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척, 해롭지 않은 척

나는 정말 선한 사람일까?

by 부귀영화


‘나는 정말 착한 사람일까?’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 건, 뜨끈한 집밥을 배부르게 먹고 소화를 시킬 겸 엄마와 동네 아파트 단지를 돌며 나눈 대화에서부터였다. “나 정도면 완전 착하지”라고 자부하며 내뱉었던 말에, 엄마는 “네가 뭐가 착해, 넌 좀 이기적이지.”라고 답했다. 정말 나는 착한 사람인지 아닌지 나에게 의문을 가지게 된 것이다.


내가 착한 사람인지 아닌지 판단하기 위해서 ‘착하다’의 사전적 정의를 살펴보도록 하자. 뭐 그리 어려운 단어도 아닌데 굳이 사전적 정의를 봐야 하냐고 생각할 수 있으나 사소한 것도 뜯어보면 별거일 때가 있기에 굳이 뜯어봐서 나쁠 건 없다. ‘착하다’는 곱고 어질다는 뜻으로, ‘곱다’는 모양, 생김새, 행동거지 따위가 산뜻하고 아름답다는 뜻이며, ‘어질다’는 마음이 너그럽고 착하며 슬기롭고 덕이 높다는 뜻이다. 곱진 않은데 좀 어진 것 같긴 하다. ‘곱다’와 ‘어질다’의 두 조건을 모두 충족하지 못하므로 나는 착한 사람은 아니다. 정말 나는 착한 사람이 아닐까?


두 번째로, 내가 착한지, 아닌지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언행을 살펴보는 방법이 있다. 스스로 착하다고 여겼던 순간과 나쁘다고 여겼던 순간을 놓고 정도를 비교해 보면 된다. 이때 정도를 비교하는 기준이 중요한데, ‘양심의 가책을 느꼈는가’와 ‘위법행위에 해당하는가’가 되겠다. 후자의 경우,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21년간 투철한 준법정신으로 살아온 덕에 따로 따질 것도 없다. 양심의 가책을 느꼈는가에 대한 여부를 확인하기에 앞서 착하다고 느꼈던 순간을 떠올려보자. 고3 수능을 앞두고 스터디카페에 가기 전, 카페에 들러 커피 한 잔을 주문하고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카페 문이 열리더니 60대로 보이는 한 남성분이 들어와서 커피를 주문하려고 하자 아르바이트생이 “키오스크로 주문해 주세요.”라고 말했다. 어르신은 “키오스크로 어떻게 주문하는지 모르는데….”라며 난감해했고, 바쁜 아르바이트생은 음료를 만들며 “하시면 도와드릴게요.”라는 말만 할 뿐 직접 도와주진 않았다. 사실 남한테 별 관심도 없고, 괜한 오지랖 부리지 말자는 주의로 살아가는 내게 ‘언젠가 우리 아빠도 저런 날이 올까?’라는 생각 때문이었는지, 키오스크의 문제점을 직접 겪어보고 싶었던 건지, 아니면 아르바이트생의 불친절한 태도가 불편했던 탓인지 모르겠으나 “도와드릴까요?”라며 선뜻 손을 내밀어 주문을 도와드렸다. 지금도 저 때를 떠올리면 선행을 베풀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선행을 베푼 것만으론 선한 사람이 된 것 같진 않다. 도와준 이유가 너무 자기중심적이었기 때문이다.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는 누군가를 위해 움직였다기보다, 그 상황에 있는 나를 위한 움직임이었단 생각에 키오스크로 주문하는 현 상황을 탓해도, 바빠서 도와주지 못한 아르바이트생을 탓해도 끈적한 가래처럼 응어리가 마음 한쪽에 남아있는 것 같았다. 나는 착하지 않은데 착한 척을 하며 살아가고, 해롭지 않은 척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이구나. 내가 입 밖으로 내뱉었던 “나 정도면 완전 착하지.”라는 말도 어쩌면 진짜로 착한 사람의 옷을 빼앗아 걸치면 내가 착한 사람처럼 보이길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싶다.


‘착하다’의 사전적 정의를 들여다보아도, 21년간 위법행위를 저지르지 않았다는 사실을 내세워도, 여전히 나의 선함에 대한 의심의 답을 찾지 못한 건 불편함이 싫었던 나를 위해 행했던 것이었기 때문이었으며, 상대방을 위한답시고 했던 도움과 위로, 조언조차 결국 내가 편하고자 행했던 것들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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