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이 불편한 이유

아름답다는 말이 낯선 스무 살

by 부귀영화


“도전해 봐. 젊으니까 괜찮아.” 사람들은 흔히 실패도, 상처도, 다 젊음의 특권이라고 말한다. 나는 이 말이 불편하다. 젊음의 성장통을 당연시하다 못해, 필연적인 것으로 여기는 그 태도가 격려가 아니라 회피처럼 느껴졌다. 그 말엔 “어차피 네 몫이니까 감당해라”는 묘한 거리감이 느껴진달까.


어른들은 청춘을 아름답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아름다움은 이미 지나온 사람의 기억 속에서만 빛나는 게 아닐까. 그 시절을 살고 있지 않는 사람만이 청춘을 낭만적으로 말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지금 청춘의 한가운데 있는 우리는 과연 이 시절을 아름답다고 느끼는가. 현실은 불안하고, 매일의 선택은 조심스럽다. 아무리 젊어도 실패는 아프고, 도전은 무섭다. 어륻들이 “젊으니까 괜찮다”는 말로 감정을 가볍게 덮어버릴 때, 서운함과 원망스러움이 동시에 든다.


‘도전’이라는 단어가 종종 무책임하게 들릴 때가 있다. “한 번 사는 인생, 기깔나게 살아야지.”라며 내 인생에 포부를 담아 외치곤 하지만, 정작 그 도전의 결과를 책임질 사람은 나이기에 실패해도 괜찮다는 말이 때론 본인들의 미련을 우리 세대에게 떠넘기는 문장처럼 들리기도 한다.


예전에 읽은 문장 하나가 떠오른다. “성장할 사람이라면 상처받지 않아도 성장했을 것이다.” 고통이 왜 성장의 증거가 되어야 할까. 상처 없이 배울 수 있다면, 그게 더 건강한 성장 아닐까. 우리는 상처를 통해 배우기도 하지만, 상처 없이도 충분히 깨닫기도 한다. 고통을 낭만화하는 건, 그 고통을 겪지 않는 사람들의 언어 아닐까라는 의문이 든다.


나는 ‘젊으니까 괜찮다’는 말이 의심이 된다. 젊음은 괜찮지 않은데, 흔들리고, 불안하고, 아직 방향을 찾지 못한 채 하루를 버티는 일의 연속이다. 어른들이 “지나고 보니 청춘이었더라” 라고 말하는 건, 그때의 아름다움을 진심으로 느꼈기 때문이 아니라, 이미 지나왔기 때문일 것이다. 청춘은 그 시기여서 아름다운 게 아니라, 그때의 미숙함조차 이제는 되돌릴 수 없기 때문에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릴 적 순수하게 짝사랑하던 나를 떠올리면 괜히 미소가 지어지듯. 그 감정이 순수해서가 아니라, 이제는 그 순수함을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청춘이 불편한 이유는 불안하고 서툴며, 때로는 잔인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 불안과 서툶 속에서도 나는 조금씩 성장하긴 하겠지만. 청춘 한가운데에 서 있는 나는 지금 당장의 청춘이 아름다운지 잘 모르겠다. 언젠가 나도 이 시절을 떠올리며 “그때가 가장 찬란하고 아름다울 때지”라고 말할 수 있다면, 비로소 나는 청춘을 사랑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