만, 엄마도 나만큼 기다리셨다.


친정 엄마도 외손자를 참 기특해하고 예뻐하셨는데…. 아들 생일이 되니까 내 엄마가 몹시 그립다. 우리 엄마도 어려운 시절 팔 남매를 낳으실 때마다 어릴 때 돌아가신 외할머니를 그리워하며 속으로 눈물을 삼키셨으리라.


“아들아, 엄마 아들로 태어나줘서 고마워! 사랑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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