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범택시, 다시 달린다
어느 날 저녁 친구들과 오랜만에 술을 먹던 중
가게 안 TV에서 익숙한 장면이 지나갔다.
택시 헤드라이트가 어둠을 가르며 다가오는 장면,
그리고 그 안에 앉은 그 남자—김도기.
한창 방영할 시즌에 정말 재미있게 봤던 드라마였던지라
술자리가 끝나고 집에 돌아온 후 오랜만에
다시 차근차근 감상하며 추억을 떠올려봤다.
두 시즌 동안 이 드라마는 나에게 정의에 대한 감정을 자극했다.
시청률 20%를 넘겼다는 수치도 놀랍지만
그보다 더 큰 건 마음속 깊은 무언가를 흔들어 놓는 이야기였다.
2021년 봄
‘모범택시’는 처음 등장했다.
복수를 대신 해주는 택시라는 설정은 처음엔 어딘가 비현실처럼 보였다.
하지만 에피소드가 쌓일수록 그건 현실에 발붙인 이야기라는 걸 알게 됐다.
가해자는 법의 그늘 아래 당당히 살아가고
피해자는 목소리조차 내지 못한 채 사라지는 세상.
그 속에서 김도기와 무지개 운수는 달렸다.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나는 뉴스보다 이 드라마를 보며 현실을 배웠다.
복직한 성추행 교수, 술 한 잔으로 용서받는 폭력,
횡령 후 해외로 나가버린 이들의 이야기.
어느 것 하나 낯설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익숙해서 고개를 숙이게 만들었다.
‘모범택시’는 정의가 무너진 곳에 손을 뻗었다.
도기의 눈빛에는 슬픔과 분노가 동시에 담겨 있었고,
그가 복수를 실행할 때마다 묘한 감정이 들었다.
시원하면서도 씁쓸한—마치 누군가 내 대신 싸워주는 느낌.
2023년에는 시즌 2가 돌아왔다.
시작은 조금 어색했다.
익숙했던 무게감은 줄고,
개그는 때로 과했고,
장면 전환은 가벼워 보였다.
중반을 지나며 드라마는 방향을 다시 잡았다.
전세사기, 아동학대, 사이비 종교, 대리수술,
그리고 노인을 노린 사기까지.
드라마는 또 한 번 현실로 들어왔다.
나는 블랙썬 에피소드를 보며 TV 앞에서 말을 잃었다.
우리 부모님도, 옆집 할머니도, 언제든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에
어깨가 무겁게 내려앉았다.
시즌 2는 전보다 더 다양하고 날카로운 주제를 건드렸다.
팀원들의 케미는 여전히 유쾌했고,
액션은 거침없이 전개됐다.
어두운 소재 사이로 가끔 스며드는 따뜻한 농담과 서로에 대한 배려.
그게 이 드라마를 오래도록 붙들게 만드는 이유 중 하나였다.
이제 시즌 3가 돌아온다.
11월 다시 무지개 택시가 밤거리를 달릴 예정이다.
새로운 사건들, 새로운 적들,
변하지 않은 도기의 눈빛.
드라마는 언제나 현실보다 조금 늦게 움직이지만
때로는 현실보다 더 정확하게,
우리의 마음을 들여다본다.
시즌 3가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는 아직 모른다.
하지만 나는 다시 그들이 움직이는 소리를 들을 준비가 돼 있다.
복수를 대신하는 누군가의 브레이크 없는 질주.
그 끝에서 마주하게 될 정의의 얼굴이 궁금하다.
때론 드라마가 현실보다 진짜 같다.
누군가의 눈물과 분노, 억울함이 그대로 화면을 뚫고 들어올 때
우리는 그냥 시청자가 아니라
그 이야기를 함께 사는 사람이 된다.
11월 택시 한 대가 다시 출발선을 선다.
그 택시는 그냥 탈 수 있는 차가 아니다.
그건 상처받은 이들을 위한,
단 하나뿐인 도착지를 향한 여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