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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 당첨자 건드린 일진들 최후를 그린 '한국 영화'

‘럭키 몬스터’

by 이슈피커

지난달 연상호 감독의 독립영화 ‘얼굴’이 제작비 2억 원으로 100만 관객을 넘기며 화제를 모았다. 큰 자본이 아니더라도 강한 이야기 하나로 충분히 관객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 그런 흐름 속에서, 지금으로부터 5년 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공개됐던 영화 한 편이 다시 회자되고 있다. 로또 1등 당첨이라는 흔한 꿈을 기묘하게 뒤틀어낸 블랙코미디 ‘럭키 몬스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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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럭키 몬스터’는 빚더미에 눌려 사는 녹즙기 판매원 도맹수(김도윤)의 이야기다. 불법 다단계 회사에 들어간 줄도 모른 채 하루하루를 버티던 그는 사채업자 노만수(우강민)의 독촉에 시달린다. 빚으로 인해 아내 성리아(장진희)까지 위험해지자 그는 위장이혼을 택한다. 그렇게 모든 걸 포기한 어느 날, 라디오 주파수 속에서 이상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이번 주 로또를 사라.” 정체불명의 존재, 럭키 몬스터(박성준)의 속삭임이었다. 그 말을 믿고 산 로또가 실제로 1등에 당첨되며 그의 인생은 완전히 뒤집힌다.


세금을 제하고도 35억 원이 손에 들어왔다. 처음엔 세상이 달라 보였다. 은행 창구의 미소, 주변의 태도, 사람들의 말투까지 달라졌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상한 일들이 이어졌다. 낯선 번호로 걸려오는 전화, 자신을 따라다니는 시선, 설명할 수 없는 불안감. 그런 혼란 속에서, 사라졌던 아내가 아무렇지 않게 다시 돌아온다. 말투와 눈빛은 예전과 다르고, 맹수는 점점 불안에 잠식된다. 럭키 몬스터의 목소리는 점점 더 커지고, 현실과 환청의 경계는 무너진다.


공원에서 터진 분노, 일진들의 최후


모든 게 뒤엉키던 어느 밤, 맹수는 공원 벤치에 앉아 담배를 붙인다. 그때 고등학생 일진 무리 몇 명이 다가와 비웃는다. “돈 좀 내놓으시죠?” “이러면 마누라도 도망가요.” 그 한마디에 맹수의 눈빛이 바뀐다. 잠시 연기를 내뿜던 그는 조용히 일어나 주먹을 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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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당하던 인물이 처음으로 반격에 나서는 순간이다. 폭력의 방향이 뒤집히는 그 찰나, 맹수는 더 이상 피해자가 아니다. 일진 무리들은 순식간에 쓰러지고, 그 자리에는 억눌렸던 분노가 폭발한 한 남자만 남는다. 관객은 그가 변하는 순간을 보며 묘한 해방감과 서늘함을 동시에 느낀다.


웃음과 광기가 맞물린 블랙코미디


‘럭키 몬스터’는 잔혹함 속에서도 웃음을 터뜨리는 이상한 영화다. 봉준영 감독은 “낄낄거리다 정색하게 되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한다. 영화는 코미디로 시작하지만 점점 광기로 변하며 관객을 뒤흔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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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윤은 ‘곡성’, ‘반도’에서 존재감을 보여준 배우답게 첫 주연작에서도 완전히 다른 얼굴을 선보였다. 초식동물 같던 인물이 로또 1등 이후 서서히 포식자로 변해가는 과정을 밀도 있게 표현했다. ‘극한직업’에서 신하균의 오른팔로 눈도장을 찍었던 장진희는 도맹수의 아내 성리아로 등장해,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오가는 인물을 담담하게 연기한다. 박성준은 럭키 몬스터 역을 맡아 밝고 기묘한 분위기를 오가며 영화의 긴장을 유지한다.


HB컨설팅 직원 최필연 역의 박성일은 차분한 태도 속에서도 섬뜩한 긴장을 만든다. 배진웅은 냉소적인 박건하 대리 역으로 등장해 이야기의 균형을 잡는다. ‘범죄도시3’에서 초롱이로 활약한 고규필은 농협 직원으로 짧게 등장하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돈이 인간을 무너뜨리는 방식


‘럭키 몬스터’는 단순히 로또 1등의 이야기로 끝나지 않는다. 돈이 인간을 어떻게 흔들고 파괴하는지 보여주는 잔혹한 우화다. 도맹수는 돈을 얻은 뒤에도 평온을 찾지 못한다. 오히려 그 돈이 불안을 자극하고, 환청을 부른다. 럭키 몬스터의 목소리는 결국 그의 욕망이 만든 허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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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0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공개된 이 영화는 독립영화지만 완성도와 메시지 모두 묵직하다. 돈, 폭력, 욕망이 뒤엉켜 만들어낸 인간의 일그러진 얼굴을 날것 그대로 보여준다. ‘얼굴’이 독립영화의 새로운 길을 열었다면, ‘럭키 몬스터’는 그 길을 한층 더 어둡고 대담하게 확장시킨다. 로또 50억 당첨자가 세상에 맞서는 그 한 장면. 웃음과 광기가 함께 폭발하는 그 순간, 관객은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과연 진짜 괴물은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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