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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e E J Mar 14. 2021

막장 미국인 시어머니의 새로운 인간관계론

내가 바로 대인관계의 중심이다ST.

오늘은 나의 시어머니의 인간관계에 대한 작은 관찰일지를 적어보려고 한다.

오늘 나는 신랑과 영화 두 세편을 연달아보며 여느 집과 다름없는 주말을 보내려고 했다.


나의 미국인 시어머니는 본인은 한국 드라마 보느라 정신이 없다고 하셨다. 그래서 우리가 영화 보는 것에 참여하지 않으시고, 본인 헤드폰과 아이패드 볼륨을 거의 최대로 하시고는 혼자 한국 드라마를 시청하셨다. 서로 보고 싶은 프로가 다르면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영화 In Time과 Founder를 봤는데.. 어김없이 시어머니의 코멘팅이 불쑥불쑥 나와서 영화에 대한 집중도는 정말 바닥을 쳤다.


영화 In time에는 Dispatch라는 영어 단어가 나오는데, 나는 신랑에게 한국에서 디스패치라는 모르는 비밀이 없는 연예계 특종을 다루는 그룹임을 설명하고, 신랑은 디스패치가 경찰에서 어떤 단어로 쓰이는지 설명하고, 시어머니는 단어 근원을 설명하고 있었다.


.... 나 진짜 피곤하다....


오늘 집에 넘치다 못해 집 전체를 뒤엎는 개 털+흙+먼지 하루 종일 청소하고 저녁까지 차려내느라 힘들어 죽는데.. 그 와중에 야밤에는 원치 않는 강제 인강이라니? 내 무슨 팔자에 지금 이딴 공부 쳐하고 있는지 하.... 목젖까지 욕이 튀어나오는 걸 이를 악 물고 참고 또 참았다.


영화 Founder를 보는데 시어머니 참견은 정말 극으로 치닫았다.

“나 저 맥도날드 1호점 가봤는데. 저기 저거 캘리포니아 어디 지역에서 시작된 그거 맞지?”

“나 어릴 때 얼핏 저 사람 본거 같아”

이런 거 다 참고 영화를 봤다. 영화 끝나고 엔딩 크레딧에 좀 좋은 노래가 나왔다.

“이 노래 부른 저 사람이랑 나랑 고등학교 같이 나왔잖아!! 실제로 만났어! 내가 1학년 때 나보다 한 학년인가 위에였는데, 무튼 그래도 같이 나왔잖아!!!”

라고 하시고 그 노래에 맞춰 춤추시고 따라 부르셨다.


나의 미국인 시어머니는 늘 그런 식이다.


미국에서도 어느 정도 인맥과 커넥션은 중요하다. 일부 일자리에서는 추천서를 받아오라는 경우도 있고, 같은 학교를 나온 선배님이 후배를 끌어주는 경우도 있다. 물론 그런게 없어도 여기서 충분히 경쟁력을 가지고 성공할 수 있긴 함.


그래도, 이렇게 미국인이 학연, 지연, 혈연에 집착하는 사람은 살다 살다  봤다.


중국에 존재하는 ‘꽌씨’의 미국판이 이럴까 싶다.. 저분 혼자 저러시는 거니 미국에 대해 오해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무튼, 나의 미국인 시어머니는 우리가 무슨 사람 이야기만 하면 다 안다고 그런다. 다 만나봤고 다 본인이랑 대화해봤고 다 안다. 진심.


우리는 지금 미국에서 정식 혼인신고를 하기 위해, 한국식으로 따지면 주례 같은 분을 구하고 있다. 여기서는 주례 같은 걸 해주기 위해서는 관련 자격증을 따서 그 동네/주에 그 자격을 가진 사람으로 등록이 되어 있어야 한다. 그걸로 사람들이 120-200달러/1건 돈을 벌기도 한다.


우리는 그냥 업체 사람보단 좀 더 멋진(?) 판사님께 하기로 했고, 법원에 증인 2명을 데리고 가 정식적으로 court wedding을 하기로 했다.

판사님들에게 전화로 가능한 시간을 여쭤보려고 둘이 앉아서 계획을 짜는데..


시어머니가 은근히 옆으로 오시더니... 우리가 사람들 이름을 말하는 것을 들으시고는...

“어 나 그 판사 그 사람 아는데. 그 사람 여자 맞지? 그 사람 나랑 어디서 만났는데 막 나보고 안내견 멋지다고 해줬어. 그 사람 성격 진짜 좋아 실제로 한번 만나봐! 그 사람이 사실 여기 주에서 최초로 뭐 한 그런 사람이야. 대단하지? 나 그 사람 알아!”


... 지금 저기 저 말 한 문장에 오류가 얼마나 많은가...


판사님은 뭐 만나고 싶다고 아무나 만날 수 있는 사람인가? 저 사람 만나봐요 어머님?

그러면 어떻게... 내가 지금 어머님 개 핵 짜증나니까...

한 가볍게 10 펀치 선사해드려? 그 10 펀치면 어머님과 법원으로 그 판사님 만나러 갈 수 있을 듯....?

(feat. 판사님께로 직행 슈퍼패스)


지금 우리가 필요한 건 판사님 또는 목사님, 혹은 그 자격증 있는 사람이 우리가 원하는 날짜에 가능한가... 이게 관건인데...

저 판사를 개인적으로 어디서 만나봤고 저 판사가 본인의 어떠한 점을 멋지다고 해줬다.. 가 중요한 걸까?


시어머니가 저 판사를 진짜 안다면, 본인이 전화해서 판사님 스케줄 물어봐주기 정도는 쉽게 할 수 있을 텐데

그런 거 전혀 안 하신다. 그냥 “나 아는데! 좋겠지?” 끝.....


나는 저런 생산성 떨어지는 대화가 싫다. 내가 지금 시어머니와 연애하는 것도 아닌데....왜 저런 이야기들을 듣고 있어야하는건지.....


내가 지금 나에게 주어진 날짜 안에 합법적으로 결혼하고 신분조정 신청을 완료하냐~ 아니면 불법 이민자로 전락하고 쫓겨나고 앞으로 미국 관광 오려면 관광비자(ESTA 아님)를 신청해서 1년 전에 미리 허가받고 미국 여행(동맹국 포함)이 힘들어지는가~ 등등의 문제가 달려있는데...


거기서 지금 꼭 저런 이야기를 하고 넘어가야 하는 사람의 심리는 무엇일까 매우 궁금해진다.


어머님의 저 논리대로 따지면, 나도 세상 유명한 사람들의 절반은 아는 셈이다.

나는 연예인들이 꽤 많이 나온 대학을 나왔고, 실제로 학식(대학교 교내 식당)에서 연예인 두 세명 만나봤고..

학교 졸업식날 내가 개인적으로 어릴 때부터 엄청 좋아하는 가수 분도 만나 뵈었다.


나의 시어머니 논리대로 따지면, 나는 이 사람들에게 축가도 부탁할 수 있고, 시어머니에게 소개도 시켜줄 수 있는 끕이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진심, 스쳐만 지나갔다고 다 아는 사람이고 이름 다 알고 다 내 친구면.......

지구촌 인구의 절반 이상이 다 내 친구 아닌가?


그렇게 따지면, 나는 내 꿈에서 카디비랑 같이 WAP 부르며 카디비에게 1:1 트월킹 과외받았으니, 진심 무슨 절친 아니에여?ㅋㅋㅋㅋㅋㅋㅋ

저거랑 이거랑 다른 게 무언지?


작년 이 맘때에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 시어머니에 대해 잘 몰랐던 좀 더 순수했던 나는 정말 많이 속았었다.


작년에 나는 코로나 판데믹 선언 이후, 아시아나항공 항공편이 3번 취소 1번 강제 변경되어 한국 집에 못 가고 발을 동동 구르며 지냈었다.


나의 미국인 시어머니는 “나 은퇴한 아시아나 항공 기장님 아는데 내가 한번 물어볼게”라고 하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뭘 어찌 물어본다는건지 도통 모르겠다.


코로나 때문에 비행기가 못 뜨던 게 항공사 잘못도 아니고, 기장의 개인 사정도 아니고...

국경 문이 닫히고 통행이 힘들어져서 그런 건데... 그걸 왜 은퇴해서 쉬는 사람에게 묻는다는건지?


시어머니가 회사생활을 전혀 안 해본 것이 이런 데에서 엄청 티 나는걸 그땐 몰랐다.


결국 나는 아시아나 항공에게 전화를 걸어 티켓을 잘 바꾸고 한국 집으로 잘 갔다. 한국 가기 하루 전날, 시어머니는 “내 친구(그 은퇴한 기장, 아시아나 기장님들 트레이닝해주러 한국 진짜 자주 간다고 함)가 그러는데 이번엔 진짜 비행기 뜬대!”라고 뒷북을 치셨다.


............


나는 여기서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 위염과 장염 그리고 위경련을 번갈아가며 경험하고 있다. 

내가 스트레스 풀기 위해 블로그와 브런치에 글을 기재하는 활동을 하고 있고, 엑스박스로 오버워치 게임을 하고 있다.


신랑과 내가 게임에 몰입하면 어김없이 시어머니는 등장하셔서 게임 스토리와 상황에 대해 물으신다.


어떻게 보면 이렇게 외로움에 쩌든 시어머니가 안타깝기도 하고, 사람들이 뭐 다 이런 방식으로 대화를 시작하는 거지~ 싶기도 한데..

3년 혼자 자유롭게 살고, 부모님과 살 때도 각자의 취미와 자유를 존중해주시는 부모님 밑에서 자란 32살의 나는,

하나하나 보고하고 알려줘야 하고 눈치도 봐야 하고 누군가의 기대에 계속 부응해야 하는 이게 너무 힘들다.

그녀의 기대는 또 좀 높은지?ㅎㅎㅎㅎㅎ


우리 엄마랑 나랑은 서로 보는 드라마가 다르고, 서로 보는 뉴스 채널이 달라도 서로 존중했고

식사시간+ 식사 시간 끝나고 20분 정도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고.. 그 외 시간에는 각자의 활동과 프라이버시를 존중했는데..

나는 남들도 다 이렇게 사는 줄 알았는데... 아닌가 보다.


나랑 내 신랑이랑 우리 엄마네 집에서 둘이 잠도 안 자고 새벽 3시까지 떠들어도.. 그 누구도 무슨 이야기를 그리하는지 묻거나 궁금해하는 사람 1도 없었는데... 우리 부모님은 우리 둘이 사이좋아 보기 좋다고 오히려 일찍 주무시고 우리들의 편의를 봐주셨는데


하.. 진짜 온도 차이 심한 나의 시어머니..

누가 미국은 프라이버시 존중이라 했는가?



54년생 미국인 vs 53년생 한국인+59년생 한국인,

프라이버시 존중은 한국인 조합이 단연 압도적인 것으로 판명이....


왜 나의 시어머니는 혼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인지가 궁금해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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