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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e E J Mar 24. 2021

나와 막장 미국인 시어머니와의 첫 만남

그때 미리알았어야 했다.(나를 변호하는 글)

나와 미국인 시어머니의 첫 만남은 2018년 10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에 미군 장교로 복무하며 나랑 연애도 하던 나의 남자 친구(현 남편)를 방문하고자 시어머니가 한국에 오신다는 소식을 들었다. 


시어머니는 군 복무 당시에 입은 부상으로 시력이 좀 불편하셔서 안내견과 함께 여행을 하시는데, 해외로 나가실 때는 그 나라 말이나 정서를 다 알기 힘드시니.. 혹시나 해서 안내견을 애견 호텔에 맡기거나 아는 분께 맡기고 오신다고 하셨다.


그러한 이유로 시어머니가 친구분 한 명을 대동해서 오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는 시어머니 오시기 2주 전부터, 선물을 사모으기 시작하며 시어머니의 한국 방문을 고대하고 있었다.


물론, 시어머니의 선물만 사면 같이 오신 친구분이 소외 당하 실 수도 있으니 친구분의 선물도 준비해드렸다. 똑같은 걸로...

첫 만남에 부담스러운 선물을 드리면 그 역시도 실례가 될까 싶어서.. 1인당 5만~6만 원 정도 어치의 선물을 준비했었다. (스타벅스 훈민정음 머그+스타벅스 서울 머그+손편지 각각 두 분+ 괌에서 사 온 예쁜 자석 2개+한국 전통 문양이 있는 책갈피+한국 전통 악기 열쇠고리+괌 머그컵)

(시어머니가 머그컵(메시지 있고 의미 있는 것)을 좋아하신다는 사전 정보를 입수해서 컵을 위주로 준비함)


시어머니가 오시기 1주 전은, 내가 취업 기념 나의 부모님들을 데리고 괌으로 가족 여행을 다녀왔다. 나는 괌에서도 시어머니가 한국에 오셔서 나를 처음 만난다는 생각에.. 거기서도 시어머니 선물을 사모았다.


내가 이렇게 긴장하고 준비한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남자 친구(현 남편)와 연애하며 누구나 한 번씩은 하는 전 여자 친구에 대한 질문을 해봤다. 남자친구(현 남편)는 솔직하게 그 여자의 무리한 선물 요구(매 데이트마다 꽃다발(50-60달러 이상짜리로)을 요구 등)(나의 신랑은 꽃가루 알레르기가 심함)와 성격차이로 헤어졌다고 했으며.. 본인의 엄마(=나의 현 시어머니)도 그 여자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아서.. 본인 친구들에게 연락해 그 여자와 헤어지도록 도와달라고 그랬단다.


이 소리를 듣고.. 시어머니에게 잘못 보이면 이 남자와 끝나겠구나 싶어.. 시어머니의 마음을 사로잡으려고 나는 정말 많은 노력을 했다.


이때부터 나는 나의 시어머니가 될 이 분이 만만치 않은 사람이라는 걸 눈치챘어야 했다.


누구나 그러하듯, 나는 그저 첫인상을 잘 만들고 싶었고.. 

시어머니가 될지도 모르는 그 분과 좋은 관계를 가지고 싶었다.


시어머니께 잘 보이려고 새 옷까지 차려입고 남자 친구와 공항으로 어머님 픽업을 갔다.

시어머니가 공항에 도착하는 순간, 나는 시어머니보다 그 옆에 있는 내 또래 여자의 정체가 너무 궁금해졌다.


순간적으로 세상의 모든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고, 시어머니와 그 옆 젊은 여자의 모습을 제외하고 모든 것이 흐리게 보이는 착시를 경험했다.

마치, 나의 신랑과 두 번째 데이트를 갔는데.. 지하철 역에서 걸어 나오는 그를 보고.. 귀가 멎고 그를 뺀 모든 시야가 흐려지며, 모든 것이 영화에 나오는 슬로모션 같은... 그런 진귀한 경험을 다시 경험 하는것 같았다.


바로 신랑(당시 남자 친구)의 뱃살을 꼬집으며 물어봤다. “야, 엄마 친구랑 온다며? 엄마 친구가 저 30대 여성이야? 저 여자가 너 한국 복무 중에 강제 방치된 네 미국 차 운전하고 관리하고 그러고 다닌 그 여자니?”


미리 그 여자가 30대라고 말해주지 않은 남자 친구에게 배신감을 느끼는 것도 잠시.. 

그 어머님 친구가 하는 이야기에 나는 머리를 싸맬 수 밖에 없었다.

“내 절친이 하와이행 왕복 비행기표를 사주며, 본인 결혼식에 신부 들러리로 와달라고 사정사정을 하는데 그거 거절하고 한국에 온 거야!”


......


미국인들에게도 하와이는 한 번쯤 꼭 가보고 싶은 곳이며, 하와이는 미국인들에게도 비싸고 좋은 곳, 가서 구경하고 싶은 곳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그 장소를 까고 한국에 왔단다. 그것도 무계획으로.

그냥 내 남자 친구를 보러 왔단다. 


....... 다들 무슨 생각이 드는가? 


한국에서 드라마를 그 누구보다 열심히 챙겨보며 자란 30대인 나는, 한국 막장드라마에 나올법한 ‘시어머니가 점지해둔 며느리감’ 혹은 ‘남자 친구의 숨겨진 여자 친구’ 등등을 상상했다.


시어머니를 모시고 불고기를 먹을 수 있는 식당에 가서 첫 식사를 함께하는데..

시어머니와 그 여자, 그리고 내 남자 친구(현 남편) 셋이서 내가 모르는 이야기만 한 시간을 떠들었다.

당시 나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남자 친구의 미국 차 이야기,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미국 시어머니의 집 이야기, 그들이 사는 주와 동네 이야기 등등...


나는 저녁 시간 내내 대화에 끼어 들 수가 없었다.


시어머니가 데리고 온 그 여자는, 저녁 식사를 거의 하지도 않은 채 식당에서 계속 입 내밀고 있었고.

나의 신랑이 "밥이 입에 안 맞으면 다른 음식 시켜줄까?"라는 물음에 몸을 베베꼬고 얼굴이 불그레 해지며 대답하는 등 정말 수상한 행동을 많이 했다.


괌 여행 때문에 회사에 더 이상 휴가를 낼 수 없었던 나는, 주말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나의 시어머니와 그 30대 여성은, 다른 외국인들이 구경하는 관광지 구경 대신에.. 평일에 나의 신랑이 당시 복무하고 있던 동두천 미군부대(주변이 많이 썰렁함)를 보러 가고 다시 숙소인 서울시청 앞까지 지하철로 이동하고, 그다음 날 또 동두천으로 가 신랑을 만나고 오고 다시 숙소인 서울시청으로 오는 행동을 반복했다고 한다.


나는 그 여자에 대해 이해할 수 없는 마음이 크게 들었다...... 어찌 되었던 한국에 관광을 왔고, 처음 오는 동양국가라면서... 서울시청 앞 뒤로 있는 각종 궁들과 박물관 등에 가 볼 생각은 전혀 안 하고... 내 신랑을 보러 동두천까지 그 멀리 지하철 타고 주 5일을 가다니....


당시 시어머니께 잘 보이고자 하는 마음이 넘치던 나는, 시어머니 가시기 전날 인사동 관광을 준비하고.. 그 날 어머님께 탈 장식품을 사드렸다.

이 역시도 가격이 5만원 후반이었다.

선물만 드리면 너무 정성이 없어 보여, 손편지로 늘 건강하시고 그동안 아들을 키워주셔서 감사하다. 우리가 결혼을 이야기 중인데.. 어머님이 허락하신다면 결혼을 해서 정말 행복하게 잘 사는 모습을 보여드리겠고, 시어머님께도 잘하겠다는 다짐과 약속을 열심히 쓴 편지도 같이 드렸다.


내가 자꾸 가격을 말하는 이유는 지금부터이다.


시어머니가 10월 말에 미국으로 돌아가시고, 그 해 12월 미국인들이 유별나게 더 중시하는 크리스마스가 찾아왔다.

남편의 부대로 시어머니가 나와 신랑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보내셨다. 신랑은 세 박스를 받았고.. 거기에 신랑이 기대하던 게임 신작, PX에서 못 구하던 동네 맛집 파이, 신랑이 어릴 때 먹던 그 지역 특산물 등등이 들어 있었고...


나의 크리스마스 선물은... 시어머니가 다른 분께 받은 선물 봉투를 재활용 한 봉지에.. 각종 사탕과 젤리가 들어있었다.


내가 명품을 사드린 건 아니지만... 10만원 그 이상의 가치를 선물했는데.. 돌아오는 건 크게 잡아 1만원어치의 사탕과 젤리가 들어있어서..

물질적인 나는 매우 실망을 많이 했다.


나는 그때도 나의 정성이 부족하고, 내가 10만원 밖에 없어 10만원 어치밖에 선물을 못 해 드린 나의 능력을 탓했다.

나는 그다음 해에 더 열심히 선물을 해드렸고, 신혼여행을 미리 당겨 미국 여기저기를 여행할 때에도 나는 시어머니의 선물만 사모았다.


.... 나의 시어머니는 나에게 그 사탕 이후로 하나도 해 주신 게 없다....


물론 본인의 약혼반지이자 결혼반지인 그 반지를 물려주시겠다고 하셨으나, 내가 다양한 이유로 거절했다.

그것 말고는 전혀 없으시다.


격하게 멍청하게도 나는 이때도 나의 정성과 노력이 부족한가 싶었다..


나는 각종 미국 명절(어머니날, 부활절, 추수감사절(땡스기빙), 크리스마스)에 맞춰 선물을 사보 냈고, 매 선물마다 정성스레 카드도 써 보냈다.

태어나서 어머님께 한 번도 카드를 쓴 적 없다는 신랑을 억지로 구워삶아 어머니날에 둘이서 카드도 써 보냈다.


코로나 판데믹으로 한국을 못 가며 시어머니와 갑자기 같이 지내게 되었을 때는,

시어머니가 뇌동맥류 수술 이후에 드시는 각종 약을 직접 시간 맞춰 챙겨드리고, 약 먹기 힘들어하는 시어머니를 응원해드리고

시간 맞춰 한국 드라마 틀어드리고, 하루에 12시간씩 트럼프 욕도 들어드렸다.


....... 이렇게 노력한 나에게 돌아오는 것은....... 내가 블로그와 브런치에 기재하는 이런 사건들이다.


아직도 일부 사람들은 내가 시어머니께 잘하지 못해서 준만큼 되돌려 받는 거라는 말을 한다.


나는 아직도 시어머니가 화장실 가시는 시간에 방해되지 않게 화장실 가는 시간까지 줄여가며 시어머니를 배려하고 있다.

시어머니가 하루에 화장실을 몇 번이나 가시며, 주로 몇 시에 가시는지 아는 며느리가 얼마나 될까?

시어머니가 샤워할 때 비누를 선호하시는지 샤워젤을 선호하시는지, 시어머니가 좋아하는 샤워용품은 무엇이며 시어머니가 어떤 화장품 브랜드를 쓰는지도 알 고 있다. 또한, 시어머니의 병원 정기 검진 스케줄을 알고 시어머니가 병원 가시기 전마다 나는 가방을 싸드린다.


..... 나는 노력을 많이 했는데.... 그리고 많이 했고 지금도 많이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고맙다는 말 대신, 나는 각종 막말과 여러 가지 무시당하는 행위에 늘 눈물로 지내고 있다.


이래도 나에게 "내가 아는 사람은 미국인과 결혼하여 시어머니 사랑을 독차지하며 지내고 있는데... 준만큼 되돌려 받는 겁니다.."라는 질타를 할 수 있는가 궁금하다.


시어머니가 뇌동맥류와 야뇨증, 그리고 시어머니 치아에 레진 때우기가 몇 개가 되어있는지, 시어머니가 잇몸에 얼마나 예민하신지, 시어머니 과거에 키우시던 애완동물 종류와 이름들, 시어머니를 거쳐간 각종 맹인 안내견들의 이름 모두 등등을 아는 정도면.. 

객관적인 시선으로 봤을때, 나는 시어머니께 피해 끼치거나.. 시어머니가 민감해하시는 주제로 대화하지 않으려고 많이 노력한 증거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이런거 아는 며느리도 물론 많다. 시어머니를 지극 정성으로 보살피는 며느리들이 세상에 많은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들도 막말 공격과 인종차별, 무시, 동네 개 보다도 못한 대우를 받는가?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것이다. 

그들의 노력에 이런 돌을 답례로 던지는 시어머니들이 세상에 그렇게 많은가?


오늘은 이렇게 나를 약간 변호하는 글을 적고 싶었다.


나도 처음부터 시어머니를 싫어하고 불편해하며, 시어머니 막말과 태도 때문에 위가 늘 아파 하루에 3시간만 자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이 글을 읽고 나를 비판하고자 하는 모두가 비판전에 먼저 이걸 알아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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