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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 딜레마에 빠졌습니다. 2

첫 번째 글을 이어서~♡

by 마리혜

어머니는 동서들의 설득에 그러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지난 설날에는 장보기가 조금 가벼워졌습니다. 동서들은 저에게도 넌지시 알려주었습니다. 조금 의아했지만 모른 척하고 그대로 진행했습니다.


거의 마무리가 될 즈음, 늘 해왔는데 무엇이 그리 힘들다고 생각하셨나 봅니다. 약속을 해놓고도 찜찜하셨는지 마트에서 장을 더 봐오셨어요. 혼자 하시겠다고 바쁘게 서두르고 계시는 모습이 좋지는 않았습니다.


찰떡같은 약속에도 서두르시는 어머니가 못마땅하던 동서는 투덜투덜하며 싫은 표시를 냅니다. 어머니도 좋은 기분은 아니셨던 것 같아요. 안 되겠다 싶어서 맏이로서 교통정리를 해야 했습니다.


1. 어머니가 수차례 번복하시는 것도 제사를 모시고 싶어 하시는 의지니까 더 이상 거론하지 말기.

2. 앞으로 제사 장보기는 내가 한다.

3. 어머니께서 살아계시는 동안 제사는 내가 지킨다.


어머니도 중심 없이 분란만 키우신 거라고 강하게 말씀드렸네요. 가뜩이나 좋지 않은 기분에 불을 지르게 되었습니다. 저의 마음도 좋지 않았습니다. 어머니의 마음을 충분히 알고도 남습니다.


외며느리로서 된 시집살이에 멍든 가슴으로 평생을 살아오신 어머니이시기도 했습니다. 제사만큼은 어머니 의지대로 하실 수 있게 해드리고 싶었습니다.


모든 제사를 생략한다면 몸은 편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해오던 일을 불편해하지는 않습니다. 농담처럼 오가는 설득도 자칫 오해가 생길 소지도 충분했습니다.


한편으로는 어느 쪽이든 단호하게 결정을 못 내리시고 흔들리시는 것이 불편했습니다. 그 마음을 헤아려드리지 못하고 다그치는 것은 더 불편했습니다. 잠시 후에 어머니를 안고서 등을 쓰다듬으면서 이해시켜 드렸어요. 하지만 쉽게 풀어지지 않으셨답니다.



추석을 보내면서 깊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손 아래 두 동서는 지난 설날의 활달하고 에너지 넘치던 몸들이 이제는 아니었습니다. 단숨에 척척 해내던 일들을 몇 번씩 나누어서 합니다.


한 동서는 허리 디스크에 협착증까지 있어서 움직임이 여간 불편해 보이지 않습니다. 수술도 예정돼 있다고 합니다. 또 다른 동서는 허리 디스크에 다리 관절 통증으로 조금만 무리해도 고통스러워합니다.


눈치채고 아픈 거에 관해 물어보았습니다. 응하듯이 고통을 쏟아냅니다. 정말 힘들여 보였습니다. 동서들에게도 측은한 생각이 드는 건 마찬가지였습니다.


“형님, 큰 아버님 제삿날이 애들 아빠 생일이니까 어머니께는 앞으로 참석 못 한다고 말씀드렸어요.”

“이제는 아이들이 크니까 아빠 생일에는 가족끼리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해요 “

“저도 애들하고 여행도 가고,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어요.”


간단하게 준비하면 되니까 혼자서도 충분히 할 수 있고, 괜찮으니까 부담 느끼지 말라고 당부했습니다.


“멀리 가지 않을 땐 가까이 있으면서 참석하지 못하면 형님한테도 미안해요.”

“그럴 때 형님 혼자 하시면 힘드니까 어머니한테 다시 말씀드려야겠어요.”


교통정리가 끝났다고 생각한 세 가지 문제가 다시 제 자리로 돌아와 버렸습니다.


“형님도 연세?? 가 있으니까, 무리고, 우리도 이제 나이 먹을 만큼 먹었어. 어머니!”

“제발 제사 쫌 줄이자고요!”


막내 동서들의 막내 같은 외침은 점점 높아집니다. 저도 졸지에 연세 많은 형님이라는 핑계가 돼버렸습니다. 이 친구들의 외침을 모른 척 듣고만 있을 수 없는 처지가 돼버렸습니다.


저야 편하겠지만, 구순이 다 되신 어머니가 건강하게 계실 날이 불과 얼마나 될까요. 건강하게 계실 그날까지라도 지켜드리는 마음이 더 큽니다.


차례와 제사는 조상님들을 공경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라져 가는 제사 문화를 불편함을 기꺼이 지키고 싶은 마음도 갖고 있습니다.



추석날, 비가 많이 와서 성묘는 취소되었습니다. 본가의 모든 설거지가 마칠 때쯤, 아들은 아버지와 귀엣말을 주고받더니 할머니 묘소에 가고 싶다고 합니다. 셋이서 조촐하게 성묘를 했습니다. 흐뭇했습니다.


증조할머니 묘소에 인사를 드리는 아들이 참으로 대견하고 기특했습니다. 남편은 할머니와 한방을 쓰며 귀여움 받았던 유일한 손자입니다. 가끔 할머니의 추억담을 들려주곤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할머니와의 추억을 아들에게 재밌게 들려주었습니다. 남편은 아마도 그 시절이 더욱 그리웠을 겁니다.


먼 훗날 아들도 이날을 그리워하면서 아버지 엄마를 그리워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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