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가 된 딸을 지키는 법

'좀비딸', 웃고 울게 만드는 이야기

by 이슈피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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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무더웠다. 습기가 눅진하게 피부에 들러붙고 이른 시간인데도 창밖은 이미 백열전구처럼 밝았다. 택배 상자를 뜯다 우연히 손에 쥔 게 오래전 산 만화책이었다. 어느새 접힌 책장, 밑줄 그어진 대사 시간을 따라 흘러간 취향들이 거기 고스란히 있었다. 그 중 하나, 잊고 지냈던 웹툰 '좀비딸'이 문득 떠올랐다.


최근 '좀비딸'이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는 소식을 얼핏 들었다. 최근 개봉한 영화 덕분이다. 세상엔 잊힌 줄 알았던 것들이 다시금 불려나오는 순간이 있다. 이번에도 그랬다. 예고편 하나로, 수면 아래 잠들어 있던 이야기들이 다시 입소문을 탔다.


웹툰 '좀비딸'은 2018년부터 2020년까지 연재됐다. 처음엔 좀비라는 흔한 설정에 그저 그런 B급 개그물쯤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한 회, 두 회 넘길수록 그 속엔 의외로 단단한 가족 서사가 있었다. 아버지는 좀비가 된 딸을 끝까지 지켜내려 하고 할머니는 손녀를 살리기 위해 기묘한 훈련을 감행한다. 괴상하면서도 따뜻한 감정선이 이상하게 오래 기억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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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고편이 공개된 건 5월 21일이었다. 그 뒤로 2주간, 웹툰 '좀비딸'의 몰아보기 결제가 이전보다 무려 9배 넘게 치솟았다고 한다. 조회수도 거의 5배 가까이 올랐다. 몰아보기는 일정 금액을 내면 한 시간 동안 모든 회차를 무제한으로 볼 수 있는 방식이다. 대개 이미 완결된 작품을, 다시금 들춰보고 싶을 때 쓴다. 아마도 그 시절 그 장면들이 보고 싶어진 팬들이 다시 돌아온 걸 테다.


영화는 조정석, 이정은, 조여정처럼 익숙한 얼굴들이 출연진에 포진했고 예고편 속 캐릭터 싱크로율도 꽤 높다. 특히 ‘애용이’라는 고양이와 할머니 김밤순의 비주얼은 웹툰과 거의 똑같다는 반응이 많다. 단순히 ‘그럴싸한 수준’이 아니라 원작 팬들이 반가워할 만큼 정성스럽게 복원된 장면들이다.


영화는 약 110억 원의 제작비가 투입된 대작이다. 하지만 그 규모보다 더 눈에 띄는 건 방향이다. 대부분의 좀비 영화가 긴장과 공포를 전면에 내세우는 반면, '좀비딸'은 유쾌하고 다정한 생존기로 풀어간다. 딸이 좀비가 됐지만 아버지는 포기하지 않는다. 사춘기 딸과의 갈등, 감염이라는 재난 속에서도 그는 그녀를 인간답게 키워보려 애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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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심엔 조정석이 있다. 그가 연기하는 ‘정환’은 현실적이고 어딘가 덤벙대는, 그러나 딸을 향한 마음만큼은 누구보다도 분명한 아버지다. 반듯하지도 영웅적이지도 않다. 그저 사랑 때문에 움직이는 인물이다. 최유리가 맡은 딸 ‘수아’는 좀비가 되어서도 온기를 잃지 않는다. 식욕은 달라졌지만 가족의 관심과 돌봄 속에서 점차 마음을 여는 캐릭터다.


할머니 ‘김밤순’ 역의 이정은은 단연 눈에 띈다. 손녀를 위해 효자손을 무기 삼아 좀비 수아를 길들이는 그의 모습은 웃기면서도 묘하게 울컥하게 만든다. 익숙한 일상의 도구들이 그렇게 영화 안에서 재해석되는 순간은 오래 기억에 남는다.


유튜브에 올라온 티저 예고편은 단기간에 150만 뷰를 넘겼다. 778개의 댓글은 기대와 기억이 얼마나 겹쳐지는지를 말해준다. 대부분은 "진짜 웹툰 그대로다", "애용이 살아있네" 같은 반가움이었다. 원작을 보았던 사람들이 다시 움직이고 영화는 그 움직임을 새 흐름으로 이어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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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스크린 속에서 '좀비'란 무언가를 잃어버린 존재였다. 기억을 잃고 사람을 잃고 결국 인간다움마저 사라져버린 상태. 하지만 이번 이야기 속 좀비는 다르다. 잃었지만 여전히 지켜내려는 관계가 있고 변화했지만 사랑은 여전하다. 좀비가 된 딸과의 일상, 그것을 다시 세우려는 한 아버지의 몸부림이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게 마음에 남는다.


다시 책장 깊숙이 꽂혀 있던 그 만화책을 꺼낸다. 당시 내가 밑줄 그었던 장면은 이랬다. “딸이니까, 그냥… 그게 다야.” 설명도 이유도 필요 없었다. 그 한마디에 모든 것이 담겨 있었다.


그 따뜻함을 생생하게 다시 느끼러 이번 주말 무더위를 뚫고 오랜만에 극장을 찾아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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