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본가에서 모시는 기제사는 1년에 네 번입니다. 설날과 추석 차례 2회까지 합치면 총 6회가 됩니다. 해마다 달력이 나오면 가장 먼저 챙기는 것이 기일 표시를 하는 일입니다. 기일이 다가오면 일주일 전에 미리 남편에게 알리고 서서히 마음의 준비를 하게 됩니다.
마음의 준비라면 기일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일입니다. 상차림에 필요한 재료들을 미리 생각해 두는 거고요.
하루 전에는 사지 않아도 되는 재료는 어머니와 미리 체크합니다. 물론 며느리와 아내로서, 제사 음식 장만과 마무리까지는 가장 힘든 일이긴 해요. 힘든 일이라기보다 신경 쓰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정성껏 제사를 모시는 어머니를 도와 신경을 쓰던 일이 이제는 습관이 됐습니다. 에너지를 하루 반짝 쏟는 일이라서 마음만 내면 되니까요. 제사 지내고 밥을 먹는 일이, 일 년 중 몇 번 안 되는 단체 밥상이기에 의미 있는 일이기도 합니다.
제사는 정성껏 마련한 음식을 조상님께 올리고 추모하는 일입니다. 부모님 생전에 생신 날 가족이 모여 음식을 만들어 먹고 즐겁게 지내는 일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네요. 그래서 화려한 상차림보다 조상님을 기리는 마음에 더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것을 잘 지켜오신 어른들의 지혜를 이어받아 유지하는 것도 다음 세대가 할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제사의 본질에 의미를 두는 것이지요. 조상을 기리는 제사 문화가 신을 숭배한다거나 미신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본질에 어긋나는 생각이라고 봅니다.
요즘 추세에 비추어 보면 저의 이러한 생각은 20세기에 해당하는 고루한 생각을 자처하는 셈이죠. AI 기술이 급속도로 확산하고, 양자 칩 구축 컴퓨터가 출현한 마당에 제사의 본질을 운운하는 것이 무슨 큰 의미로 다가올까요.
많은 사람이 제사를 축소하거나 생략합니다. 특히 설이나 추석 명절에 차례 지내던 것을 가족 여행으로 보내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올리는 상차림도 예전 방식을 꼭 고집하지도 않습니다. 조상님께서 평소 좋아하셨던 음식을 올리기도 하고요. 맛있는 조각 케이크나 피자도 올리는 분들도 계신다고 합니다.
아무리 뜻이 좋아도 바쁜 시간을 쪼개어 제사상을 장만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특히 차림 물가가 우리 같이 서민들에게는 부담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습니다. 모든 물가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으니 내려올 줄 모릅니다. 특히 명절에는 더 그렇습니다. 간소하게 준비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 되었습니다.
전통적인 제사 문화 간소화는 우리 집도 예외는 아닙니다. 준비하는 음식량도 많이 줄었습니다. 늘어난 가족 수에 비해 늘어나야 할 음식량이 어머니와 둘이 하던 때보다 오히려 줄었습니다. 주방에서 음식 준비할 때 며느리 셋이 한꺼번에 움직이는 것이 복잡하게 여겨질 정도입니다. 장보기를 맡은 막내 동서의 장바구니도 가벼워지기 시작했습니다.
명절에 온 가족이 모여도 많이 먹지 않습니다. 일부 요즘 입맛에 맞는 것 외에는 수고에 비해 허무한 맛이라고 해야 할 까요. 자연스럽게 이것저것 음식 가짓수를 생략 하자에서부터 제사를 줄이자는 말까지 나옵니다. 심지어 6·25 때 전사하신 큰아버지 제사까지 생략하자는 말까지 나옵니다.
어머니께서는 큰 아버님을 누구보다 가장 애틋해하십니다. 2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후손 없이 전쟁터에서 별이 되셨어요. 돌아가신 날을 모르기 때문에 가장 좋은 날을 받아서 기일로 정했습니다. 기일이 되면 얼굴 모르는 시숙이지만 아버님의 유일한 혈육이셨던 큰 아버님을 생각하면 눈물부터 흘리시곤 합니다. 정성껏 예를 올리시는 모습을 보는 저도 가슴이 뭉클할 때가 많았습니다.
이제는 동갑내기 손 아래 두 동서도 나이가 들어가니까 입김이 세집니다. 몇 년 전부터 제사를 한 날로 모으자고 여러 차례 에둘러 말하거나 은근히 요구하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어머니 마음을 움직이는 일이 중요했으니까요. 물론 저에게는 표시하지 않습니다.
그러다 결국 터지고 말았습니다.
두 번째 글이
곧 다음 회차에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