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계인·정령·구미호와의 사랑
현실과 비현실,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가 허물어질 때 탄생하는 서사는 언제나 시청자들의 마음을 강하게 흔든다. 인간의 감정이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 사랑이라는 감정이 종(種)을 초월할 수 있는지를 탐구한 드라마 세 편이 있다. 각각 다른 시대와 세계관 속에서 만들어졌지만 모두 ‘인간과 인간이 아닌 존재의 사랑’이라는 공통된 테마로 지금도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다.
2013년 12월 첫 방송된 SBS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는 외계인과 인간 여배우의 사랑이라는 독특한 설정으로 큰 화제를 모았다. 조선시대 광해군 때 지구로 온 외계인이 400년 동안 변함없는 모습으로 서울에 살고 있다는 상상에서 출발한 작품은 로맨스에 판타지를 더하며 흥행의 새 장을 열었다.
전지현이 맡은 ‘천송이’는 국민배우이자 아시아의 별로 불리는 인물이다. 완벽한 외모와 명성을 가졌지만 현실에서는 허영심 많고 거침없는 말투로 구설에 오르기 일쑤다. 그러나 겉보기와 달리 마음속에는 상처와 따뜻함을 함께 지닌 인물로 그려지며, 극이 진행될수록 깊은 매력을 보여준다.
그의 맞은편에 선 인물은 김수현이 연기한 외계인 ‘도민준’이다. 광해군 시절 지구로 내려왔다가 돌아가지 못한 채 400년 넘게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온 존재다. 인간과는 다른 생리적 특성을 지녔지만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감정을 품고 살아가는 캐릭터다. 현재는 대학 강사로 신분을 위장해 지내고 있으며, 천송이와의 인연을 통해 오랜 세월 묻어둔 감정을 마주하게 된다.
두 인물의 사랑은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오가며 시청자에게 묘한 울림을 남겼다. ‘별에서 온 그대’는 첫 방송부터 시청률 15%대를 기록했고, 회를 거듭할수록 상승세를 이어가며 최고 28.1%까지 올랐다. 평균 시청률 24%를 넘긴 해당 작품은 SBS의 대표 흥행작으로 자리 잡았다.
김수현과 전지현의 호흡은 당시 ‘신드롬급’이라 불릴 만큼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으며, 한국뿐 아니라 중국, 일본 등 해외에서도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다음은 2020년 방송된 tvN 드라마 ‘구미호뎐’과 그 후속작 ‘구미호뎐 1938’이다. 작품은 기존의 ‘여성 구미호’ 서사를 뒤집고, 남자 구미호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새로운 매력을 선보였다.
이동욱이 연기한 ‘이연’은 과거 백두대간을 다스리던 산신으로, 인간 여인 ‘아음’을 사랑한 대가로 600년 동안 인간 세상에서 요괴들을 사냥하며 살아가는 인물이다. 과거의 사랑을 잃고도 그 기억에 매여 사는 그의 모습은 ‘불멸의 순정’을 상징한다. 외면적으로는 냉정하고 무심한 듯하지만, 내면에는 깊은 상처와 연민이 자리 잡고 있다.
조보아가 맡은 ‘남지아’는 초자연적 사건을 추적하는 방송국 PD로, 어린 시절 부모가 실종된 사건의 진실을 찾기 위해 살아온 인물이다. 냉철하고 강단 있는 성격이지만, 이연을 만나면서 잃었던 감정을 서서히 되찾는다. 그녀의 부모가 사라진 사건이 이연의 과거와 맞물리며 두 사람의 인연은 인간과 요괴의 경계를 넘어선 운명으로 이어진다.
또한 김범이 연기한 ‘이랑’은 이연의 배다른 동생으로, 형에 대한 증오와 그리움이 공존하는 복합적인 인물이다. 형제 간의 갈등과 화해는 ‘구미호뎐’의 중요한 축으로 작용하며, 판타지를 넘어 가족애와 존재의 의미를 묻는다.
‘구미호뎐’은 한국 전설 속 요괴와 현대 사회를 결합한 세계관으로 호평을 받았다. 이어진 시즌2 ‘구미호뎐 1938’은 일제강점기 경성을 배경으로, 시간 여행과 요괴 전쟁을 담아내며 한층 확장된 스케일을 선보였다. 이동욱, 김범에 이어 김소연, 류경수가 합류해 새로운 캐릭터 간의 긴장감 넘치는 케미를 보여줬다.
세 번째 작품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다 이루어질지니’다. 인간의 세 가지 소원을 들어주는 램프의 정령 ‘지니’와 감정이 결여된 여성 ‘기가영’의 관계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인간의 욕망과 구원, 그리고 위험한 사랑이 맞물리며 독특한 서사를 완성했다.
김우빈이 연기한 ‘지니’는 오랜 세월 봉인됐다가 풀려난 정령으로, 인간의 소원을 들어주는 대가로 대가를 요구하는 존재다. 감정의 기복이 심하고 충동적인 면을 지녔지만, 점차 인간 세계에 적응하면서 예상치 못한 감정을 느끼기 시작한다.
수지가 맡은 ‘기가영’은 카센터를 운영하는 여성으로, 규칙적인 생활과 냉철한 사고를 지닌 인물이다. 외적으로는 차갑지만 내면에는 깊은 상처가 자리해 있으며, 어린 시절부터 누적된 트라우마로 인해 인간관계에 거리감을 둔다. 그러나 지니를 만나면서 조금씩 변화하고 자신도 모르게 감정의 문을 열게 된다.
‘다 이루어질지니’는 전통적인 요정과 인간의 사랑이라는 설정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판타지적 소재 속에서도 인간의 외로움, 구속, 자유에 대한 갈망을 섬세하게 풀어냈다. 김우빈과 수지의 호흡은 미스터리하면서도 따뜻한 감정을 동시에 전달하며, 국내외 시청자들로부터 큰 관심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